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정권 붕괴직전의 마닐라 표정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마닐라=박병석 특파원】

<반군건물 인의장벽>
○…「마르코스」 대통령이 24일 밤 하오6시부터 25일 상오6시까지 12시간 통행금지를 발표했으나 시민들은 이를 무시했다.
반군이 점령하고 있는 경찰군사령부인 크라메기지와 대통령궁 주변에는 24일밤 80만명의 군중이 통금령을 무시하고 운집해 노래를 부르는등 환호의 분위기 속에서 밤을 새웠다. 군중들은 50∼60명씩 떼를 지어 크라메기지로 통하는 50여개의 모든 진입로를 겹겹이 차단했고 이들 대열에는 대부분 신부·수녀들이 선두에 서고있었다.

<상점·사무실 문닫아>
○…「코라손」여사를 지지하는 반정부군 병력이 「마르코스」 대통령을 고립시키기 위해 대통령궁 주변에 비상선을 펼 준비를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는 가운데 많은 시민들은 반정부군지도자 「라모스」 참모총장 서리의 촉구에 따라 통금을 무시한 채 상점과 사무실·공장등의 문을 닫고 거리에 밀려나와 반정부군 기지주변의 도로를 메우고 정부군의 공격을 저지.
또 수십대의 버스와 트럭에는 반정부군이 잠정국가원수로 선언한 「코라손」 여사의 상징인 「L」자 사인을 손가락으로 지어 보이는 군인들이 중무장을 한 채 가득 타고 있었다. 마닐라시의 금융 중심가인 마카티가의 사무실과 쇼핑센터는 시민들이 반정부군의 크라메기지쪽으로 몰려가는 바람에 텅 빈 상대였으며 반정부군이 장악한 채널4 TV가 고위행정부 관리들과 정부군세력의 전향을 속속 보도함에 따라 마닐라시의 분위기는 초조감과 우려와 축제무드 등으로 뒤범벅 되고있다.
○…사태발생 4일째인 25일 새벽 「마르코스」대통령에 반기를 든 군부가 「코라손」여사를 대통령으로 취임시킬 준비를 할 동안 반군이 머무르고 있는 필리핀국방성 건물주위에는 전날 밤 수천명의 지지 시민들이 축제분위기에 들뜬 채 야영을 했다.
시민중 상당수는 차도와 보도에서 플래스틱 조각이나 신문뭉치를 베개로 삼아 잠을 자거나 카드놀이를 하는가 하면 이번 사태에 얽힌 얘기를 주고받거나 노래를 부르곤 했다.

<마르코스 군은 초조>
○… 「마르코스」지지세력들이 속속 반군 측에 가담하고있어 반군의 사기는 점점 높아가는 반면 「마르코스」측에서는 시간이 흐를수록 초조한 빛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24일 7대의 공격 헬기를 보유하고 있는 공군 제 15기동 타격대를 선두로 30여명의 보안사령부소속 군인들이 반군에 가담했으며 이날 늦게 2만8천 필리핀 해군 중 해병대를 제외한 2
만 여명이 반군측에 가담, 「마르코스」는 숫적인 면에서도 우세를 지킬 수 없게됐다.
정부관리들 가운데는 「크리스토발」 대통령궁 대변인이 직접 『각하, 사임하십시오』라고 요구하며 사직서를 제출했으며 국영 항공 및 마닐라 은행협회 회장 「크루스』 가 반군측에 가담했다.
이어 「하이메·라야」교육상·「골레스」 우정청장·「파이」대법원 판사등이 반군지지를 표명하고 나섰다.
또 「파롤란」 공군준장을 포함한 장성다수, 그리고 여당의원도 다수 반군쪽으로 돌아서 「마르코스」는 문자그대로 사면초가에 빠진 셈.
○…수도일원에서 반군과정부군이 대치하고 있는 상태에서 마닐라 남쪽 8백km지점에 위치한 미사미스주의 수도 카가얀 데 오토시에서는 양측을 각각 지원하는 야전사령관들이 일전을 불사할 태세로 전투준비를 하고있다.
4천명의 병력을 이끌고「라모스」 참모총장 서리를 지원하는「이그나시오」준장은 자신의 부대가 경계태세에 돌입했다고 말했으며 1천5백명의 병력과 함께 「마르코스」를 지지하고 있는 「무노스」준장도 자신의 부대가 경계태세에 돌입했다고 각각 밝혀 전운이 감돌고 있는 것.
상황이 이렇게 되자 미사미스주지사 「바카나」는 「마르코스」대통령에게 이 주의 전권을 맡아 달라는 내용의 전문을 보내 자신이 더 이상 이 주를 통치할 수 없다고 말했다.
○…「마르코스」 대통령과「베르」는 24일 상오 기자회견중 심각한 의견차이를 보였다.
「베르」가 『대통령각하, 반군들을 분쇄 할 테니 허락해 주십시오』 라고 강력히 요구했으나 「마르코스」 는『중화기는 사용하지 말라』는 온건한 입장을 취했던 것.
이에 대해 현지 외교가에서는「마르코스」가 해외로 도피하고 싶어도 「베르」 때문에 떠나지 못하는 것이 아니냐는 추측도 있다.

