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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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요즘 여기저기서 가로수 심는 작업들이 벌어지고 있다. 새 빌딩이 들어선 큰길가엔 제법 잘 생긴 나무들이 자리를 잡는다. 농원 기술자들이 흙 갈이에서 가지치기(전지)에 이르기까지 정성을 들이는 광경은 보기만 해도 흐뭇하다.
그러나 관청이 주관하는 가로수 심기는 벌써 표가 난다. 나무도 비리비리하고 심는 작업도 여간 거칠지 않다. 아무튼 시민의 심정은 그 나무들이 잘만 자라주었으면 하는 것뿐이다.
서울의 가로수 수종은 은행나무와 버즘나무로 이제 뿌리를 내리는 것 같다. 몇 해 지나면 이들 나무가 서울의 인상이 될 것이다.
지금 서울의 4백 2개 가로엔 19만 9천여 그루의 가로수가 심어져 있다. 이 가운데 은행나무가 3만 3천 5백 그루, 버즘나무가 9만 9천여 그루다. 나머지는 수양버들(2만 5천 그루)과 현사시(1만 1천 그루) 등이다.
문제는 수양버들과 현사시다. 볼품도, 쓸모도 없이, 『꿩 대신 닭』처럼 되는대로 심어 놓았다. 수양버들의 경우는 봄철의 꽃가루도 성가시지만, 모양도 산발을 하고 있어서 가뜩이나 어지러운 도시를 더 어수선하게 만든다.
은행나무는 생김새도 단정하고, 공해도 버텨내고, 계절 따라 표정도 다감해 가로수로는 제격이다. 버즘나무 또한 잎사귀가 큼지막하고 나무 줄기도 옆으로 뻗어 몸매가 품성하고 늠름하다. 도시 공해에도 잘 견딘다.
우리말 이름으로는 그 나무 줄기의 껍질이 얼룩덜룩 벗겨진다고 버즘나무라 붙였지만, 원래 이름은 플라타너스다. 그리스어로 「플라타너스」는 넓다는 뜻이다. 바로 잎사귀를 두고 하는 말이다.
플라탄(불), 플라타네(독), 플레인(영)-, 모두 같은 이름이다. 플라타너스는 겨울이 되면 잎은 모두 떨어지지만 조롱조롱 방울이 매달려 그런 대로 보기 좋다.
플라타너스엔 동양산과 미국산이 있다. 이 두 종류 사이의 트기로 생긴 런던 플라타너스는 오래 전부터 런던에서 가로수의 명성을 떨치고 있다. 템즈 강변, 버킹검 궁전, 하이드 파크(공원), 옥스퍼드 거리등은 아름드리 플라타너스가 하늘을 덮었다.
미국엔 줄기의 둘레가 11m, 높이가 55m나 되는 거목도 있다. 잘만 키우면 이런 위용도 갖출 수 있다.
런던사람들은 그 밑에서 산책도 하고, 사색도 하고, 휴식도 한다. 런던은 그 플라타너스의 노련한 모습을 도시의 품위로 삼고 있다. 서울의 플라타너스는 동양 생, 미국 생, 트기, 모두 심어져 있다. 그 중에서 역시 동양산은 이파리가 깨끗해 좋다.
서울은 이들 은행나무, 버즘나무들이 거목으로 자랄 때쯤 돼야 자연 속의 명도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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