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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누리과정 핑퐁 보며 애 낳으라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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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윤석만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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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만
사회부문 기자

두 자녀를 키우고 있는 이은영(35·여)씨는 ‘누리과정’ 뉴스가 나올 때마다 불안하다. 유치원에 다니는 큰아이(6)는 걱정이 덜한데, 어린이집에 맡긴 둘째(4)에겐 늘 초조함이 앞선다. 올 초의 ‘보육료 대란’이 언제 재연될지 몰라 걱정이다. 이씨는 “ 유치원은 나라에서 지원해주고 어린이집은 못 받는다는 게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답답한 마음이 드는 것은 이씨뿐일까. 직장인 김운용(37)씨도 지난 22일 발표된 정부의 추경예산안을 보며 납득할 수 없는 대목이 있었다. 정부가 누리과정 예산의 부족분에 쓰라며 1조9331억원을 증액했는데, 시·도 교육청이 “증액분은 지방교육채 상환과 학생 교육활동에 쓰겠다”고 정부 입장에 반대한 것이다. 특히 “교육청이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을 편성하는 것은 법률 위반”이라는 전국 시·도교육감협의회의 설명을 이해할 수 없었다. 김씨는 “부모 입장에서 유치원이든 어린이집이든 아이를 맡기기는 매한가지인데 맨날 예산 편성을 놓고 갈등을 벌이는 것에 화가 난다”고 말했다.

영유아 자녀를 키우는 부모는 헷갈려하지만 현행법상 어린이집(0~5세)과 유치원(3~5세)은 전혀 성격이 다른 기관이다. 유치원은 유아교육법에 따라 교육부와 교육청이 관리·감독을 한다. 이에 비해 어린이집은 영유아보육법상 사회복지시설로 분류돼 보건복지부와 지방자치단체가 관리한다. 사실상 같은 영유아 기관이지만 체계가 다르다 보니 늘 예산 갈등의 원인이 된다. 교육부와 교육청이 누리과정 예산 책정을 놓고 다투는 부분도 이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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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김회룡 기자]

당초 정부는 유치원과 어린이집의 이원화된 체제를 일원화하는 유보통합(유아교육과 보육 통합)을 올 연말까지 마무리 짓기로 했었다.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으로 2013년 국무총리실 산하에 통합추진단까지 꾸렸다. 그러나 아직까지 진척된 내용은 별로 없다. 교사의 자격과 양성 체계, 처우 등을 동일하게 맞춰야 하기 때문에 예산과 행정적 측면에서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아무리 난관이 있더라도 그건 정부의 사정 아닌가. 부모 입장에선 유치원과 어린이집이 차별받는 게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 완벽한 유보통합엔 시간이 걸리겠지만 내년부터는 적어도 누리과정 예산 편성에서 유치원과 어린이집이 다른 대우를 받아선 안 된다. 어린이집의 관할을 교육부로 옮기든, 예산 지출을 교부금에서 하도록 법에 명시하든 책임 주체를 일원화해 두 기관 간 핑퐁 갈등을 그만 보게 해야 한다.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해서도 유보통합은 시급하다. 안심하고 아이들을 믿고 맡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초저출산국(출산율 1.3명 이하)의 늪을 빠져나갈 수 있는 첫째 조건이다.

윤석만 사회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