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 구역의 재조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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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행정구역의 재조정 문제는 어제·오늘에 제기되었던 과제가 아니다. 몇해전에는 한해에도 몇번씩 이 문제가 거론되기도 했다. 그때마다 행정당국은 곧 조정할 뜻을 밝혔지만 지금껏 지방행정의 커다란 숙제로 남아 왔다.
이 문제를 놓고 내무부가 올해 주요 업무 계획의 하나로 올해 안에 전국의 불합리한 행정구역을 생활권과 경제권·행정권이 일치하도록 전면 조정하겠다고 밝힌 것을 또 한번 주목해 본다.
사실 주민의 생활권이나 경제권이 행정권역과 일치하지 않음으로 해서 겪어 온 불편이나 고통, 경제적 손실 등은 이루 헤아리기 힘든다.
가까운 곳에 관할이 다른 행정관청이나 법원·검찰·경찰서 등을 두고 몇백리나 되는 자기 관할 관청으로 가야 사소한 민원이라도 해결할 수 있는 경우는 수없이 많다.
농작물이나 생필품을 사고 팔거나 심지어 학교까지도 가까운 읍이나 시·군청 소재지에 진학, 왕래하는 터에 유독 민원만은 배나 장거리 버스를 갈아타며 볼일을 보아야 하는 지역이 한둘이 아니다.
충북 옥천읍만 해도 대전이 생활권으로 대전∼옥천간에 시내버스까지 운행되고 있다.
그럼에도 도청 소재지에 볼일이 있으면 대전을 거쳐 도청이 있는 청주까지 1백20리 길을 버스로 시달려야 하는 실정이다.
경남 의창군 천가면은 3 ㎞떨어진 부산이 생활권인데도 군청 소재지가 있는 마산까지 배와 버스를 갈아타는 불편을 겪고 있다.
이 같은 불편과 경제적 낭비는 고속도로와 댐 등이 새로 건설된 이후 더욱 심해졌다. 빤히 쳐다보이는 이웃 마을을 가려해도 고속도로가 가로놓여 멀리 우회해야 하며, 이점에서는 댐이 들어선 지역도 예외가 아니다.
전국이 1일 생활권이니, 반나절 생활권이니 하는 오늘날에 와서 이러한 불합리가 아직도 있어서야 될 일인가.
오늘의 생활권이나 경제권은 도로망을 중심으로 형성되게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걷는 것 외에는 별다른 교통 수단이 없던 옛 시절에 산맥 등 지형에 따라 설정했던 행정구역을 지금까지 개편하지 않았던 것은 쉽사리 이해할 수 없다.
물론 행정구역을 바꾸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닌 줄 안다. 지역 주민의 강한 보수성과 이해관계도 무시할 수 없다.
또 지역 기반을 오랫동안 다져 온 국회의원이나 국회의원을 꿈꾸는 예비 후보자들의 입김도 드셀 것이다.
행정당국이 행정구역 조정의 필요성을 절감하면서도 여태껏 손을 대지 못했던 것도 바로 이해와 입김 때문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행정의 요체는 민주성과 합리성·능률성이다. 지역 주민 대다수가 불편을 호소하고 행정 비용과 경제의 비효율이 초래된다면 행정 능률도 높일 수 있고 주민들의 뜻도 살리는 합리적 조정이 더 이상 유예될 수 없다. 특정인이나 일부 계층의 이해 때문에 지역간의 균형 개발이라는 국가 목표와 대다수 주민이 희생되어서는 행정의 민주화에도 역행하는 것이다.
행정구역 재조정과 함께 도·군·면으로 되어 있는 현행 지방 조직 체계의 전면적인 개편도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몇해전에 거론되기도 했지만 도와 면 사이에 끼여 있는 군을 없애 도와 읍·면을 직결시킴으로써 행정 비용도 대폭 절감하고 번잡 요인을 제거해 행정 능률을 높이는 방안도 강구해야 한다. 내무부가 올해 지방행정의 주요 시책 결정에 다수의 주민들을 참여시키기로 한 상설 기구의 신설에 기대를 걸며 이번 행정 구역 조정도 이 기구를 활용, 과감히 진행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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