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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숨결」재조명14년-신봉승씨와 사극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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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역사속에 잠들어 있는 인물을 TV화면을 통해 생생하게 등장시키고 있는 사람, 극작가 신봉승씨(53). 14년 동안 20여편의 사극을 써온 그는 요즘 한창 열기를 더하고 있는 사극붐에 불길을 당긴 장본인이다.
『역사라는 강물에 빠져 허위적거린 14년이었지요. 쓰는 시간보다 관련사료를 읽는 시간이 몇곱절 더 필요한 게 바로 사극입니다』


신씨가 자신의 표현대로「사극의 강물에 빠진」것은 72년. 64년 TBC-TV 개국과 함께 본격적인 방송작가활동을 했던 그는 72년『사모곡』으로 청춘멜러물과 문예물 각색작가라는 딱지를 떼고 TV사극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연화』(73년), 『인목대비』, 『윤지경』(74년), 『별당아씨』(75년), 『허부인전』(77년) , 『정부인』『타국』(79년), 『풍운』(82년)으로 이어진 그의 사극은 83년부터 시작한『조선왕조 오백년』의「설중매」「풍란」「임진왜란」에서 꽃을 피웠다.
「설중매」와「풍란」으로 가열된 사극열기는 안방극장의 드라머와 영화의 역사극시대라는 하나의 뚜렷한 문화현상을 낳았다.

<영화에 열기 점화>
「풍란」의 인기에 힘입어 두TV는 시대극『아무렴 그렇지 그렇고 말고』(임충극본), 『억새풀』(김기팔극본), 『새벽』(김교식극본), 『젊은 그들』(김동인원작), 『꽃반지』(유열극본), 『태평무』(이철향극본) 등과 역사드라머『선구자』(김항명극본)를 계속 등장시켜 가히 역사극시대극의 붐을 이뤘다.
영화쪽에도 현재『어우동』이 화제속에 상영되고 있고『황진이』등 몇몇 작품이 제작단계에 들어가 있다.
『사극이 인기를 끄는 것은 작가의 눈을 통한 역사의 재조명으로 오늘의 현실을 그에 비추어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영화쪽도 비록 제작비는 많이 들겠지만 해외무대진출이나 우리의 혼이 담긴 영화를 만들자면 그 소재를 역사물에서 찾아야 한다고 봅니다』
신씨 나름대로의 사극붐에 대한 현상 해석이다.
사극이 붐을 이루면서 이분야의 신진 작가군이 형성됐다. 신씨가 사극을 쓰기 시작한 70년대 초까지만 해도 사극작가는 이서구·김영곤씨 정도였으나, 80년대에 들어서면서 임충·이은성·이철향·김항명씨 등이 새로운 사극작가로 두드러진 활동을 보이고있다.
시나리오작가로 출발, 1백80여편의 시나리오를 쓴 신씨가 사극을 처음 쓰게된 것은 방송국 측의 요구에 의해서였지만, 그 이후 그의 사극집필에 대한 정열은 남다르다.

<역사문학연 설립>
『사극이나 역사소설이 작품임을 강조하여 사실을 주관적으로 해석, 허구의 틀속에 넣으면 역사를 왜곡하는 오류를 범하게 됩니다. 반대로 역사자체에만 충실하다 보면 작품이 아니라 역사책이 되어 버리는 거지요』
그는 기존의 역사소설이 인물사에 대한 철저한 연구 없이 야사를 바탕으로 그려져 적지 않은 오류를 범했다고 지적한다.
83년1월「구겨진 역사를 바로 펴보겠다」는 생각에서 그는 한국역사문학연구소를 설립했다. 역대왕조 계보도와 대궐을 재현한 미니어처, 『조선왕조복식도감』 등 참고서적으로 가득찬 15평정도의 사무실에서는 소설가 고원정·유재주씨, 시인 박덕규씨가 그를 돕고있다.
자신은 어디까지나 작가일 뿐이라고 강조하는 신씨지만 역사이야기만 나오면 열변을 토한다.
역사는 현실의 거울이며 그것이 부끄럽든 자랑스럽든 떳떳하게 바로 드러내 귀중한 체험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실왜곡 비판도>
『역사소설이나 사극이 아무리 픽션이라고 해도 그 시간과 장소를 바꿔 놓을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역사소설이나 사극은 이 한계속에서 작가의 상상력이 부가되는「행간의 문학」 인 것이지요』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조선왕조실록』등의 사실에 근거하고, 시대의 성격을 분석한 다음 인물과 사건을 그려 나간다는 그는 그동안 많은 항의와 비판, 제약이 있었다고 회고한다.
수십권의 족보를 들고 와서 당장 법원으로 가자고 윽박지르는 사람들도 있었다. 한명회·유자광 등 일부 인물을 지나치게 미화했다는 지적과 함께 역사를 왜곡했다는 비판도 많았다.
「풍란」이 한창 방영되던 지난해 4월에는 잦은 정변과 사색당파의 당쟁 등 부정적인 내용이 많다고 해서 조기종영의 위기에까지 처했다.
이에 대해 신씨는『사극을 현실의 일과 대비하여 보는 관점(정책적 차원) 때문에 생기는 특정시대나 인물에 대한 제작제한(금기소재)은 빨리 사라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역사는 살아있다>
이런 이유로 드라머에서 제대로 쓰지 못하는 부분을 보완하고, 일단 방영되면 사라지고 마는 사극의 한계(1회성)를 극복하는 방법으로 그는 총48권짜리의 소설『조선왕조오백년』을 극본과 함께 쓰고 있다. 현재 28권째인「왜란」편까지 나와 있다.
『14년 동안 사극을 쓰면서 느낀 것이 있다면「역사란 어떤 주기를 두고 반복된다」는 점과「역사는 죽어있는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살아서 움직이는 맥박」이라는 점입니다.』
대중매체를 타고 더욱 가속화될 이 사극붐이 어떤 시각에서 구겨진 역사의 주름을 더 줄지, 또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어떤 형태의 역사교과서로 비칠지 주목된다.

<양재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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