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와의 만남] <풀꽃도 꽃이다>로 돌아온 작가 조정래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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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0만 한국 청소년이 맞는 사교육의 폐해 담아… 빠른 경제성장 이룬 아버지 세대의 배움에 대한 열망은 자식에게 무엇을 남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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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솔까말(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1등 한 놈이라고 해서 행복한 건 아니라고.”

“못생겨도 꼴등이어도 잡풀에서조차 피어난 꽃은 아름답잖아”

“머잉(무슨 소리)?”

“그 새낀 담 시험에서 1등 뺏길까 봐 불안불안해서 밤마다 존나 쌩똥 싼다구.”

“글쿠나(그렇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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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조정래가 국내 사교육시장의 폐해를 담은 장편 <풀꽃도 꽃이다 (2권)>를 펴냈다. <정글만리> 이후 3년 만의 신작이다.

<풀꽃도 꽃이다>의 첫 장면에 나오는 고등학생들의 대화다. 100년 우리 역사를 아우른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 등 대하소설을 썼던 작가의 표현으로 보기엔 영 낯설다. 고희를 넘긴 소설가 조정래(73)가 ‘더 젊어진’ 신작을 들고 돌아왔다. <정글만리> 이후 3년만이다.

신작 <풀꽃도 꽃이다>는 대한민국의 사교육 시장을 꼬집은 장편이다. 그는 “내 손자들이 사교육 시장의 거센 파도에 대책 없이 휩쓸리는 걸 보며 비통한 심정을 담아 쓴 작품”이라고 말했다. 전쟁 세대 이후 ‘배우지 않으면 먹고 살기 힘들다’는 위기의식으로 자식 교육을 최종 목표로 삼고 발버둥친 게 50여 년이다.

‘과연 아버지 세대가 이루지 못한 꿈을 자녀들이 해냈을까?’란 물음이 조정래 작가가 펜을 든 이유다. 3년간 각급 학교와 사교육 현장을 찾아 다니며 680만 한국 청소년의 내면세계까지 생생하게 담고자 했다. 7월 12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그를 만났다.

Q. 청소년들이 쓰는 인터넷 용어나 줄임말의 대화로 출발하는 첫 장면이 낯설었다. 격세지감을 느끼진 않으셨나?

“전혀. 언어란 생성하고 소멸하는 법이다. 옛날부터 그랬다. 자연스럽게 이들의 유행을 따라가면 된다. 초·중·고등학교 현장에 가서 공부하는 모습을 보고 학생과 좌담을 했다. 고등학생, 중학생이 된 손자들도 영감이 돼주었다. 책 뒷부분 가면 내가 만든 신조어도 나온다.”(웃음)

Q. 요즘 세대까지도 이해하는 능력이 놀랍다.

“소설을 쓸 때 고민해야 할 것은 어떻게 하면 더 재미있게 쓰느냐다. 이젠 스마트폰의 몇 천 개 기능과 싸워야 한다. 답은 간단하다. 손에 쥐고 놓지 못하는 스마트폰만큼 소설을 손에서 놓지 못하게 구성하면 된다.”

Q.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이 ‘20세기 한국 현대사의 3부작’으로 1500만 부라는 출판사상 초유의 판매 기록을 수립했다. 그런 문학의 거장이 선택할 만한 소재로 보이지는 않았는데, 구체적인 집필 동기가 궁금하다.

“나는 3년간 고등학교 선생을 했다. 내 영혼의 99%는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의 교육이 심어놓은 뿌리다. 사람답게 사는 건, 지식이 아니라 병행해서 함께 사는 가치관을 말한다. 어떤 작가가 ‘천재와 미녀는 절대적 우연에 의해서 탄생한다’고 말했다. 공부를 잘 하는 건 인간의 많은 능력 중 하나일 뿐 대단한 게 아니다. 과대평가할 필요는 없다. 공부 잘한 사람이 인격적 대우를 받는다는 사회의 인식과 관념을 고쳐야 한다. 못생겨도 꼴등이어도 잡풀에서조차 피는 꽃은 아름답다. 그런데 급진적인 경제성장은 인간을 기능화, 기계화시켰다. ‘이래서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썼다.”

