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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국가와 북핵, 그리고 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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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종
이영종 기자 중앙일보 통일전문기자 겸 통일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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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종
통일문화연구소장 겸
통일전문기자

이달 초 북한과 마주한 중국 동북 접경지대를 다녀왔다. 압록강과 두만강을 따라 5박6일 동안 1750㎞를 달리는 여정이다. 이 지역은 북한의 납치 우려로 우리 정부가 여행 자제령을 내린 곳이다. 그런데도 북·중 접경 답사에 나선 건 청년·대학생들에게 북녘 땅과 주민 삶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자는 판단에서다.

“트럼프 찍어야” 주장한 북한, 미 공화당에 ‘노예국가’ 뒤통수
현실로 다가온 북핵 위협에 대응 못하면 결국 굴종의 길밖에

중앙일보가 주관한 2030세대의 통일 프로그램인 ‘청년 오디세이’에 참가한 청년·대학생 23명이 함께 길을 나섰다. 이들이 맨 처음 만난 건 분단의 냉혹함이다. 북한의 함경북도 온성군과 중국을 연결하는 길이 320m의 투먼(圖們)대교는 ‘돌아올 수 없는 다리’였다. 북한 땅을 한번 밟아보고 싶다며 중국 경비병의 눈길을 피해 한쪽 발을 경계선 너머로 살짝 내밀어보는 젊음들이 안쓰럽기까지 했다.

압록강 하류 수풍댐에서 배를 빌려 타고 한 시간가량 둘러본 북한 삭주군도 그랬다. 망원렌즈에는 북녘 동포의 고단한 생활이 포착됐다. 풀을 뜯는 소는 앙상한 갈비를 드러냈고, 초등학생들은 산등성이까지 파먹은 다락밭에 동원돼 농사일을 했다. 인사를 건네고 소리를 질러봐도 화답은 없었다. 팔을 올려 하트 모양을 연신 만들던 어느 여대생은 “마치 짝사랑을 하고 있는 느낌처럼 가슴 저리다”고 말했다.

북·중 국경은 끝없이 철조망으로 이어졌다. 현지 관계자는 “김정은 집권 5년 동안 1400㎞ 변경지역에 탈북이 어려운 특수 구조 철조망이 쳐졌다”고 귀띔했다. 북측 강안(江岸)에는 고압선으로 보강된 모습도 눈에 띄었다. 창바이(長白)현과 마주한 북한 혜산시는 그 절정이었다. 조선족 인사는 “인민을 굶주리게 하고 오도가도 못하게 하는 저곳이 바로 감옥”이라고 탄식했다.

한때 북한 공안요원이 중국까지 넘어와 탈북자 손을 철사로 관통시켜 엮은 뒤 끌고가기도 했다는 설명에 학생들은 소스라쳤다. ‘3분 내 조선 도착’이란 표지판을 두고 동행한 강동완(동아대 교수) 부산하나센터장은 “북송 탈북자들은 저 한글 안내판을 보고 얼마나 두려움에 눈물 흘렸겠어요. 우린 너무 무덤덤하게 지나는 건 아닌가요”라고 말끝을 흐렸다. 학생들도 이내 눈물을 쏟아냈고, 백두산 등정과 안중근 의사가 순국한 뤼순(旅順)감옥을 둘러보는 역사·문화 탐방 일정에서도 북한 인권은 화두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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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김회룡]

그런 먹먹함을 안고 서울로 돌아온 우리 일행을 기다린 건 ‘노예국가(slave state) 북한’이다. 미국 공화당은 지난 18일 전당대회에서 채택한 정강정책에 북한을 ‘김씨(金氏) 일가의 노예국가’로 규정했다. ‘주한미군 철수’ 등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주자의 설익은 발언에 관영매체까지 동원해 ‘선견지명이 있는 대통령 후보’라며 “트럼프를 찍어야 한다”고 주장한 북한은 뒤통수를 맞았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집권 첫해인 2012년 4월 “다시는 인민들이 허리띠를 조이지 않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4년 넘게 공수표가 됐다. 핵 개발과 경제 발전을 동시에 이룬다는 ‘핵·경제 병진노선’은 주민들의 삶을 옥죈다. 거침없는 핵·미사일 도발로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를 자초했기 때문이다. 평양에 지은 체제선전성 고층 아파트는 핵 개발에 기여했다는 교수·박사에게 주어졌다. 지방과 변경 경제는 버려지다시피 했다.

그런데도 핵과 미사일에 대한 집착은 대단하다. 사흘 전에는 한반도 전역을 사정권으로 하는 스커드-C 2발과 노동미사일 한 발을 또 쐈다. 김정은이 참관한 이 훈련의 목적을 북한 선전매체는 “남조선 항구·비행장을 선제 타격하는 것”이라고 소개했다. 또 “로켓에 장착한 핵탄두 폭발조종장치(기폭장치)의 동작 특성을 검열했다”고 강조했다.

북한 핵은 현실적 위협으로 닥쳤다. 23년 전 1차 핵위기 때 북한은 핵 개발 의혹을 제기한 국제사회에 “그런 일이 없다”고 잡아뗐다. 몇 년 후 사실로 드러나자 “평화적 핵동력”이라고 둘러댔다. 이젠 ‘서울 핵 불바다’와 선제 타격까지 공공연히 위협한다. 기만과 은폐로 북한이 핵 야망을 채워가던 2000년대 중반 우리 대통령은 “북핵 개발은 일리가 있다”는 안이함으로 골든타임을 놓쳤다. 그 2년 뒤 북한은 첫 핵실험을 감행했고, 올 들어 4차 핵실험에 이어 투발 수단인 미사일 시험발사에 한창이다.

상황이 절박한데도 우리의 대응은 미덥지 못하다. 핵 공격을 막는 현실적 대안인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를 놓고도 갈등과 논란만이 횡행한다. 북한의 핵실험에 침묵하던 일부 환경단체, ‘노예국가’로 낙인 되는 참상에 눈감던 인권 활동가들이 반대 목소리를 높인다. 괴담의 확산과 교묘한 왜곡·선동에 사드는 표류하고 있다. 이대로 가면 북한 핵과 미사일의 포로가 되는 길밖에 없다.

김정은의 주요 연설은 “최후의 승리를 향하여 앞으로!”라는 말로 끝난다. ‘통일 성전(聖戰)’이란 섬뜩한 표현도 단골 메뉴다. 핵 공갈로 5000만 대한민국 국민의 굴종을 요구하는 길목에 선 형국이다. 그는 지금 한반도 전체를 아우르는 거대한 노예국가를 꿈꾸고 있을지 모른다.

이영종 통일문화연구소장 겸 통일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