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대형 차량을 도로의 흉기로 방치해선 안 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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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지난 17일 영동고속도로 봉평터널 입구에서 발생해 4명이 숨지고 30여 명이 다친 교통사고는 대형 차량의 위험성에 대해 새삼 경종을 울려준다. 이날 사고는 대형 관광버스가 시속 105㎞의 속도로 브레이크를 밟지 않은 채 차량 5대를 잇따라 추돌하면서 발생했다. 수많은 사람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할 수 있는 관광버스 운전기사가 ‘멍한 상태’에서 달리다 사람 목숨을 앗아가는 대형 사고를 냈다니 참으로 어이가 없다.

버스나 화물차 등 대형 차량은 크고 무거운 데다 과적한 경우도 적지 않아 일단 사고가 났다 하면 대형 참사로 이어지기 쉽다. 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대형 차량의 교통사고 치사율(100건당 사망자)은 3.4명으로 승용차(1.5명)보다 두 배 이상 높았다. 따라서 이런 상태에서 대형 버스를 몰고 고속도로를 질주한 것은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과 다를 바가 없다.

게다가 사고 기사는 2년 전 ‘음주운전 삼진아웃’으로 면허가 취소됐다가 면허 재취득 제한기간(2년)이 지나면서 지난 3월 대형운전면허를 다시 땄다. 그런데도 아무런 문제 없이 대형 관광버스 기사로 취업했다니 교통안전 행정체계에 구멍이 뚫렸다고밖에 볼 수 없다. 교통 당국은 휴가철에 발생한 끔찍한 사고로 국민 사이에서 ‘누구나 내 잘못이 아니어도 대형 차량에 의한 교통사고를 당할 수 있다’는 부정적인 인식이 확산하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국토교통부는 졸음운전이나 무리한 운행으로 인한 사고를 근본적으로 방지할 수 있도록 도로교통안전 개선 방안을 촘촘하게 마련해 국민 앞에 내놔야 한다. 독일이나 미국처럼 대형 차량 기사의 하루 최대 운행시간을 제한하고 일정 시간 운행 뒤에는 휴식을 의무화해야 한다. 2013년 8월 이후 생산된 3.5t 이상 화물·특수 차량 등에 속도제한 장치를 의무적으로 부착하도록 했지만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것도 문제다. 이를 꺼두면 확실한 불이익을 받도록 법과 규정을 뜯어고쳐야 한다. 기사들에게 무리한 운행을 강요하는 운수회사는 영업을 정지시켜야 한다. 안전은 절대 양보할 없는 국민의 기본 권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