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부, 가습기 살균제 PHMG 유해성 공표 누락…직무유기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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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노동부가 가습기 살균제에 사용된 PHMG 성분의 유독성을 인지하고서도 14년 동안 시민들에게 알리지 않은 것으로 확인돼 직무유기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97년 유독성 인지했으나 산안법 어기고 공표 않아
14년 뒤인 2011년 피해 확인 뒤에야 관련사항 게시

국회 가습기살균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는 신창현(더불어민주당)·이정미(정의당) 의원과 송기호 변호사는 26일 보도자료를 통해 "고용부가 1997년 4월에 옥시 가습기 살균제의 원료물질로 사용된 PHMG의 유독성을 인지하고도 이를 공표하지 않음으로써 은폐 의혹과 함께 옥시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피해를 양산한 책임이 있다"고 밝혔다.

보도자료에 따르면 PHMG를 제조한 유공(현 SK케미칼)은 97년 2월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PHMG의 '유해성 조사결과 보고서'를 고용부에 제출했고, 고용부는 같은 해 4월 유해성 등을 검토해 경구 독성, 자극성 등의 유해성을 확인했다. 하지만 고용부는 이를 공표하지 않았다. 이는 산업안전보건법 40조 3항을 위반한 것이다.

고용부는 옥시 가습기 살균제 참사가 확인된 2011년에야 PHMG에 관한 물질안전보건자료(MSDS)를 산업안전보건공단 홈페이지에 게시했다. 처음 유해성을 인지한지 14년 만이다.
특히 고용부는 지난달 관련 사실에 대한 정보공개 청구를 한 송기호 변호사에게 "유공의 PHMG 유해성 조사결과 보고서를 보유하고 있지 않으며, 제조사가 조사 보고서를 제출하지 않았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답변한 바 있다.

하지만 최근 신 의원과 이 의원이 고용부에 자료 제출을 요구하자 고용부는 산업안전보건공단에 해당 서류가 있음을 확인하고 뒤늦게 의원실에 제출했다.

송 변호사는 "유독성을 인지하고도 공표를 누락한 것은 고용부의 명백한 직무 유기"라고 말했다.

신 의원은 "고용부가 규정대로 유해물질이란 사실을 바로 공표했다면 옥시 살균제로 인한 피해를 상당 부분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 제품 용도를 "섬유의 항균제'로 표시
97년 유공이 고용부에 제출한 '유해성 조사결과 보고서'에는 ①PHMG를 '유해물질'로 표시했으며 ②제품의 용도를 '섬유의 항균제'라고 특정했고 ③'눈에 접촉하면 심각한 자극을 줌', '흡입했을 때 환자를 신선한 공기가 있는 곳으로 옮길 것', '병적인 증세를 보이면 의사의 진료를 받을 것', '피부에 접촉했을 때 충분한 물로 오염된 피부를 담글 것' 등의 취급 주의사항을 서술했고 ④PHMG에 오염된 물은 '폐수처리시설이 있는 위생 시설로 보내거나 허가를 받고 폐기돼야 한다'고 적혀있다.

SK케미칼은 PHMG 용도를 '공업용 항균제'로 표기하였으나 97년 당시 유공은 PHMG의 용도를 '섬유 항균제'로 표시했던 사실이 이번에 처음 확인됐다.

송 변호사는 "용도를 섬유 항균제로 표기한 것은 일반 시민들이 이 물질에 노출될 가능성이 훨씬 많음을 의미하고, 이 때문에 고용부는 시민들에게 유독성을 적극적으로 알릴 필요가 있었다"고 강조했다.

이정미 의원은 "PHMG에 오염된 물을 폐수처리시설로 보내야 한다는 문구를 확인했다면 (옥시 등 가습기 살균제 제조업체가) 결코 PHMG를 가습기 살균제 원료로 사용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고용부 관계자는 "옥시 측이 PHMG 구매 당시 판매자로부터 MSDS를 받은 사실이 확인됐다"며 "옥시 측에서도 경구독성 등에 대한 정보를 알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kang.chan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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