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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재 사진전문기자의 Behind & Beyond] ‘꽃인 듯 눈물인 듯’ 노래하는 장사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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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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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익 선생으로부터 편지가 왔다.

‘꽃인 듯 눈물인 듯 어쩌면 이야기인 듯’으로 시작하는 편지의 내용은 이랬다.

‘금년 초, 성대에 혹을 발견하여 수술을 하고 이제는 차츰 노래를 찾아가는 중입니다.

노래를 하는 사람이 노래를 잃고 지낸 시간은 눈물이었습니다.

노래를 부를 때 그때가 진정 꽃이고 행복이었습니다’.

장 선생과 통화를 했다.

“수술을 하고 보름간 말을 한마디도 못하게 하데. 보름 동안 예전 내 소리를 들었어.

목청 하나 믿고 객기로 살아온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더라고.

지나온 길도 돌아보고 앞으로 갈 길도 보는 소중한 시간이 된겨.”

그는 수술 후 보름 만에 세종문화회관 무대에 섰다.

안산시립국악단의 20주년 기념연주회였다.

수술 전에 정해진 약속을 지키려 고심 끝에 선 무대, 3000명의 관객이 지켜보고 있었다.

목소리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는 처지라 노래 대신 시를 읊었다.

그런 후 관객의 양해를 구해 반주만 세 곡을 틀었다.

그 시간 동안 그는 노래 없이 무대에 서 있었다.

“그 시간이 얼마나 길던지 죽고 싶더라고.

아파 보니 목소리와 노래가 얼마나 소중한지 알겠어.

인생이 어찌 보면 꽃이고 눈물이잖아. 그 시간이 내겐 눈물이었어.”

6월 초 장 선생은 브라질을 다녀왔다.

광복절 기념 특집 KBS ‘가요무대’ 녹화를 위해서였다.

수술 후 첫 무대였다.

“소리가 제법 나왔어. 90%는 나온겨. 정말 행복했어. 그게 바로 꽃이지 뭐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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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선생이 올 10월부터 서울을 비롯해 8개 도시 공연을 한다.

새로운 노래 인생의 시작인 셈이다.

“노래를 못 할 땐 온갖 생각이 다 들었어. 노래 말고는 아무것도 할 게 없더라고.

내가 세상에 나온 이유가 노래라는 것을 다시 느꼈지.

노래 하나를 하더라도 정성을 다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얼마 전 김녕만 사진작가에게서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장 선생이 공연 팸플릿 사진에 주름살이 많이 나온 걸로 골라 달라고 했어.

잘나고 멋있는 사진 말고 하필이면 늙수그레한 사진을 찾아 달라는겨.”

김 작가는 장 선생과 우정을 나누는 사람이다.

『장사익』이란 사진집을 따로 낼 정도로 각별한 정을 나눈다.

한 개인의 사진으로만 사진집을 낸다는 일,

웬만큼 붙어 다니지 않고서는 감히 엄두도 못 낼 일이다.

동고동락하며 사진집을 따로 냈을 정도니 멋있는 사진은 숱할 터다.

그런데도 장 선생이 하필 주름살 많은 사진을 골라 달랬다는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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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장 선생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가수가 뭔 주름이 자글자글하냐고 여러 사람이 뭐라고 하데.

보톡스를 권유하는 이도 있었어. 그런데 어느 날 객석의 관객이 보이더라고.

나와 같이 나이를 먹어 가는 관객들이 거기 있었어.

나 혼자 젊게 보이면 어찌 함께 호흡할 수 있겠어.”

주름살이 제대로 나온 사진을 요청한 이유,

홀로 가는 게 아니라 관객과 함께 간다는 의미로 여겨졌다.

10월에 있을 장 선생의 공연 제목 또한 ‘꽃인 듯 눈물인 듯’이다.

눈물인 듯 꽃인 듯 어쩌면 이야기인 듯 다시 시작될 장사익의 노래 여행일 것이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shotg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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