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과 창업] 깐깐한 평가, 빵빵한 지원…여기는 청년창업사관학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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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원곡동 청년창업사관학교에서 유준희(34) 만드리테크 대표가 창업 준비 과정을 설명하며 1차 평가를 치르고 있다. [사진 최정동 기자]

18일 경기도 안산시 원곡동 청년창업사관학교. 3층 복도에는 노트북을 뚫어지게 보거나, 원고를 외우고 있는 이들이 모여 있었다. 졸업을 위한 첫 번째 관문인 1차 평가를 앞둔 예비 창업자들이었다. 경쟁률 5.6대 1을 뚫고 청년창업사관학교에 입학했지만 1차평가를 통과하지 못하면 짐을 싸서 돌아가야 한다. 휴대용 냉장약 보관기를 발명한 오순옥(37·여) 리앤원 대표가 평가실로 들어서자 5분 발표 시간 제한을 알리는 시계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제한 시간 3초를 남기고 오 대표의 시제품 설명이 끝을 맺었다.

안산 학교 1차심사 현장 가보니
1억원·사무실 지원에 전담 코칭까지
연 300명 안팎 뽑는데 경쟁률 6대 1
전국에 5곳…3차례 평가 통과해야
지원금 쓸 땐 검증 등 엄격하게 관리
2011년 문열어 CEO 1215명 배출
작년 매출 180억 올린 졸업생도

“수요 예측을 어떻게 하고 있나요?”

“동일한 온도를 유지할 수 있는 시간은 얼마나 되죠?”

5분 가량 평가위원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오 대표는 예상 질문에는 차분하게, 예상하지 못한 질문에는 빠른 속도로 답변을 이어갔다. 평가를 마친 오 대표는 “10년 넘게 전업주부로만 살다가 창업을 준비하고 이런 발표까지 하려니 많이 긴장됐다”면서도 “평가위원들이 알람이나 잠금 기능을 추가해 보라는 제안을 해줘 향후 보완할 것”이라고 말했다.

청년창업사관학교는 안산 뿐 아니라 광주광역시·천안 등 전국 5개 지역에서 매년 240~310명을 뽑는다. 입학했다고 졸업과 혜택이 보장되지 않는다. 이 중 10~15%는 탈락한다. 외부 전문가 5명이 참여하는 3번의 평가를 모두 통과해야 졸업을 할 수 있다. 지난해에는 278명이 입학해 26명이 탈락했다.

평가의 핵심은 사업성이다. 특히 ‘제품이나 기술의 경쟁력이 있느냐’와 ‘시장 확장성이 있느냐’가 관건이다. 좁은 국내 시장에 경쟁사가 3~4곳이나 있는데 사업을 하겠다고 뛰어드는 예비 창업자들은 대체로 평가위원들의 혹평을 피하기 어렵다.

평가위원인 김성완(46) 통코치 대표는 “기술 지식이 전혀 없는데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 사업 아이템을 밀어 붙이려 하는 예비 창업자를 탈락시키기도 했다”며 “대신 전문가를 영입해 팀을 먼저 만들라고 조언했다”고 말했다.

평가위원들이 집요하게 묻는 또 한가지는 ‘당신은 연구 개발자인가, 사업가인가’다. 평가위원인 이경진(46) IMC코리아 한국협회 부회장은 “예비 창업자 중 연구 개발자 출신들이 많은데 전문가라는 이유로 기술적인 문제만 따지고 시장 확장성을 등한시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은 “창업에 실패하지 않으려면 기술뿐 아니라 시장 확대 가능성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기술이나 제품만 믿어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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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을 ‘사관학교’ 라고 이름을 붙인 데에는 이유가 있다. 지원과 교육 프로그램이 엄격하다. 지원금으로 물품을 사려면 승인 신청서를 제출해 꼭 지출해야 하는 물품이 맞는지 타당성을 검증받아야 한다. 이후 가격 비교 견적서 등을 첨부해 지급요청서를 또 한 번 제출한다. 합리적인 가격에 구입했다는 점을 증빙하는 거다. 윤리경영을 강조하기 때문에 이 과정에서 부정행위가 적발되면 탈락을 피할 수 없다.

최원우(56) 청년창업사관학교 교장은 “당장은 불편하겠지만 이것도 교육의 일부”라면서 “예비 창업자들이 업체를 운영할 때는 불필요한 비용을 줄이고 직원들의 구매 내역을 제대로 감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험난한 과정을 통과한 졸업생은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 모두 1215명이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청년창업사관학교 출신들이 등록한 지적 재산권은 2100건이 넘고, 이들이 달성한 매출도 4500억원을 넘어섰다.

이른바 ‘대박’을 터뜨린 졸업생도 있다. 1기 졸업생 김구현(42) 아이탐스오토모티브 대표는 자동차 부품 회사를 차렸는데 지난해 18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김 대표는 현대자동차 연구소를 10년 넘게 다니다 그만 두고 2011년 청년창업사관학교에 입학했다. 김 대표는 “청년창업사관학교에 들어가기 전에는 아이디어와 기술만 있었는데 교육과 자금을 지원받아 본격적인 제품 개발과 생산이 가능해졌다”며 “당시 열심히 참여했던 일대일 코칭 프로그램이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변리사부터 회계사나 세무사 같은 전문가들이 찾아와 절세 방법부터 거래처 분쟁 등 다양한 문제에 대해 일대일로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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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순옥(37·여) 리앤원 대표가 자신이 발명한 휴대용 냉장약 보관기의 장점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 최정동 기자]

청년창업사관학교의 입학 경쟁률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 교육과 창업 지원금 혜택이 있기 때문이다. 예비 창업자들은 1년 동안 총 사업비의 70%를 넘지 않는 범위에서 최대 1억 원을 받을 수 있다. 근무할 수 있는 창업 공간과 160시간 교육, 전담교수의 코칭 프로그램도 경쟁률을 높이는 이유 중 하나다.

유준희(34) 만드리테크 대표는 “2년 동안 꼬박 준비해서 입학했다”며 “예비 창업자에게 절실한 것은 묵묵하게 기다려 줄 가족과 창업 자금인데 시제품을 만들 자금을 지원받을 수 있다고 해서 도전했다”고 말했다. 유 대표는 3년 전 창업을 준비하다 어렵게 모았던 1억3000만원을 모두 잃었다. 하지만 청년창업사관학교에서 다시 창업의 꿈을 실현하고 있다. 1차 관문을 통과했다는 통보를 간절히 기다리면서 말이다.

청년창업사관학교는 …

설립 : 2011년

운영 : 중소기업진흥공단

위치 : 광주광역시, 경기도 안산, 충남 천안, 경남 창원, 경북 경산 등 5곳

지원자격 : 만 39세 이하 예비창업자 또는 창업 3년 이하 신생 기업인

역대 졸업생 : 1215명

졸업생 총 매출액 : 4599억원

지적재산권 등록 : 2145건

안산=성화선 기자 ssun@joongang.co.kr
사진=최정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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