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유색인배척 날로 심해진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파리=주원상특파원】작년말 프랑스 르퓌시에 사는 한 프랑스남자는 이웃 모로코 이민가정에 뛰어들어 마구 총질, 방안아 있던 2명을 숨지게 하고 다른 7명에게 중상을 입혔다. 모로코인 가정의 연말파티가 좀 떠들썩했던게 이 프랑스남자의 분통을 터뜨렸던 것.
이보다 꼭 1년전에는 샤토브리앙시에 사는「풀래」(22)라는 프랑스 실직청년이 터키노동자들이 단골로 다니는 한 카페에 멧돼지 사냥총을 마구 쏘아 안에서 차를 마시던 2명의 터키인을 숨지게 하고 다른5명에게 중상을 입혔다.
피를 부르는 이같은 범행이 아니더라도 외국인, 특히 이민노동자들에 대한 프랑스사람들의 반발과 노골적인 인종차별 사례는 몇년새 부쩍 늘고 있다. 외국인노동자 추방을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에서 이들에 대한 개별적·집단적인 폭력행사·구박 등에 이르기까지 온갖 외국인 배척운동이 꼬리를 물고있다.
그러나 인종차별·외국인배척 등 이른바 인종문제는 프랑스만의 문제가 아니다.
같은 구대륙 유럽 여러나라들이 마찬가지로 앓고 있는 새로운 병이다.
영국의 경우 인종문제로 지난 한햇동안 10명이 죽고 수많은 중상자가 생겼으며 비교적 외국인에게 관대한(?) 이탈리아에서도『꺼져라. 아랍놈들』이라는 벽보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유럽에서 이처럼 인종차별문제가 고개를 들고 있는 것은 크게 두가지 이유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인구비율에서 유럽계(백인)가 아닌 외국인의 비중이 점차 높아지고 있는 것과 경제적 어려움, 특히 실업증가가 그 원인이다.
서독·프랑스·벨기에의 경우 전체인구에서 이른바 소수민족으로 불리는 비유럽계 외국인이 차지하는 비율이 8∼10%나 되고 영국과 네덜란드에서는 5%이상이다.
이들 소수민족은 대부분 유럽 각국의 구식민지 출신 노동이민으로 알제리·모로코·튀니지·터키·동남아인이 대종. 말할 것도 없이 유럽각국은 당초 전후의 부족한 노동력을 메우기 위해 이들을 앞다퉈가며 불러 들였었으나 이제 여건이 바뀌면서 거추장스런 존재로 보기 시작한 것이다.
우선 문화의 동질성 유지문제. 전통적으로 기독교문화권인 유럽각국에 회교사원들이 점차 늘어가고 터키식 목욕탕이 들어섬으로써 유럽의 전통문화 보존이 심각한 영향을 받고 있다는 주장이다.
게다가 0%에 가까운 유럽인들의 인구증가율을 생각하면 21세기 초까지는 유럽이「비유럽인의 유럽」으로 바뀌고 말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2백50여만명의 실업자로 골치를 앓고있는 프랑스나 마찬가지로 영국·서독 등에서도 실업문제가 인종문제와 무관하지 않다. 외국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일자리를 빼앗고 각종 사회보장혜택을 받는데 불만인 이들 나라 실업자들에게 외국인들은 눈엣가시인 것이다.
그러나 고용시장이 양분화돼 있는 이들 나라의 현실, 이를테면 유럽계가 실직중이면서도 힘들고 낮은 임금의 직장을 기피하고 있는 현실을 놓고 볼 때 유럽 각국의 인종문제가 실업증가에서 야기되고 있다고만 보기는 어렵다.
현재 유럽 각국은 법률상 외국인에 대한 차별을 두지 않고 있다. 그러나 알게 모르게 비유럽계 외국인들이 고용문제 등 각종 사회활동에서 계속 차별대우를 받고 있는 것은 앞서의 두가지 이유 뒤에 여전히 백인들의 우월감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 아닌지 모르겠다.
프랑스의 극우정당 FN(국민전선)은 외국인 추방을 공공연히 주장하고있고 우파지도자 「시락」파리시장도 오는3월 총선에서 승리할 경우 외국인들에 대한 제재조치를 강화하겠다고 공약하고 있다.
프랑스와 서독등에선 외국노동자들에게 귀국 보조금을 주어 본국으로 돌려 보내고있으며 다른 나라들도 비슷한 조치들을 취하고 있다.
프랑스의 인종차별 반대운동단체인「SOS·라시슴」이『내 친구를 건드리지 말라』는 구호와 함께 인종차별 반대운동을 격렬히 벌이고 있는 것이나 유럽 각국의 반인종차별단체들의 활동이 어느 때보다 활발해지고 있는것은 그만큼 유럽 각국에 인종차별등 인종문제가 깊이 곪아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