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관료가 지금 해야할 일|경제정책의 3대 조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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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결론부터 얘기해야겠다. 우리 경제관료들이 지금 해야할 일이 무엇인가. 이른바 엔 강세가 시작된지 반년이 지나도록 우리는 이렇다하는 경제정책을 볼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일본에서 배울 점이 많다. 일본정부는 요즘「특정 중소기업군·사업전환대책 등 임시조치법」이라는 것을 준비하고 있다. 3월중의회 통과, 시행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 법의 골자는 다섯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①금리 5.5%내지 6.8%의 특별 지출 ②신용보험의 특례 ③시험연구관련세제 ④중소기업사업전환 대책비 보조금 ⑤사업소득세·특별 토지 보유세 특례(지방세)의 연장 등이다.
한마디로 중소기업을 죽이지 말고 살려놓자는 정책시행이다.
일본엔 6백23만여개의 기업체가 있다. 그 가운데 99.4%가 중소기업이다. 바로 이 중소기업들은 대부분이 수출지향사업체들인데, 작년9월 이른바 G5(미·영·독·불·일 재무상)회의 이후 엔화 강세현상이 일어나면서 파탄의 위기를 맞게되었다.
1달러당 2백50엔 이상으로 평가되던 엔화가 2백엔을 밑돌게되었으니 국제경쟁력에서 무려 20%의 부담을 안게 되었다.
최근 일본 신문들을 보면 일본중소기업의 3할이 사업전환을 고려하고 있다. 또『엔 강세가 진행되면서 한국제품에 눌려 수출가격을 2할 정도 내려야 하는 현실』을 지적하고 있다.
따라서 일본정부는 저리융자(연5.5%), 결손금보전(보전)의 특례, 설비개체자금의 상환유예(유예=5년에서 8년으로)등 임시조치에 의한 중소기업구제에 나섰다.
각설하고, 지금 일본 중소기업 얘기로 시종 하려는 것이 아니다.
일본의 경제관료들은 기민하고 신뢰성 있는 경제정책으로「적시안타」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있다. 바로 이 점을 우리도 좀 배우자는 얘기다.
지난 일이지만 재작년 말 우리나라의 경기가 다소 나아지는 기색을 보일 때 경제정책 입안가들은 경기과열을 막아야 한다고 소방호스를 들이댔었다. 투자억제의 일환으로 금리를 올린 것은 그 대표적인 예다.
그때 경기는 그야말로 3일 천하로 끝나고 말았었다. 정책의 적시안타가 아니라 안타의 기회를 아예 외면해 버린 것이다.
일본은 일찍이 1973년에도 경제정책으로 위기 속의 그 나라 경제를 부축했었다. 바로 세계적인 오일 쇼크가 벌어졌던 무렵이다.
자원이 많이 드는 이른바 과거형산업들을 스크랩(scrap)산업으로 분류해 대담하게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때도「산업구조개편 임시 조치법」을 만들었다.
제철(스틸)·시멘트·고무(라버)·알루미늄·펄프 등이 그 대표적인 분야로 각각의 두 문자를 따서 스크랩(폐기)으로 구호화할 정도였다. 그런 노력은 80년대 초에도 다시 한번 거듭되어「특정산업」이라는 이름으로 불황산업을 축소하고 또 폐기했다.
그 결과가 첨단기술산업의 급신장을 가속시켰고 일본은 전후 최고의 무역흑자를 기록하고 1천억 달러의 채권국이 되었다.
경제정책은 적어도 세 가지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 첫째는 시기를 놓치지 않는 적시안타의 조건이다. 둘째는 정책의 신뢰성이다. 여기에는 완벽한 현상 분석력, 전문성, 정책가의 책임감이 요구된다. 세째는 시행력이다. 입안만 있고 실천이 없으면 그 곁과는 제로다.
우리나라 경제정책은 과연 이런 조건들을 얼마나 갖추었는가.
우리 경제는 지금 엔화강세로 인한 국제경쟁력, 원유가 하락으로 인한 원가부담절감의 호기를 맞고 있다. 이제 금리만 국제금리수준으로 내리면 호기는 더하나 추가된다.
인플레를 동반하지 않고 경제를 성장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경제 정책가들이 이 순간 무슨 일을 해야 할지는 자명해졌다. 이 기회를 놓치고 말면 한국경제의 봄은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경제관료들은 지금이야말로 최선의 경제정책을 세워 경제발전의 기선을 잡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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