"가족같은 분위기면 노사분규 없어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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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이젠 한만큼 한 것 같아요. 시집도 가야죠.』 제사공장근로자생활에 꽃다운 청춘 14년을 바친 금정숙씨(35)는 10일 「근로자의 날」철탑산업훈장을 목에 걸고 환하게 웃었다.
금씨가 제사공장인 은성산업(춤북염천군염천읍)에 입사한 것은 72년7월. 21세때의 일이다. 염천에서 농사를 짓는 검영호씨(65)의 2남4녀중 둘째인 금씨는 가정형편으로 염천여중을 졸업한 뒤 진학을 포기해야 했다. 입사당시 임금은 하루2백7원이었다.
『사장님이 한가족처럼 터놓고 근로자와 이야기할 수 있다면 노사분규같은 것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금씨는 그동안 「먼저 회사가 살아야 우리 근로자도 살고 사장님도 산다」는 진리를 체험으로 몇번이고 느꼈다고 했다.
『가장 큰 어려움은 83년 제사업계가 불황에 빠져 회사가 문을 닫을 지경이 이르렀을 때 였습니다. 우리가 살기 위해 먼저 회사를 살리자며 동료들을 설득, 잔업수당을 반납하면서 열심히 일해 1년만에 회사를 다시 정상가동의 궤도에 올렸었죠.』
금씨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기숙사에서 같이 지내는 동료들에게 『어려운 생활일수록 저축을 해야 한다』고 설득, 1백50여동룡들이 1백만원통장을 갖게 했고, 어려움을 당하는 동료가 있을 때는 적은 월급을 털어 앞장서 돕기도 했다.
『그동안 동생4명을 고교·대학까지 졸업시키고, 막내동생(충남대재학·공부 뒷바라지하느라 시집도 못갔다』는 금씨는 『회사와 가정에 매달려 잊어버렸던 내생활을 지금부터 찾아나가겠다』고 했다. <최천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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