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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두집」으로 6백년을 이어온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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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동경=최철주 특파원】일본에는 몇백년 전부터 대대로 내려오는 상점들이 허다하다. 좋은 상품, 훌륭한 서비스로 가업을 이어오며 명문점포를 지켜온 외곬 상인들이 일본사회에서 깊이 뿌리박을 수 있는 장사 수완은 어디에 있을까.
미국의 몇몇 경제전문가들이 펴낸 『passion for excellence』라는 책은 이른바 경영 혁명서라고 불릴 정도로 베스트 셀러가 됐으나 고객을 중요시 하라든가 의욕적인 사원을 채용하라고 한 이 책의 결론은 바로 일본 명문점포들의 가훈이나 다를 바 없다.
일본의 전통적인 상법은 오랜 세월을 거쳐오면서 그 요체가 가훈이나 점훈, 또는 사훈에 담겨져 노점포의 이미지를 부각시키고 있다.
창업 3백년을 맞은 포목업계의 명문 에찌고야(월후옥·동경 은좌 소재)의 가훈은 「이력승자가불구 이덕승자가구영」이다. 힘으로 이긴 사람은 집안이 오래 가지 못하나 덕으로 이긴 사람은 집안이 영구히 번영한다는 뜻이다.
8대째 가업을 물려받은 「나가이」(영정직구·39) 사장은 『고객을 정중히 모시는 덕을 쌓지 않고서는 장사가 안 된다. 꿈에라도 고객을 멸시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고객에 대한 절대봉사가 점포운영의 제1 우선 순위에 올라가 있다.
1907년에 창업한 부인용 구두의 노점포 요미노야(동경 은좌 소재)의 사훈은 3덕주의. 즉 고객을 즐겁게 하고 거래선을 소중히 하는 덕을 강조, 고객 한사람 한사람의 요구에 귀를 기울이도록 선대부터 훈련 받아왔다.
문방구 업계에서 최첨단을 걷고있는 이또야(이동옥)는 창업된 지 84년.
「고객은 선생」이라는 사훈을 경영 전반에 반영시키고 있다. 이또야의 종업원들은 앞 호주머니에 항상 메모지를 꽂아두고 있다. 고객이 예상외의 물품을 찾으면 이를 메모, 상품개발의 힌트로 활용하고 있다. 고객의 이야기를 메모해야 한다는 것은 이또야에서 법령이나 다름없다.
그래서 이또야는 고객과의 대화에서 많은 아이디어를 얻어 여러 종류의 카드와 그림 도구, 디자인 용구를 만들어 냈으며 연 매상액을 67억엔까지 끌어 올렸다.
1450년에 문을 연 일본 과자의 노점포 도라야(호옥)의 16대 사장 「구로까와」(흑천광조)씨는 이렇게 말한다.
『요즘은 장삿말로 「소비자」라는 말을 많이 쓰고 있다. 돈을 허비하고 있다고 해서 소비자란 말인가. 그런 식의 사고로는 경영이 잘 될 수 없다.』
역시 창업 6백 6년의 역사를 가진 만두전문업체 시오제(염뢰)의 34대 사장 「와따나베」(도변영자)씨는 만두의 독특한 맛을 유지하기 위해 매일의 온도와 습도, 재료 혼합비율을 터득하는데 50년의 세월이 걸렸다고 토로했다. 말하자면 고객의 입맛에 맞는 만두를 생산하고 일정비율의 시장점유율을 지켜나가기 위해서 6백년이라는 장구한 세월의 품질관리운동이 필요했던 것이다.
팥을 넣은 빵을 만드는 96년 전에 문을 연 기무라야(목촌옥·동경소재)를 빼놓을 수 없다. 이 빵의 생명은 이스트균을 주요 성분으로 해서 팥 빵의 맛을 유지하는 것. 주인은 매일 아침 빵을 시식, 이상여부를 감별한다. 그래서 그의 혀는 항상 「정상」이어야 하며 폭음·폭식이나 불규칙한 생활이 금지되어 있다.
그의 혀에 이상이 발생할 것에 대비해서 회사 간부들 전원이 매일아침 시식에 나서고 있으며 항상 「목욕재계」의 일상생활로 맛있는 빵을 만들어 내고있다.
품질관리를 제1 목표로 내세운 노점포들 가운데 아사꾸라(조창) 안경점은 절대 바겐세일을 하지 않기로 유명하다. 「중요한 것은 첫째도 둘째도 기술」이 사훈이다. 좋은 기술로 좋은 품질의 물건을 만드는 바에야 바겐세일이 있을 수 없다는 경영방침이다.
전통 있는 각 분야 명문의 점포들은 그들이 지켜오고 있는 긍지에 가득 차 있다.
언뜻 보아 활기가 없어 보이나 결코 그렇지는 않다. 대대로 가업을 물려받은 자손들은 창업자정신에 충만 되어있다. 쉴 틈 없이 바쁜 시간을 보내고 창의력을 발휘하고 있으며 종업원들에게도 의욕을 불어 넣어주고 있다.
가치관이 달라지고 라이프 스타일도 바뀌어져 회사의 수명도 짧아졌다. 대기업의 경영자들이 생존전략에 끙끙 앓은 끝에 면면히 전통을 이어오는 노점포들의 장사 수완에 흥미를 보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경영은 상점에서 이루어진다」(다까하시 양복점·1903년 창업), 「고객과 만난 한 순간을 중히 여겨라」(기따도꼬 이발관·1871년 창업)등 점포의 사훈은 「경영은 현장이다」라든가 「고객은 왕이다」라는 것을 늘 일깨워주고 있다. 훌륭한 경영의 진리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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