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오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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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지난 정초 TV에서 인기연예인들이 필치는 『명랑운동회』를 보았다. 여러가지 경기가운데서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복자가 쓰인 공 다섯개를 갖고 정한 지점까지 달려갔다 오는 「오복갖고 달리기」였다.
사회자가 오복을 장수·부·강령·덕·고종명이라 설명하는 가운데 모두들 열심히 다섯개 공을 갖고 달리려했으나 둥근공 다섯개를 두팔안에 한꺼번에 감싸 달리기란 매우어려운 경기였다. 겨우 다섯개를 간신히 껴안는듯해도 도중에 굴러떨어지거나 아예 다섯개를 들어올리기조차 못하는 이가 많았는데 그중에는 재치있게 옷자락에 두세개를 넣고서 두팔로 두세개를 거뜬히 안고 잽싸게 끝까지 달리는 억세게 운좋은 복인들도 있었다.
내가 이를 유심히 본것은 까닭이 있었다.
몇년전 공직에 있었을때 여성기술보도 수강생들이 한두가지 기술을 익히고 교습장을 떠날때마다 나는 가급적 오복에 대한 얘기를 즐겨하곤했다.
어떤 부귀영화도 요절하면 그만이니 오래 살려고 힘쓸것이며, 부에는 대부(대부유천)와 소부 (소부재근)가 있으나 우리는 소부는 얻을수 있다는 것, 그러니 일생을 하루살이같이 그날그날 아무렇게나 지나지 않고 목숨을 다할때까지 일관된 계획을 세워서 착실히 이행(고종명)해야한다고 일러주었다.
익힌 기술로써 부지런히 가정경제에 도용을 주어 부의 복을 만들고, 남을 위해 기술을 활용해 덕의 복도 쌓고, 착하고 부지런하면 강령의 복, 나아가서는 장수의 복도 되겠으며, 이러한 과정을 꾸준히 이으면 고종명의 복이 되나니 하늘을 우러러 바라는 복이 아니라 오복은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야 된다고 제법 강조 (?) 까지 했다.
그러나 이렇듯 뉘에게나 설명과 강조는 쉬 할수 있어도 막상 오복을 누리기란 매우 어렵다. 마치 경기장의 공다섯개를 함께 들고 쉬 달릴수 없는 것과 같이….
이날 경기를 보면서 나 자신은 흰 머릿발의 오늘날까지 과연 몇개의 복공을 들고 달려왔을까를 돌이키다가 맥이 풀렸다.
아직 살고는 있으니 장수의복은 모르겠으나 부도, 강령도, 덕도, 고종명도 그 어느것 하나 변변하지 못한 박복함이란.
그렇지만 올해도 박복이 되풀이되더라도 놓치고 있는 복공들을 다시다시 주워담아 달려볼 계획을 세우며 결과만큼이나 과정도 중요하다는 믿음으로 나 자신을 추스러본다.
올봄에 결혼하게될 아들과 며느리감도 집으로 불러 오복얘기를 들려줘야지. 특히 덕과 고종명의 복의 소중함을 일깨워줄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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