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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가 흘러넘친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아침에 일어나 TV를 켜면 생활영어, 한낮에 거리에서 택시를 타면 라디오에서 영어한마디, 신문을 펴들어도 영어회화. 그밖에도 영어교재 영어카세트테이프 녹화테이프, 온통 대한민국이 영어판이다. 이쯤되면 이미 영어는 공해가 아닐수 없다.
바야흐로 세계가 지구촌인 요즈음이고, 특히 우리나라는 86아시안게임 88올림픽을 앞두고 밀려올 관광객을 적절히 안내하기 위해서도 세계 공용어가된 영어를 배우는 것은 나쁘지 않으리라.
그러나 요즈음의 우리나라 형편은 무언가가 잘못돼도 아주많이 잘못된 것 같다. 밀려올 외국관광객을 친절히 안내해야할 관광안내원은 그들이 불편을 느끼지않게 영어회화 실력을 쌓아야 하리라.
공항의 직원도, 택시기사도, 그들에게 우리 상품을 팔아야할 상점이나 백화점의 판매원들도 영어가 필요하리라. 그러나 왜 이처럼 심지어 유치원 아이들부터 노인까지, 온국민이 영어를 배워야 한다고 날뛰어야하는지 모르겠다.
외국어란 어디까지나 자기의 일을 하고 공부를 하는데 필요한 도구일 뿐이지 그것이 목적이 되어버린다면 주객전도가 아닐 수 없다. 일반인들까지도 영어한마디 못하면 어쩐지 주눅드는 분위기, 영어를 잘해야만 출세하는 현실이라면 문제가 아닐수 없다.
지난 85년 일찌기 60년대에 올림픽을 치렀던 일본 쓰꾸바 박람회를 갔을때였다. 되도록 젊은 대학생을 골라 박람회장안의 한국관을 영어로 물었지만 대부분이 영어를 못한다고 고개를 흔들며 일본어로 답을 하는 것이었다.
오늘날 어른 아이할 것 없이 영어공부에 열을 올리는 주변을 돌아보면서 어쩐지 가난한 집에서 귀한 손님을 잔뜩 초대해놓고 법석을 떠는 것 같아 염려스럽다.
또한 수천년동안 우리조상들이 한문공부에 긴 세월을 바쳤던 것, 일제 36년간 남의 말과 글을 배우느라 고통스러웠던 우리의 역사를 생각케되는 것이다. 차라리 이럴바엔 세계인 누구나에게 통할수 있는 공통어를 배우는 것이 어떨까.
한국인만이 아니라 세계 모든 사람들이 모국어와 함께 세계 공통어로 에스페란토를 배운다면 시대에따라 국제정세·국내정세에 맞춰 외국어를 배워야하는 어려움은 크게 완화될수있지 않을까?
세계의 모든 사람들을 하나의 언어로 묶을수 있다면 그들사이의 많은 갈등과 오해는 사라지고 인류가 평등해지고 그에따라 참다운 세계평화가 올 수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 날이 올것을 믿으며 사는 사람들이있으니 그들이 바로 에스페란토를 펴는 사람들 글자의 뜻그대로 『희망하는 자』 다.
요즈음 우리주변에 범람하고있는 영어의 홍수속에서 자신을 버티느라고 버둥거리면서 생각한 것이 세계 공통의 언어라면 이것은 지나친 비약인걸까.
어떻든 우리는 요즈음 영어에 너무 정신을 못차리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인 것같다. 말이 바로 생각이요, 그것은 또한 우리의 주체성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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