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조양호 회장 결단해야”…1조원 마련 촉구한 이동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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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해공(한진·한진해운·대한항공)을 아우르는 종합 물류기업으로 성장한다는 건 창업주 때부터 내려온 한진그룹의 경영철학입니다. 조양호 회장이 그룹의 3대 축 중 하나인 한진해운이 법정관리에 가는 걸 두고 볼 거라곤 생각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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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은 지난 18일 중앙일보와의 단독인터뷰에서 한진해운의 법정관리 가능성에 대해 이 같이 답했다. 그는 “한진해운을 회생시키려면 고통스럽더라도 조 회장이 결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진해운의 부족 자금 1조원을 한진그룹 측이 마련하라는 얘기다. 이 회장이 조 회장을 직접 거론하며 자금 마련을 촉구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한진해운은 자율협약 시한 마감일(8월 초)을 앞두고 있다.

조선·해운 구조조정 채권단 수장
“국민 세금 투입 않겠다가 1원칙
한진 측 4000억 지원 요청 거절”

이 회장은 인터뷰에서 한진해운을 비롯한 부실기업 구조조정 경과와 향후 계획을 소상히 밝혔다. 20일 전 직원을 대상으로 하는 경영현황 설명회를 연다. 올해 2월 취임 이후 5개월만이다. 그는 설명회를 여는 이유에 대해 “상반기 내내 기업 구조조정 때문에 바쁘게 움직였지만 지금 시점에선 그간 걸어온 길을 돌아보고 정리해야 미래를 제대로 설계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취임 이후 주채권은행의 수장으로서 5개 기업(STX조선해양·현대상선·한진해운·대우조선해양·삼성중공업)의 구조조정을 진두지휘했다. 그가 세운 구조조정의 첫 번째 원칙은 ‘신규 자금 지원 불가’다. 그는 “취임할 때부터 주요 구조조정 기업에 국민 세금을 투입하지 않겠다고 생각했고, 지금도 그 원칙을 지키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현재 구조조정 기업 중 최대 현안인 한진해운에도 적용했다.

이 회장은 “한진 측에서 경영 부족자금 1조원 중 6000억원을 마련할 테니 4000억원을 지원해달라고 요청했지만 거절했다”며 “어떤 방법을 통해서든 스스로 자금난을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채권단으로부터 신규 자금을 한 푼도 받지 않고 정상화한 현대상선과의 형평성 문제도 고려한 결정”이라고 덧붙였다.

시중은행과 달리 대우조선해양의 여신을 ‘정상’ 등급으로 유지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국책은행과 시중은행의 잣대는 다를 수밖에 없다”며 “산은이 대우조선 여신 등급을 ‘요주의’로 내리면 당장 대우조선 해외 수주에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다음달까지 ‘소난골(앙골라 국영석유회사) 프로젝트’가 해결되느냐가 대우조선 경영정상화의 1차 관건”이라고 말했다.

소난골 프로젝트는 대우조선이 2013년 1조4000억원에 수주해 인도를 앞둔 두 척의 드릴십(이동식 시추선)으로, 미리 받은 선수금 4000억원을 뺀 나머지 잔금 1조원은 인도시 받기로 했다. 그러나 소난골이 자금 마련에 필요한 보증을 받지 못해 인도가 지연되고 있다. 소난골 잔금을 받지 못하면 대우조선은 9월 만기가 돌아오는 기업어음 4000억원을 갚지 못할 수 있다.

유상증자를 검토하고 있는 삼성중공업에 대해서는 “시장이 원하는 주체가 증자에 참여하고, 시장이 수긍할만한 규모로 증자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자구책 마련 초기 산업은행 실무진에 “글로벌 시장에서 삼성 브랜드에 영향이 없도록 하라”고 지시했다는 일화도 소개했다. 그는 “삼성중공업은 업황이 좋지 않아 수주 난을 겪는 건데 마치 기업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처럼 오해를 받으면 안 된다고 봤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회장은 기업 부실을 둘러싼 산은 책임론에 대해 “지난 세월 잘못한 부분이 많기 때문에 반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책임과는 별도로 STX조선해양 법정관리, 현대상선 정상화처럼 원칙대로 처리한 구조조정의 성과는 제대로 평가를 받았으면 좋겠다”는 희망도 내비쳤다.

이 회장은 앞으로 기업 구조조정 외에 중소·벤처기업 지원과 해외진출에도 역점을 두겠다고 했다. 이를 위해 서울 여의도 산은 본점에 ‘벤처 IR(투자홍보) 센터’를 만들어 벤처기업의 투자자 유치를 돕기로 했다. 산은의 비금융 자회사(132개) 중 벤처기업 매각도 IR센터를 통해 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갈수록 줄어드는 국내 종자(씨앗) 특허권을 지키기 위해 ‘종자 펀드’를 만든다.

이태경 기자 uni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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