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김영란법'으로 특산품에 날벼락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기사 이미지

 헌법재판소가 28일 '김영란법(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리자 전국 농특산물 생산 농가에 비상이 걸렸다. 김영란법은 공직자와 언론인·사립학교 교직원 등이 직무와 관련 있는 사람에게 5만원을 초과하는 선물을 받으면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특히 횡성한우·영광굴비·양양송이·금산인삼·제주 옥돔 등 5만원 이하의 상품을 내놓기 어려운 지역의 특산품이 타격을 받을 전망이다. 게다가 김영란법이 적용되는 9월 28일은 농특산물 수확시기와 겹쳐 직격탄을 받게 됐다.

 강원도 양양군 송이버섯 농가들은 추석을 앞두고 깊은 한숨을 내쉬고 있다.  양양송이영농조합법인에 따르면 양양송이는 1등급 기준 1㎏에 30만~60만원에 거래된다. 생산량이 적을 때는 kg에 70만원이 넘을 때도 있다. 양양지역에서는 한 해 많게는 5t가량의 송이가 수확된다. 송이는 9월 초부터 본격 수확한다.

 양양송이영농조합법인 김현수(62)대표는 “송이 1㎏이 10개 내외인 점을 감안할 때 김영란법이 시행 이후엔 송이를 선물하려면 달랑 1개만 해야 한다”며 “비리를 막겠다는 것은 공감하지만 좀 심한 거 아니냐”고 말했다. 양양송이영농조합법인은 앞으로 해외 수출길을 개척하기로 했다.

 강원도 대표 특산물인 횡성한우도 타격이 예상되고 있다. 횡성 한우선물세트 평균 가격은 20만원 이상으로, 5만원 이하의 선물세트를 만드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한다. 현재 5만원이 넘지 않는 선물세트는 떡갈비와 육포세트뿐이다. 횡성지역 식당에선 대부분 한우 150g 1인분에 3만원 이상 받는다. 가격을 낮추더라도 식사 후에 냉면 등을 먹을 수 없게 된다. 이 때문에 김영란법이 시행되면 문을 닫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걱정을 하고 있다. 횡성축협 엄경익(60)조합장은 “(김영란법)합헌 결정은 지역 농가를 죽이는 결정”이라고 말했다.

 횡성군과 횡성축협은 김영란법에 대비해 해외 시장 개척에 힘을 쏟고 있다. 지난 14일부터는 홍콩으로 수출을 시작했고, 마카오 시장 개척에 나선 상태다.

 충북 충주 사과농가들도 울상이다. 충주 사과는 추석을 전후로 한 해 사과 생산량의 20~30%를 판다. 충주지역은 2000여 농가가 사과를 재배하고 있다. 생산량은 연간 3만 여t으로 전국 다섯 번째 규모다. 선물용은 10㎏(20~25개) 짜리가 5~6만원에 판매되고 있다. 우종연 충주시사과협회장은 “사과는 대부분 선물용으로 판매되는데 김영란법 시행으로 타격을 입지 않을까 걱정”이라며 “FTA 여파로 외국산 과일이 넘쳐나는 데 선물용마저 제재가 걸리면 판로확보가 막힐 것”이라고 말했다.

 충남 금산 인삼재배 농민과 상인들도 걱정이 태산이다. 전국 수삼 도매 유통물량의 70%가 이곳에서 거래된다. 금산지역에서는 선물용 수삼 1채(750g·6년근)가 10만원 선에서 팔린다. 인삼은 보통 ‘채’ 단위로 포장된다. 금산군과 백제금산인삼농협 등은 대책마련에 들어갔다. 수삼은 포장 크기를 줄이고 다른 재료와 혼합 제조 등을 통해 단가를 낮추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금산수삼센터 송수근(54) 상무는 “부당함을 호소하고 법을 완화해달라는 상경시위까지 했는데 이런 결과가 나와 당혹스럽다”며 “인삼산업 전반이 위축될 것으로 우려된다”고 말했다.

 전남 영광굴비 시장 상인들은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익명을 요구한 영광굴비협동조합 소속 한 상인은 "가뜩이나 불경기인데 이제 상인들은 죽음"이라고 목청을 높였다. 몇 년 전만 해도 130마리짜리 한 상자에 7~8만원 하던 굴비 가격이 올해는 20만원으로 3배 이상 뛴 터에 김영란법이 시행되면 판로 자체가 막힌다는 것이다. 이 상인은 "요즘 5만원짜리 굴비 품질은 예전 2~3만원 수준"이라며 "현재 선물용으로 제일 잘 나가는 굴비 10마리 가격이 최소 8만원인데 누가 선물을 하겠느냐"고 불만을 터트렸다.


▶ 관련기사
[속보] 김영란법 합헌···배우자 금품수수 신고의무 부과
② 대책없는 유통업계 "안 세우는 게 아니라 못 세워"
③ '김영란법 공포'…60년 전통 한정식집, 문닫고 쌀국수집 변신



 전복 양식 어민들도 당혹해 했다. 전국 전복 어민 5500명으로 구성된 한국전복산업연합회 이승열 회장은 "그동안 수협중앙회 등을 통해 정부에 건의도 하고 (김영란법) 반대 서명 운동도 했는데 ‘소귀에 경읽기’였다"고 비판했다. 전복은 선물용으로 6만~7만원짜리(1kg)가 가장 많이 나간다.

 제주도 특산품인 옥돔·갈치 등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서귀포시수산업협동조합에서 판매되는 옥돔 선물세트는 최소 10만원부터 20만원, 갈치 선물세트는 15만원에서 최대 50만원이다.

 홍석희 서귀포수협조합장은 “김영란법은 농어민을 기만하는 법”이라며 “큰 갈치는 한 마리에 5만원이 넘는데 그럼 한 마리도 선물할 수 없게 된다”고 했다. 그는 “정부에서는 1차산업에 대한 고급화, 브랜드화를 하라고 해놓고 이렇게 법에 금액까지 명시해 버리면 어떻게 고급화가 되겠냐”고 불만을 터트렸다.

김방현·최충일·박진호·김준희 기자 kim.banghyu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