Q. ‘사람이 사람답게 살려면 교육이 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체 소설을 관통하는 메시지인가?

“옛 속담에 ‘콩알 하나를 10명이 나눠먹고 남아서 저수지에 던졌더니 풍덩 하는 소리가 나더라’는 말이 있다. 무시무시한 해학이다. 간디는 ‘지구상에서 나는 모든 생산물은 모두가 나누고도 남는다. 하지만 부자의 욕심을 채우기엔 모자란다’고 말다. 내 작품의 철학이다.”


| “70억 인물의 미세한 차이 문자화해 다양성 전달하는 게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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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래 작가는 40년 동안 육필 원고쓰기를 고 집 했 다 . < 풀 꽃 도 꽃 이 다 > 의 육 필 원 고 일 부 .

Q. 이전 작품들에서는 인간애가 많이 느껴진다. <태백산맥> <한강> <아리랑>의 등장인물만 1200명이라는데 인물의 차이를 어떻게 연구하고 작품에 담나?

“문학은 인물에 대한 탐구이면서 역사에 대한 통찰이다. 나뭇잎도 같아 보이지만 미세하게 다르다. 지문도 70억이 다 다르다. 하늘이 하는 일이다. 그 차이를 작가가 발견하고 문자화해 독자에게 다양성을 보여줘야 한다. 나는 작명가이자 관상쟁이다.”(웃음)

Q. 전쟁, 피난, 쿠데타 등 근·현대사의 비극을 목도하셨고, 당신의 인생역정이 작품에 절절히 녹아 있다. 역경이란 경험이 있어야 작품이 빛날 수 있나?

“체험이 절대적인 자양분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릴케는 ‘끝없이 체험하라. 그리고 완전히 잊어버려라. 필요하면 100% 재생시키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태백산맥>에서 배고픔에 눈앞이 흐릿하고 아지랑이가 피어 오르는 어릿함을 겹쳐 어지러움이 두 배가 된다는 묘사를 한 장면이 있다. 열한 살 때 느꼈던 기분이다. 겉도랑을 올라가는 웅덩이에 민물새우 수천 마리가 휘돌아가는 모습을 보았다. 기가 막히다. 그 아름다움을 바라보면 한나절이 흘러간다. 미세한 움직임이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하루를 버릴 수 있을 만한 집념이 있어야 소설을 쓴다.”

Q. 성질 급하면 작가는 안 되겠다.(웃음)

“절대 안 된다. 나는 4학년 때 달걀이 나올 때부터 공기와 만나면서 단단해지는 것을 목격했다.”

Q. 철저한 자기관리로도 유명하다. 건강관리는 어떻게 하나?

“육체와 정신은 똑같다. 세상에서 가장 섬세한 기계가 바로 인간이다. 인간의 핏줄을 이으면 지구를 7바퀴 반이나 돈다. 소식하고 채식하면서 운동하고 산책한다. 아침에 국민보건 체조를 두 번 한다.”

Q. 하루 일과 중 집필 시간은 주로 언제인가?

“평생 6시에 기상한다. 젊을 때는 새벽 2시에 잤었다. 요즘은 12시에 잠들어 있어야 몸에 문제가 없다고 해서 11시부터 잔다. 잘 써질 때는 45매도 거뜬하다.”

Q. 작가라면 소위 글발이 사는 시간이 있지 않나?

“프로는 글발이 항상 살아있어야 한다.”(웃음)

Q. 공처가로도 잘 알려져 있다. 아내인 김초혜 시인은 여전히 ‘날로 새롭게 피어나는 꽃’이신가?

“변함없다. 매일같이 놀란다. 소설(본인)은 시(김초혜 시인) 보다 못하다. 모든 문학도는 시를 쓰기 위해서 산다. 삶의 재미가 이런 거다.”

Q. 시대에 따라서 작가의 의식 세계가 변화하나?

“변하지 않는다. 등단 4년 만에 낸 첫 번째 작품 <황토>를 내면서 작가의 말에 이렇게 썼다. ‘한정된 시간을 사는 동안 내가 해득할 수 있는 역사, 내가 처한 사회와 상황, 그리고 그 속의 삶의 아픔을 결코 외면하지는 않을 것이다.’ 서른 둘에 적은 결심이었다. 4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내가 글 쓰는 이유다.”

Q. 다음 번에는 어떤 문제를 글로 쓸 생각인가. 소개해달라.

“우리가 당면한 현실을 소재로 할 것이다. ‘국민에게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를 던질 것이다. 취재는 이미 되어 있다. 상당히 말썽이 일어날 수 있는 소설이다. 빅토르 위고가 원했던 사회혁명을 전제한 소설일 수도 있다. 5권짜리가 될 것 같다.”

글 박지현 기자 centerpark@joongang.co.kr 사진 임현동 기자 lim.hyund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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