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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기 부추겨 가며 집 지을 생각 없다|이규효 건설부 장관의 정책 구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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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이규효 장관이 취임하고부터 건설부에는 신선한(?) 새바람이 불고 있다.
새얼굴에 새 스타일이어서가 아니라 토지 관계며 주택 관계 등 각종 정책에 관해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등 「앞서가는 장관」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74년부터 8년 간 건설부에 재직하다가 경남 도지사·내무부 차관을 거쳐 3년 8개월만에 다시 건설 행정의 총사령탑을 맡은 이 장관은 벌써 앞으로 펴 나갈 건설 행정의 「기본 설계」를 거의 끝내 놓고 있었다.
-건설 행정에 매우 밝은 장관으로서 펴 보고 싶은 정책 구상이 있다면.
『건설장관으로서보다는 국무위원, 특히 경제팀의 한 사람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하고자 합니다. 건설부의 체면이나 권위 등을 따지기보다 국가 발전과 경제 성장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관점에서 일을 하자는 것이지요.
내 재임 기간 중에 밑에서 이 장관 있을 때 이러이러한 것을 양보했다고 하는 말이 들리더라도 타 부처의 시책이 더 중요하고 전체의 조화를 이루는 것이라면 나는 우리 입장을 고집하지 않겠습니다. 예를 들면 지난해에도 주택건설 실적이 계획 대비 84%에 지나지 않았는데 지금이라도 부동산 경기를 부추기려고만 하면 못할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부동산 경기를 부추기면서까지 집을 많이 짓는다는 것이 국민경제에 해가 된다면 그러지 말아야지요.』
-건설 행정의 구체적인 운용의 틀은 어떻게 잡고 있습니까.
『현 경제팀의 당면 과제가 투자 활성화와 고용 증대니 만큼 건설 행정도 이에 맞추어 나가야지요.
고용 증대나 지방 경제 활성화 등의 효과를 거두기 위해 현재 정부는 중소기업의 창업을 적극 지원하고 있는데 건설부로서 할 몫은 중소기업의 입지 마련을 적극 뒷받침하는 일입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수도권내 개발 유도권역은 말할 것도 없고, 수도권 이외의 지역중 상공부 등에서 중소기업 입지로 추천해 오는 곳이 있다면 설혹 그곳이 기존의 국토 이용 계획상 공업 지역이 아니라 하더라도 건설부는 최대한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는 것이지요.
또 올해 건설부 발주 공사가 모두 1조4천8백억원쯤 되는데 이 중 60% 정도를 조기 발주해 고용 효과도 높이고 투자 활성화에도 기여할 계획입니다.』
-수도권 이외의 지방에 들어설 중소기업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그것이 바로 국토의 균형 개발 문제인데 사실 건설부장관의 가장 큰 임무지요.
국토의 균형 개발은 일시에 이루어질 문제도 아니고 건설 행정만으로 풀릴 문제도 아닙니다. 현재의 극심한 수도권 집중 현상은 모든 부처가 「위기관리」의 차원에서 풀어 나가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인데 앞으로 대전권이 남의 모든 지역에 여건이 허락하는 한 건설 행정상의 모든 인센티브를 줄 생각입니다. 예를 들면 공업 지역이라도 지방이면 사원 아파트를 지을 수 있게 한다든가 건폐율이나 용적률을 완화해 토지이용을 유리하게 한다든가 하는 유인책을 생각 할 수 있지요. 다만 이러한 시책은 상당 기간 일관성 있게 추진되어야 비로소 효과가 나타날 겁니다.』
-첫머리에서 부동산 경기를 부추기면서까지 집을 많이 짓도록 할 생각은 없다고 했지만 그래도 주택건설 실적이 너무 저조해 탈이지 않습니까.
『올해에 몇십만호를 짓느냐 안 짓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접근 방법」이 문제라고 보는 것이지요.
단적으로 말해 현재의 주택 공급 체계는 「소득계층」을 전혀 생각하고 있지 않지요.
이른바 「최저 소득층」에게는 국가 보조적인 방법으로 소규모 주택·임대 주택을 공급하는 방안을 마련 중에 있습니다. 또 중산층은 아니지만 금융·세제상 조금만 도와주면 바로 「내집 마련」의 꿈을 이룰 수 있는 계층을 위해서도 관계 부처와 지원 방안을 협의 중에 있습니다. 근검·절약해서 오래 저축하면 주택 구입 때 혜택을 볼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 기본 방향입니다.』(그러나 이 장관은 주택 공급 체계의 개선 방안에 대해 구체적인 「보따리」를 더 이상 끌러 놓으려 하지 않았다.)
-해외 건설의 전망은 올해도 그리 밝지 못하지요?
『북해산 유가의 폭락 등 다소 어두운 구석이 있지요. 현재 약45개 해외 건설 업체가 나가 있으나 실제로는 30개 업체 정도가 「활약」하고 있는 상태인데 올해에도 좀더 해외 건설 업체 수를 축소 조정할 것입니다.
이젠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좀 「정직」한 해외 건설 관리를 하려 합니다. 문제가 조금이라도 있다면 덮어두지 않고 빨리 해결해서 매듭을 지어 국가나 개인·은행 모두에게 손해가 가지 않도록 하자는 것이지요. 또 과거의 해외 건설 수주 관리는 지나치게 업체간의 안배에 신경을 썼는데 앞으로는 가장 싼 코스트로 가장 큰 수익을 낼 수 있는 업체가 최우선입니다.』
-최근의 리비아 사태로 별 영향은 없겠습니까.
『거론할 성질이 아닙니다.』
-취임 초 간부 회의에서 「국민 편익 행정」을 강조했었다는 데요. 『한마디로 정부가 큰일을 많이 하고도 별로 좋은 소리 못 듣는 이유를 바로 보자는 것입니다. 예컨대 앞으로는 대규모 댐을 짓느니 가능하다면 중규모 댐을 더 많이 짓는 쪽으로 방침을 정했습니다. 댐이 크면 클수록 수몰 지구도 넓어지고 국민의 재산권 침해도 많아지고 보상비용도 많이 들게 아닙니까. 이밖에 재해 보상 기준도 좀더 현실화하고 기타 건설 행정에서도 국민 변호의 입장에서 제도상의 개선을 추진해 갈 겁니다.』
-지난해 말 작시 거론했었던 그린벨트 완화 문제는.
『다시 이야기를 꺼낼 시기도 아니고 필요도 없다고 봅니다.』
이 장관은 드문 재담가로 잘 알려졌었고 또 누가 보아도 즐겁게 살아간다는 평을 많이 듣는 편이다.
「조금 손해보며 살고 또 사람은 한번 죽는다」는 생각으로 살다 보니 그런 평도 듣는 모양이라고 하는 이 장관은 직업 관료로서 후배들에게 줄 조언을 묻는 질문에 『아직 그런 말 할 사람이 못됩니다』며 웃는다.<김수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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