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 줄이는 설비투자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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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호전되는 국내외 여건에 발맞추어 올해 설비투자가 크게 늘어날 추세다. 상공부 집계에 따르면 1백 22개 주요 제조업체의 올해 투자계획은 지난해 보다 42% 늘어난 4조 2천억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되었다.
이 같은 민간 설비투자의 괄목할만한 증가 예상은 한마디로 3년여의 투자 침체를 벗어나 민간기업들이 다시 투자에 의욕을 갖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지난 3년여의 경기침체가 다름 아닌 투자부진에서 비롯된 점을 고려할 때 이 같은 민간투자 의욕이 제대로 실현되게 투자환경과 여건을 만들어 간다면 새로운 성장 잠재력이 되살아날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문제는 이 같은 왕성한 투자의욕이 좌절되거나 굴절되지 않게 정책으로써 지원하는 일이 긴요하다.
첫째는 투자의 조건을 개선하는 일이 된다. 기업이 투자를 결정하고도 적절한 재원 마련이 어려워지거나 투자의 시의를 얻지 못하는 경우는 없어야 한다.
올해 정부 계획으로는 수출산업 설비투자의 무제한 지원, 중소기업 자금의 대폭 증액, 모험기업 창업지원의 확대 등 다각적인 정책수단들을 제시한바 있다.
또 자금 총량에서도 총통화기준 14%내외의 공급 증가 외에 신축성 있는 통화운영계획을 밝힌바 있어 적어도 물량 면에서는 지난해보다 여유가 많아진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현재의 투자자금 공급경로가 주로 대기업 위주·담보 위주·채권확보 위주로 경직되어있음을 감안할 때 새롭게 늘어나는 왕성한 신 투자·기술개발 투자 수요를 제대로 소화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특히 지금의 경제구조 전환에 긴요한 기술집약형 중소기업 투자는 과거와 같은 경직된 금융패턴으로는 충분히 소화할 수 없을 것이다.
은행마다 중소기업 전담 부서까지 만들어 놓고도 구태의연한 담보금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현실이 그것을 입증한다.
한은이 구상한 수입대체금융 등 새롭고 과감한 자금지원방식이 계속 고안되어 실질적인 투자지원이 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특히 엔 강세와 함께 최대의 당면과제로 부각된 소재·부품산업의 수입 대체화는 다양한 금융지원 못지 않게 기술과 마케팅 등의 측면에서 정부가 뒷받침 해야할 분야가 적지 않다.
기술문제는 연구기관과 기업들이 협동으로 개발목표와 과정을 설정, 모험자본을 적극 연계해주고 국내판로를 적절히 보장해주는 산업정책이 뒷받침 돼야한다.
설비투자와 연관된 또 하나의 문제는 투자의 핵심이다. 이 문제는 기본적으로는 개별투자가들이 판단하는 영역이나 거시적으로는 당면 산업정책 방향과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민간의 과잉의욕과 정책의 혼선으로 중복·과잉 투자된 경험을 간과할 수 없다. 따라서 정부는 이런 우려가 예상되는 부문에 대해 장기적 안목의 산업정책 방향을 미리 제시, 민간의 중복투자 가능성을 사전에 예방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아직은 설비투자증가가 시설확장에 머무르고 있으나 중요한 것은 기존설비 확장보다 신제품 생산을 위한 설비개혁과 신투자다. 투자재원 배분에서도 이점이 특히 유의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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