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억弗 대납 요청 정몽헌-박지원씨 입씨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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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열린 대북 송금 의혹 사건의 두번째 공판에서 박지원.이기호.정몽헌씨 등 핵심 관계자들의 증언이 엇갈려 4시간 동안 치열한 법정 공방이 벌어졌다.

이들은 공소 사실 자체는 대체로 인정하면서도 각론에 있어서는 서로의 증언을 반박하면서 책임을 떠넘기는 듯한 진술을 했다.

이기호 전 청와대 경제수석은 "대북 지원금에 대해 그동안 몰랐다고 했지만 재판에서 바로 밝히고자 한다"고 말문을 연 뒤 당시 정황을 세세히 진술했다. 감정이 북받치자 답변 도중 잠시 울먹이기도 했다.

李씨는 "박지원씨와 임동원씨가 현대에 대한 특별지원을 요청했을 때 남북교류기금을 활용하자고 주장했지만 두 사람이 '국회 동의가 필요하고 재원 마련 과정이 공개돼서 안된다'며 반대했다"고 진술했다.

그는 또 "朴씨는 '왜 원칙만 따지려 드느냐, 내가 경제수석이라면 얼마든지 하겠다'고 해 언쟁을 벌였다"고 했다.

박지원씨는 李씨의 주장에 대해 "내 기억이 틀릴 수도 있지만 경협기금에 대해 논의한 기억이 없다"고 했다. 그는 또 "지난 2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 때 이기호 수석은 산업은행 대출 개입 여부를 부인하면서 배석조차 하지 않았다"고 李씨를 공격했다.

朴씨는 "이기호.임동원씨와 만난 자리에서 현대 지원의 필요성을 얘기한 적은 있지만 구체적인 액수나 방법 등은 언급한 적이 없다"면서 "산은이나 국정원이 실정법을 어겨 가면서까지 대출과 송금을 할 줄은 몰랐다"고 주장했다.

朴씨는 또 "2000년 5월 중순 정몽헌 회장을 만났으나 鄭씨는 '현대가 어려우니 도와달라'고만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鄭회장은 "朴씨가 당시 '정부의 대북 지원금 1억달러를 대납해 달라'고 요청해 승낙했다"고 어긋나는 진술을 했다.

임동원씨는 "대북 송금은 국익을 위해 한 일이었다"면서 "실정법 위반이라면 기관장인 내가 책임을 질 테니 최규백 국정원 기조실장에 대해서는 공소를 취소해 달라"고 말했다.

한편 朴씨의 변호인은 "특검이 제출한 증거를 모두 인정할 뿐만 아니라 주거가 명확해 도주 우려가 없다"며 보석허가 신청서를 재판부에 냈다.

김현경.이수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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