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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걸음 뗀 고준위 방폐장…12년 시간 두고 부지 선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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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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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 후 핵연료를 임시 저장하는 월성 원전의 콘크리트 시설. [사진 한국수력원자력]

30여 년간 표류한 ‘사용 후 핵연료 처리장’ 건설을 위한 발걸음이 시작됐다. 정부는 25일 황교안 국무총리 주재로 원자력진흥위원회를 열고 ‘고준위방사성 폐기물 관리 기본계획’을 확정했다. 기본계획에 따르면 원자력 발전 뒤 남은 연료를 보관할 처리장이 들어설 지역은 향후 12년간 조사와 공모, 여론수렴을 통해 정한다. 부지가 정해지면 2035년께 중간저장시설이 들어서고, 영구처분시설은 2053년에나 가동할 수 있다.

9번의 실패 경험…소통·안전에 방점
7년 중간저장시설 짓고 14년 점검
다시 영구처분시설 건설에 10년
“타당성 조사결과 2020년 나올 것”
해외에 보관하는 안도 함께 추진

다만 해당 시설이 들어서는 지역 주민을 설득해야 하는 과제가 남아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정동희 원전산업정책관은 “중간저장시설이 완공되기 전까지는 기존 원전의 저장시설을 확충해 한시적으로 폐기물을 관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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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산업통상자원부

정부가 이번에 내놓은 기본 계획은 2009년 이명박 정부 때 근거를 만들어 지난해까지 6년간 공론화 절차를 거쳐 만든 권고안에 바탕을 뒀다. 이를 토대로 정부가 기본계획을 만드는 데 또 1년이 흘렀다. 애초 공론화위원회는 2020년까지 고준위 방폐장 부지를 확정하도록 권고했지만 정부는 이를 2028년으로 늦췄다. 채희봉 산업부 에너지자원실장은 “주민 소통과 안전을 위한 조사에 충분한 시간을 들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정부가 조심스럽게 진행하는 건 사용 후 핵연료 처리 문제가 그만큼 예민하기 때문이다. 1983년 이후 방폐장 건설을 추진하다 반발에 부딪혀 실패한 경험만 아홉 차례다. 특히 참여정부 시절 ‘부안사태’는 일종의 ‘트라우마(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더 이상 결정을 미루기는 어려워졌다. 월성 원전의 부지 내 저장소가 2019년이면 가득 차고, 영광 한빛 원전의 저장소도 2024년이면 포화상태가 된다. 핀란드·스웨덴·독일은 이미 부지를 확보했거나 선정 절차가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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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산업통상자원부

정부가 가장 공을 들인 건 부지 선정 과정이다. 우선 지질 등이 적합하지 않은 지역부터 사전에 골라낸 뒤 ▶부지 공모 ▶해당부지 기본 조사 ▶주민 의사 확인 ▶부지 심층조사를 단계적으로 거치기로 했다. 선정된 부지에는 7년간 중간저장시설을 짓는다. 영구저장시설을 짓기 전 당장 원전 내 포화상태에 이른 고준위 방폐물을 옮겨놓을 곳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후 지하연구시설(URL)을 지어 시스템이 안전하게 작동하는지 실증 연구를 한다. 이 과정에도 14년이 걸린다. 이후 문제가 없는 것으로 판정이 나면 10년간 영구처분시설을 지을 예정이다. 유치 지역에는 유관 기관 유치, 지원 수수료, 도시개발 등 다양한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한다는 의견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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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산업통상자원부

장기간의 프로젝트로 변수가 많은 만큼 대안도 병행 추진된다. 나라 밖에 사용 후 핵연료를 보관하는 방안이 그중 하나다. 현재 호주가 사용 후 핵연료 국제공동저장 시설을 건설하기 위한 주민 동의를 받고 있다. 사용 후 핵연료를 재활용하는 기술도 개발할 예정이다. 핵심은 사용 후 핵연료(폐연료봉)에서 다시 연료로 쓸 수 있는 부분을 골라내는 기술인 ‘파이로(Pyro) 프로세싱’이 그것이다. 신재식 미래창조과학부 원자력진흥정책과장은 “우리나라는 핵확산금지조약(NPT)에 따라 플루토늄 재처리를 못하기 때문에 미국과 공동으로 파이로 프로세싱 기술의 타당성을 조사하고 있다”며 “2020년이면 결론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일단 계획이 확정되면서 ‘폭탄 돌리기’를 멈출 계기는 마련됐지만 정부가 향후 맞닥뜨릴 시험대도 만만치 않다. 당장 중간저장시설이 완공되기 전 한시적으로 저장시설을 늘리기로 한 원전 지역 주민들의 반발이 일고 있다. 법제화를 위해선 국회도 거쳐야 한다. 성풍현(KAIST 교수) 한국원자력학회장은 “로드맵이 정권이 바뀌더라도 계획대로 추진되려면 무엇보다 입법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방사성 폐기물=사용 후 핵연료처럼 방사성이 강한 것은 고준위, 작업복·장갑같이 낮은 저준위로 나뉜다. 관리 기간은 저준위는 100년(동굴처분장), 고준위는 1만 년이다.

조민근·문희철 기자 jm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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