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장수 기업 두산그룹, 1일 120주년 맞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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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그룹이 1일로 창립 120주년을 맞았다.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1896년 창립 당시 `박승직상점`, 1920년대 대히트를 쳤던 화장품 `박가분`, 1979년 광고기획사 오리콤의 초창기 모습, 1982년 OB베어스(현 두산베어스) 창단식. [사진 두산그룹]

국내 최장수 기업인 두산그룹이 1일로 창립 120주년을 맞았다. 두산그룹의 시초는 지난 1896년 문을 연 박승직상점이다. 경기도 광주에서 활약하던 박승직(1864~1950) 두산그룹 창업주는 서울 종로4가 인근에서 박승직상점을 열었다. 창업 초기 직물을 주로 취급했던 박승직 상점은 1915년 국내 최초의 근대식 화장품 ‘박가분’을 내놓으면서 화장품 기업으로 영역을 확장했다.

‘두산’이라는 이름은 박 회장의 아들인 박두병(1910~1973) 두산그룹 초대 회장이 취임하면서 생겼다. 박두병 회장의 이름 가운데 ‘두(斗)’에 뫼 산(山)자를 붙였다. 차근차근 일해 산같이 커지라는 뜻이었다.

두산은 창립 100주년인 1996년까지 유통업을 쥐락펴락하는 큰 손으로 자리매김했다. 오비맥주를 비롯, 코카콜라, 한국3M, 코닥, 네슬레 등 다양한 소비재 사업을 운영했다. 하지만 이들은 대부분 1990년대 사업이 매각되거나 정리됐다. 2000년대 이후 두산은 유통업 위주의 사업 구조를 중공업 위주로 빠르게 바꿨다. 한국중공업(현 두산중공업), 고려산업개발(현 두산건설), 대우종합기계(현 두산인프라코어) 등이 계열사로 편입됐고, 2000년 3조4000억원이던 그룹 매출은 2010년 23조원대로 커졌다. 해외 매출 비중도 1998년 12%에서 지난해 64%로 올랐다.

120년 동안 위기도 꽤 있었다. 두산그룹은 1960년 국내 주요 뉴스통신사인 ‘합동통신’을 인수해 운영했지만, 1980년 12월 전두환 정부의 언론통폐합 때 연합통신(현 연합뉴스)에 흡수되는 비운을 겪기도 했다. 이후에도 1990년대 두산전자 페놀 유출로 인한 낙동강 오염 사건, 2000년대 후반 글로벌 금융위기, 2010년대 중국 사업 부진 등 많은 위기가 있었다. 올해 들어서는 두산인프라코어의 구조조정을 놓고 잡음도 일었다. 하지만 두산은 시내면세점, 연료전지 등 꾸준한 신성장동력을 발굴했다.

박승직-박두병-박용곤 순으로 장자 승계를 해오던 두산그룹은 박용곤(84) 회장(현 두산그룹 명예회장) 부임 이후 형제 경영을 원칙으로 삼아왔다. 박두병 초대 회장의 아들들인 박용곤(1981~1996년ㆍ현 두산그룹 명예회장), 고 박용오(1997~2004년), 박용성(2005년), 박용현(2009~2012년ㆍ현 두산연강재단 이사장), 박용만(2012년 4월~2016년 3월ㆍ현 두산인프라코어 회장) 순으로 그룹을 이끌었으며, 지난 3월 박용곤 명예회장의 장남인 박정원(54) 회장이 취임해 4세 경영 시대를 열었다.

이현택 기자 mdf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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