<코라손 지시 받는다>
○…마닐라국제공항이 전면 폐쇄되고 공항근처에서 「마르코스」 지지세력과 반군지원세력간에 무력충돌이 벌어지고 있다는 보도가 있는 가운데 필리핀 국영항공 (PAL) 은 24일
『PAL은 이제부터 「코라손」 대통령정부로부터 지시를 받고 있다』고 밝혔다. 「보노난」 PAL부사장은 메시지를 통해 『PAL사장 「크루스」 1세가 사표를 제출함에 따라 본인이 전적인 책임을 지고 있으며 PAL은 정상 운영될 것』 이라고 밝혔다.
한편 필리핀의 저명한 실업인이자 「마르코스」대통령의 막강한 측근인물인 「크루스」1세는 이날 모든 정부직책에서 물러나는 동시에 『 「코라손」 필리핀대통령』 에게 사직서를 제출한 것으로 알러졌다.
그는 또 23일 「마르코스」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 과거은혜를 베풀어 준데 대해 감사를 표시하고, 그러나 지난 7일 대통령선거의 과정 및 결과로 사적인 감정에서 벗어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마르코스」대통령은 미국이 하야를 공식요구한 직후인 24일 하오7시 TV에 나와 초췌한 모습으로 통행금지의 실시를 명령.
그는『말라카냥궁에 있는 나의 가족들이 헬기공격의 위협으로 겁에 질려있기 때문에 통행금지를 실시한다』고 말했다.

<헬기·수송기 파괴>
○…마닐라 국제공항부근에 있는 빌라누에바 공군기지에서 24일 하오 발생한 무력 충돌에서 반군은 정부군이 소유하고있던 헬리콥터 5대와 수송기1대를 파괴시켰으며「마르코스」의 측근 3명을 체포했다고 주장.
○…미국은 중대한 국면을 맞고 있는 필리핀의 국내정세와 관련, 필리핀의 클라크 미공군 기지에 배치한 F4 팬텀 전투기 등 주력전투기 5대를 일본의 가데나 미군기지로 임시 이동 배치.

<내 선거부정 증거를>
○…「마르크스」대통령은 24일 하오 자신이 장악하고있는 TV방송을 통해『나는 결코 사임하거나 망명하지 않겠으며 마지막 한 방울의 피가 남을 때까지 싸우겠다』고 선언.
다음은 「마르코스」의 성명요지다.
『나는 국민에 의해 선출되고 의회에 의해 선포된 합법적인 대통령이다.
나는 결코 사임하지도, 국외로 탈출하지도 않는다.
나는 내 생명이 있는 한 마지막 한 방울의 피가 남을 때까지 나의 대통령권한을 위해 싸울 것이다.
총을 들어야할 때는 언제든지 들겠다.
이번 사태가 악화되면 해결을 위해 계엄령을 선포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내가 선거에 부정을 했다고 하는데 증거를 대라.
나를 지지하는 많은 시민들이 서서히 몰려들고있다. 그리고 나를 지지하던 지지자들이 나를 떠난다면 언제든지 기쁘게 보내주겠다. 그리고 그 동안의 지지에 감사를 표한다. 』

<코라손, 취임식서 눈물>
○…「코라손」여사가 취임식을 거행하는 동안 박수가 터지고 국가가 울려 퍼졌다. 「코라손」 여사는 노란색 드레스를 입고 자녀5명과 함께 식장에 도착, 「엔릴레」국방상과 부통령 러닝메이트「라우렐」씨의 영접을 받았다. 취임선서를 하던 「코라손」여사의 눈에는 눈물이 맺혀있었다.

<대통령궁에도 2천명>
○…「코라순」여사의 야당 및 반 「마르코스」 세력에 의한 대통령취임석이 거행되는 동안 말라카냥 대통렴궁에는 2천여명의 군중이 모여 『「마르코스」 건재』를 외치며 「마르코스」 대통령의 대통령 취임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대통령궁 경비를 서고있는 군 병력들은 「마르코스」대통령의 취임식에 즈음해 반군의 공격 가능성에 대비해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취임식중 방송사고>
○…「마르코스」대통령의 말라카냥궁 취임식행사는 3개 민간 TV방송에 의해 방영됐으나 식전 도중 방송이 중단되는 사고가 있었다.
TV방송국의 사회자가 국가와 기도가 끝난 뒤 『이제 기다리시던 대통령 취임식 행사가 방영됩니다』고 말하는 순간 TV화면이 공백으로 방영됐다. 다시 화면이 들어오자 TV사회자들은 기술상의 어려움 때문에 방송사고가 났다고 해명했다. 이 방송들은 반군이 점령하기 위해 공격을 받고 있던 중이었다. 3개 TV중 채널 9TV는 방송사고 후 「마르코스」대통령 취임식행사 중계를 포기하고「존·웨인」이 출연하는 미국영화를 대신 방영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