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후죽순 제대혈은행… '제대로' 관리 못하면 得보다 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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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의 천사인가,돈을 낚는 황금 어장’인가.’최근 새로운 의료사업으로 급부상하는 제대혈은행을 보는 눈이 곱지 않다.

제대혈이란 탯줄에 있는 혈액.아이가 태어날 때 보관했다가 백혈병과 같은 난치병이 생기면 이를 수혈해 생명을 구한다고 해서 최근 신세대 산모들에게 인기다.

그러나 최근 제대혈은행이 수익사업으로 돌변하면서 업체들이 난립,분만병원을 상대로 로비를 벌이고 대중광고까지 등장하는 등 과열양상을 보이고 있다. 1백만∼1백50만원의 비용 부담은 물론 관리부실 우려가 높은 제대혈은행의 문제점을 짚어본다.

제대혈이란 탯줄에 있는 혈액. 아이가 태어날 때 보관했다가 백혈병 같은 난치병이 생기면 이를 수혈해 생명을 구한다고 해서 최근 신세대 산모들에게 인기다.

그러나 최근 제대혈 은행이 수익사업으로 돌변하면서 업체들이 난립해 분만병원을 상대로 로비를 하고 대중광고까지 하는 등 과열 양상을 보이고 있다.

◆과대포장된 홍보=제대혈 보관은 일종의 보험성격을 띤다. 혈액암에 걸렸을 때 보관해 둔 탯줄 혈액을 꺼내 사용할 수 있기 때문. 그렇다면 예치한 제대혈을 나중에 사용할 확률은 얼마나 될까.

국내에는 매년 4백여명의 어린이가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에 걸린다. 그러나 이 중 70%는 항암제로 완치되고, 여기에 가족 또는 타인 골수이식이 가능한 어린이를 빼면 실제 이용자는 10%인 40명선. 이는 15세 미만 어린이가 교통사고로 죽는 확률(2000년 경찰청 조사 5백88명)의 10분의1도 안되는 수준이다.

낮은 제대혈 이식 성공률도 알아둬야 할 사항. 유럽의 경우 타인 간 제대혈 이식 3년 생존율은 40~45%, 국내 역시 1년반 생존율이 53%에 불과하다. 특히 본인 제대혈 이식은 타인 제대혈 이식보다 성공률은 떨어지고 재발률은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면역 관용현상 때문.

여의도 성모병원 혈액종양내과 김동욱 교수는 "이식한 타인 혈액세포는 체내에서 면역기능을 갖고 잔류 암세포를 공격하지만 자신의 혈액세포는 병든 세포라도 같은 동료라고 인식해 보호하려는 성향이 있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의료행위인가 보관행위인가=국내 사설 제대혈 은행은 1997년 라이프코드 설립을 필두로 현재 11개 업체(표 참조)가 설립돼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제대혈 은행의 업무성격이 모호하다는 점이다.

의료행위가 아닌 단순 보관행위로 취급되고 있는 것. 그러다 보니 관리책임자의 자격이나 시설.인력.보관기준 등 표준지침이 없어 부실한 관리와 과대광고의 폐해가 있어도 이를 규제할 근거가 없다.

윤리문제도 거론된다. 이식에 필요한 충분한 양의 조혈모세포를 뽑지 못하거나 검사 결과 감염 등 부적합 판정을 받을 경우 마땅히 폐기해야 하지만 돈을 벌기 위해 보관한다는 것이다.

드림코드 최종성 기술이사는 "혈액관련 책임자의 부재, 제대혈 처리기술 미달, 필수 검사의 생략 등 많은 문제가 있다"며 "의뢰된 제대혈 중 폐기율이 5~10%가 되지 않는 곳은 말썽의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15년 보관의 의미도 과대 해석되고 있다. 지금까지 보관된 제대혈로 이식한 최장기간은 4년 정도. 金교수는 제대혈 보관의 역사도 짧거니와 오래 보관할수록 품질이 떨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최근 보건복지부는 대한조혈모세포이식학회를 통해 지침을 마련 중이다. 그러나 학회장인 부산 동아대병원 소아과 이영호 교수는 "이달 안에 표준지침이 마련되긴 하지만 구속력이 없어 입법화 과정까지 몇년간은 혼탁한 상황이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제대혈은 공익을 위해=제대혈 은행은 공여용과 가족용으로 구분된다. 가족용은 계약자(산모)가 보관비를 내고 소유권을 갖는 것. 반면 공여용은 은행 측이 모든 비용을 부담하고 제대혈에 관한 모든 사용 권한을 가진다. 1988년 시작된 서구의 제대혈 은행은 공여용 중심이다. 일본 역시 사설은행을 통합해 국가관리로 돌아섰다.

삼성서울병원 소아과 구홍회 교수는 "제대혈 은행은 타인 간 유전자형(HLA타입)이 6개 중 4~5개만 맞아도 성공하기 때문에 반드시 필요하다"며 "그러나 모든 환자에게 혜택이 돌아가도록 현재의 제대혈 은행을 공익사업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연구의 활성화를 위해서도 필요하다. 개인 제대혈은 소유자의 동의 없이 연구용으로 전용할 수 없어 줄기세포 등 첨단연구에 걸림돌이 된다.

최근 설립한 차병원 공익제대혈은행 백진영 교수는 "현재 탯줄 줄기세포를 이용한 동물실험에서 심근경색이나 당뇨병.파킨슨병 등 난치질환 치료가 성공을 거두고 있다"며 "공여 은행의 활성화는 의료 발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고종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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