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복지사회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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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일찌기 스파르타란 나라가 있었다.
부국강병을 국가의 목표로 삼아 철저한 군사 통치 체제로 한때는 그리스 20여 도시 국가 중 패자가 되기도 했던 나라.
시민은 모두 군인이었다. 여자들에게도 군사교육이 장려되었다. 출생에서 사망에 이르기까지 국민의 일생은 국가의 관장 하에 있었다. 특히 교육은 완벽한 국가 통제하에 이루어졌다.
태어난 어린이는 허약하면 들판에 버려 죽게 했다. 튼튼한 아이만 부모에게 맡겨 7세까지 기르게 하다가 7세가 되면 국가가 운영하는 교육장에 들어가 용맹·인내·복종과 강한 체력을 갖춘 군인으로서 교육을 받았고 21세부터 30세까지는 병영 생활을 해야만 했다.
스파르타 같은 나라가 오늘에 존재한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도 부국강병의 터도 닦기 전에 미개 야만으로 지탄받아 세계의 일원으론 설 수가 없을 것이다.
「복지국가」의 이념이 일반화된 현대에 들어 장애자들에 대한 국가와 사회의 인식은 그들을 사회의 「짐」이 아니라 일부로 받아들여 그들에게도 인간다운 삶을 보장해 주려는 차원에 이르러 있다.
이 같은 인류적 인식을 바탕으로 유엔은 81년을 「세계 장애자의 해」로 선포하고 회원국들에 장애자 복지의 실천을 촉구했었다.
우리나라도 「장애자의 재활·자립, 밝아 오는 복지사회」를 구호로 내걸고 여러 가지 행사로 시민의 관심을 일깨우고 「심신 장애자 복지법」을 만드는 등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러나 그로부터 5년, 의과대학에 응시했던 소아마비 수험생이 바로 그 신체상 약간의 부자유 때문에 대학 입학을 거부당한 사건은 그 동안 우리가 기울여 온 「장애자 복지」에 대한 관심의 폭과 깊이를 드러내고 말았다.
장애자가 그 장애만으로 부당한 차별대우를 받지 않는다는 평등의 기본권은 대학 문전에서도 거부당하고 있다.
억울한 장애자 낙방생의 보도가 나간 23일 한 독자는 전화를 걸어 『아직 이런 문제조차 원칙이 없으면서 무슨 복지사회냐』고 분통을 터뜨리기도 했다.
한 사회 사업 봉사자는 장애자 취업을 알선하기 위해 기관·업체를 심방할 때마다 『성한 사람도 일자리가 없는데…』하는 대꾸를 노골적으로 듣거나 표정으로 읽게 된다면서 우리 사회의 의식 수준이 문제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장애자를 치료하고 교육해 사회의 일원으로 통합하는 일은 문명사회의 의무일 뿐 아니라 사회복지의 지름길이기도 하다.
전국에 1백만으로 어림되는 심신장애자의 85%는 후천적 요인에 의해 장애를 갖게 된 것으로 조사돼 있다. 그 중엔 교통사고·산재 등도 포함돼 있다. 이들 가운데 5% 남짓한 중증 장애자를 제외하면95%는 시민으로서의 역할 분담이 가능하다는 진단이다. 이들을 무관심 속에 쓸모 없는 인간으로 버려 둠으로써 사회의 짐을 갈수록 늘릴 것인지, 이들을 사회에 복귀시켜 짐을 덜고 함께 웃고 살 것인지는 어떤 의미에서 경제적 선택의 문제라고 본다. 【문병호 사회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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