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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당시의 미국여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한국이 세계여론의 대상이 되기는 청일전쟁과 노일전쟁을 거쳐 일본의 보호국이 되면서부터다. 한일합병이 강행되자 당시 미국내 여론은 일부 동정적 태도를 보이면서도 일본의 한국에 대한 정책수행상 기정사실로 인정하는 태도였고, 동양의 평화를 위하여 불가피하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3·1운동이 발발하자 미국의 반향은 대단히 큰바 있었다.
미국내 신문들은 3·1운동소식을 일제히 보도하고 3·1운동의 성격을 한민족의 자주독립운동으로 높이 평가하였으며 일본언론의 왜곡된 선전을 비난하였다.
미국내에선 3·1운동을 계기로 일본의 한국통치를 극렬히 비난하는 여론이 일어났다. 신문들은『한국의 독립운동은 그들 자신이 그들을 위하여 희생하고 헌신하고 있는한 결코 실패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The Christian Science Monitor」「The Honolulu Star Bulletin」).
『한국인은 일본인에게 죽어도 좋단 말인가. 어찌하여 미국은 한민족이 압박당하여 학정을 받는 것을 보고도 이들이 노예상태에 있도록 내버려두고 있단 말인가』(「The Chicago Examiner」)라고 논하고 있다.
한편 미국의회에서도 한국문제에 대한 활발한 논의가 제기 되었다. 미상원의원「스펜서」는 국무장관에게 1882년의 한미조약을 실행에 옮길 것을 외교상임위원회에서 건의하자고 주장하였고,「노리슨 의원은 일본의 학정을 폭로하여,『의장, 내손에 든 한장의 사진을 보시오. 죽음을 당한 한 한인의 모습을. 이 불쌍한 한인은 한쪽 귀를 잘리고 그의 얼굴은 묵이 되어 있습니다. 그에게 무슨 죄가 있는가. 다만 애국심에 불타서 독립만세를 크게 외친 것밖에는 없습니다. 그는 그 까닭으로 몸을 갈리었고 마침내는 죽음을 당하였읍니다. 이는 한국에서 극히 흔한 일의 하나일 뿐입니다』라고 호소하였다.
이윽고 외교위원회에서는 1919년10월1일『미국의회 상원은 한국민이 원하는 정부수립을 위한 큰 뜻에 동정을 표합니다』라는 결의문을 채택하였다.
한편 당시 뉴욕 타임즈를 포함한 극히 일부의 신문들은 한국독립운동을 부인하였다(「The New York Times」3월20일자『사설』). 또한 한국은 일본의 선정으로 동양의 모범국이 되었다고 논하고 일본의 한국 통치를 찬양하고 있다(동 4월24일자).
동지의 이러한 논조는 1차대전 후 일본이 연합국의 일원으로 미국과 맹방이며 미 행정부의 입장에서 한국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수도 있으나 더 중요한 원인은 동지의 뉴스소스가 주로 총독부기관지인 서울프레스와 일본계통의 통신에서 구하고 있다는 점을 이 방면의 자료에서 발견할 수 있다.
당시 뉴욕 타임즈의 영향력으로 볼 때 이 같은 논조가 세론에 끼친 영향도 대단했으리라 생각되지만 조사된 자료에 의하면 이러한 관점을 나타낸 기사는 전체의 0·5%에 불과한 것이었다.
이와 같이 3·1운동 당시 미국내 대다수 언론이 보여준 친한적 여론과 미의회의 활동은 당시 한국이 즉각적인 독립을 쟁취하는데 영향을 미치지는 못하였으나, 2차 대전의 종전과 함께 미국이 한국을 독립 국가로 발전시키는데 크게 공헌한 것만은 틀림없다.
유병용<강원대교수·한국현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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