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 만들기 16년째 윤순희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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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짧은 겨울 해가 동이 트려면 아직도 두세시간은 더 있어야할 새벽3시. 윤순희씨(45·강원도 원주시 단구동 190)의 하루는 닥나무를 쪄내기위해 가마에 물을 데우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5시에 일꾼들이 오면 시간을 지체하지 않고 바로 작업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윤씨가「한지에 미친」남편(김영연씨·전조선대도서관장)을 따라 원주에 온지도 어언 16년째. 그간 종이를 말리는 것은 흙장판에서 철판으로 바뀌었으나 종이의 원료인 백피를 만들기 위해 닥나무 껍질(흑피)을 물에 불려 일일이 칼로 긁어내는 작업은 여전하다.
그 덕택(?)에 그의 손은 아직도 화사한 얼굴과는 전혀 딴판으로 군데군데 갈라져 있는데다 새까맣게 물까지 배어 있어 오갈데 없는「선머슴 손」이 돼버렸다.『닥나무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몰랐어요. 그런데도 한지공장을 차리겠다니 기를 쓰고 반대했지요. 그러나 가짜한지를 바로잡아 보겠다는 그양반의 결심이 워낙 확고해서 따라나설 수밖에 없었지요.』닥나무를 처음 본 순간 이런 나무에서 어떻게 종이가 만들어지는지 신비롭기까지 했다는 윤씨는 이후 백피를 양잿물에 삶아내는데서 닥을 물에 풀어 풀대질을 하기까지 못하는 일이 없을 정도로 어엿한 기술자가 됐다.
밤1∼2시에 물량이 들어와 밤잠을 설쳐가며 마당에 부려놓던 일, 한밤중에 억수로 비가 쏟아져 쌓아 놓은 닥이 썩을까봐 장롱 깊숙이 아껴 두었던 치마까지 꺼내 덮어두던 일, 일꾼의 월급은 주어야하고 한지는 팔리지 않아 이리저리 돈을 꾸러 뛰어다니던 일등은 오히려 그에게는 정겨운 추억거리.
우리나라 사람들이 한지의「깊은 속」을 몰라주는게 그의 마음을 진짜 멍들게 하는 것이다.
몇백년이 가도 변색되지않고 좀이 슬지 않는 질긴 한지의 참맛을 세상 사람들이 모르는게 안타깝기만 하단다.
82년 종이전(국립현대미술관주최)이후 세간의 인식이 달라져「좀 살만해지자」남편을 잃은 윤씨는『내가 죽더라도 당신과 아이들이 공장을 계속해달라』는 남편의 유언에 따라 오늘도 8명의 일꾼과 함께 작업장을 뛰어다니고 있다.
『며칠 전 영국과 서독에서 견본을 보여달라는 편지가 왔더군요. 판로 걱정하느라고 1년간 잠못잔 덕인가봐요.』
윤씨는 이제『더 품질 좋은 한지가 나오는 것밖엔 소원이 따로 없다.』며 모처럼 활짝 웃었다.

<홍은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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