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이명보<서울대교수·철학>선패의 보증수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어떻게 사느냐보다 어떻게 죽느냐가 인간에게 훨씬 더 중요한 문제다. 나는 필리핀의 역사적 드라머를 지켜보면서 더욱 더 그것을 느꼈다. 어찌 필리핀의 알만이 그럴까. 이 당에서1979년에 일어난 공화당정권의 그 진리를 곧 잘 잊어버리는 것일까. 언제 그랬더냐 는 듯이 말이다.
사람이 지닌 다른 동물과의 중요한 차이는「역사의식을 가진 존재」라는 점이다. 그런데 과거에 대한 기억은 역사의식의 필수조건이다. 과거에 대한 망각이 자리잡는 곳에 역사의식은 존재할 수 없다.
왜 사람들은 오늘만을 생각하며 내일을 눈여겨보려 하지 않는 것일까. 오늘만을 고집하다가 다음순간에 밀려드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는 것일까. 내친김에 밀고 나간다 하더라도 종착역은 마찬가지일 뿐이다.
2O년 독재의 주인공「마르코스」에게 그렇게까지 비참한 최후를 면할 길이 전혀 막혀있었던 것은 아니었는지 모른다. 그가 만일 자기의 때가 지난 것을 알고, 민주세력에 미리 정권을「신사답게」물려주었던들, 그가 원하는 고향에 돌아가 여생을 살수도 있었을 것이다.
탐욕은 사람의 눈을 멀게 한다.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한다. 기막힌 노릇이다. 탐욕에 사로잡힌 자의 최후는 그래서 비참하게 된다.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자가 악을 쓰다 빠질 곳은 뻔하니 말이다.
바둑을 둘 때도 탐욕은 금물이라고 한다. 탐욕은 패배의 보증수표이기 때문이다. 명 기사는 자기의 탐욕에 대한 승리자다. 세상에 명 기사는 많다. 보기 좋은 일이다.
바둑 잘 두는 사람은 많은데, 세상을 올바로 살지 못하는 사람은 왜 그렇게도 많은가? 지도자라는 사람은 많은데, 자기의 탐욕을 제대로 지도하지 못하니 도대체 무엇을 지도한다는 말인가.
모든 제대로 된 종교가 가르치는 것 .가운데 으뜸가는 것은 바로 저「탐욕의 조정술」이다. 석가의 가르침도 그러하며, 예수의 가르침도 그러하다. 탐욕이 모든 고통과 비극의 원천이니, 네 마음을 비어라. 그래야 참삶을 살 수 있으며 참 죽음을 죽을 수 있다. 더럽게 죽는 자는 한번 죽는 게 아니다. 두고두고 온갖 오욕과 저주를 받는다. 깨끗하게 죽은 자는 역사와 더불어 사람들의 가슴속에서 영원히 산다.
잘못 산것은 살아있는 동안 고칠 수 있으나, 잘못 죽은 것은 영원히 고칠 수도 없다. 그러기에 깨끗한 죽음은 참으로 소중하다.
선철「소크라테스」는 그러기에 철학은 죽음의 연습이라 하지 않았던가. 죽음을 눈 여겨 보지않고 이루어지는 모든 경륜과 생각은 지혜로운 것일 수 없기 때문이다. 한바탕 꾸어본 백일몽일 뿐이다.
사람들은 가장 확실한 것에 대해서는 불확실한 것처럼 생각하며, 가장 불확실한 것에 대해서는 확실한 것으로 믿는다. 내가 죽는다는 것처럼 명백하고 확실한 것은 없다. 그런데 옛날 중국의 진시황이 자기는 부사 약을 먹었으니 죽지 않을 것이라고 굳게 믿었으나,50대의 젊은 나이에 하찮은 감기로 죽고 말았다. 미련한 진시황이었다. 죽음의 확실성을 몰랐으니, 결코 지혜로울 수가 없다. 권력과 돈처럼 불확실한 것도 없다.
허나 사람들은 그것을 가장 튼튼하고 확실한 것이라 믿는다. 그리고 눈이 벌겋게 달아올라 앞뒤를 가리지 않는 거친 몸짓을 한다.
2백50억 달라라는 외채에 시달리는 나라에서 50억 달러의 거액을 해외에 빼돌려놓은「마르코스」가 생각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이래 중병에 시달리는 그가 세상에 숨쉴 날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그 엄청난 돈은 해서 무엇을 하겠다는 것일까.
무덤에 끌고 들어갈 수도 있을 것이다. 허나 그러면 어쨌다는 것일까. 두고두고 세상의 웃음거리가 될 증거물을 남겨놓는 것밖에 무엇이랴.
권력과 돈 자체가 나쁜 것일 수 없다. 사람이 모여 사는 사회에 권력과 돈은 없을 수 없다. 그것이 없이는「모듬살이」가 불가능하다. 권력과 돈은 칼과 같다. 잘 쓰면 좋은 것이 되고 잘못 쓰면 세상에 고약한 것이 된다.
「골고루 나누어 가지면」좋은 것이 되고, 「몰아 가지면」고약한 것이 된다. 골고루 나누어 가지는 것은 선한 마음(선심)의 발동이요, 몰아가지는 것은 탐욕의 발동이다.
민주사회란 다름 아닌「골고루 나누어 가지는 모듬살이」다.「선진사회」를 만들자는 구호가 드높다. 좋은 이야기다. 그러나 그 만들자는 선진사회가 민주사회를 내포한 것이 아니라면, 그런 선진사회에의 지향은 한갓 외래품선호의 심리와 별다른 것이 아닐 것이다.
깨끗한 삶과 깨끗한 죽음, 그것은 우리가 골고루 나누어 가지려는 마음을 실천에 옮길 수 있을 때에만 가능하다. 그것은 우려가 우리자신을「탐욕의 굴레」로부터 해방시켰을 때에만 가능하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