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위학생 대량구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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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엊그제 서울대「개헌서명」연합시위는 그 시말에서 극과 극의 상충을 보여주고 있다.
13개 대학의 운동권학생이 참가한 이 시위는 봄도 되기 전인 엄동설한에 벌어졌다. 무슨 계절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대학생들의 시위는 그만큼 집요해졌다는 하나의 신호 같기도 하다.
정부의 대응 또한 만만치 않아 경찰에 붙들린 학생들 가운데 1백89명이 구속되었다. 물론 경찰은 마구잡이로 영장신청을 한 것은 아니고 조목조목 그 기준을 따졌다고 발표하고 있다.
「사전모의참가자, 연락책, 시위전력학생, 현장지휘학생, 화염병·각목·돌 등을 들고 격렬한 행동을 한 학생」-.
이런 기준이 계속 적용된다면 1백89명의 구속만으로 끝날 일 같지 않다. 앞으로 시위가 있을 때마다 대량구속 사태가 계속될지도 모르겠다.
문제는 운동권 학생들의「집요함」이나, 정부당국의 강경 대응책이나 그 어느 쪽도 한발 물러설 것 같지 않다는데 있다.
이번 경찰에 구속된 학생의 88%가 1, 2학년이다. 그 중에서도 1학년 학생이 1백2명으로 전체의 54%다. 시위학생의 꼬리가 얼마나 긴지 알 수 있다.
운동권 학생들의 주장을 보면 이들의 최종목표는「현행 헌법 철폐」가 아니다. 개헌의 내용도 야당이 요구하는 것과 성격이 다르다.
대학가 유인물중의 하나인「민주전선」이라는 것을 보면「삼민 헌법」을 제정하기 위한「국민의회」구성을 요구하고 있다.
투쟁방법에 있어서도「노·학의 연대」를 제시하고 있다.
이것이 운동권 학생의 총의는 아니겠지만, 일각에서라도 이런 주장을 하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시위는 쉽게 끝날 것 같지 않다. 이들의 투쟁목표는 어디로 보나 현실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빈민·빈농·노동자 등 기층민중」이 지배하는「삼민 헌법」이라는 것이 국민의 마음을 끌어들일 만큼 보편 타당성을 갖고 있는 것일까. 이것은 학생들 자신의 주위에서 그 반응을 찾아보아도 쉽게 해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야당식 개헌주장이라면 정당적 기반이라도 있지만「삼민식 개헌」은 오히려 학생들의「민주화투쟁」을 고립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국민들은 그런 주장을 안도의 귀로들을 수는 없다. 아무리「순수한 젊은이」의 소리라 해도 불안한 일면이 있기 때문이다. 결국 시위운동은「운동권」입장에서 손과 익을 따져보아도 익이 많을 것 같지 않다.
운동권 학생들은 그 점에서 한번 겸허하게 주위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운동권 학생들의「운동」도 분명 성취의 보람을 찾아야 할텐데, 그런 확고한 보장도 없이 막무가내로 밀고 나간다면 맹목적·자학적 행동이라는 핀잔을 듣기에 알맞다.
한편 정부의「대량구속」식 대응도 문제는 있다. 앞서도 예시했지만 시위학생의 절반 이상이 1학년생이라는 사실은 무엇을 시사하는가. 학생 데모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는 증거다.
「강경책」이나「대량구속」이 없어서 그렇게 된 것은 아니다.
더구나 이 엄동에 학생들을 맨바닥에 꿇어앉히고 있는 광경이나, 줄줄이 손이 묶여 끌려가는 모습을 편안한 마음으로 바라볼 사람은 없다.
우울한 사람도 있을 것이고, 가슴 아파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입장에 따라서는 분통을 터뜨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 어느 쪽이든「국민화합」이라는 측면에서는 바람직하지 않다. 차라리「명분과 이유가 뚜렷한 운동권학생」들만 선별해 적절히 다루는 것이 국민의 착잡한 마음을 덜어줄 것이다.
그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강경」은 묘약도 비상약도 아니라는 사실이다. 문제를 근본에서 풀어 가는 대책 이상의 상책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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