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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역 마찰은 공존공영정신으로 해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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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이병철 삼성회장과 「이나야마·요시히로」(도산가관) 일본 경단련 회장은 5일 KBS가 마련한 신년 특집 대담프로에서 올해 국제 경제전망, 미일 무역마찰, 한일간 무역과 기술 이전문제, 한국의 외채 해결방안, 환태평양 시대에 대비한 대응자세 등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다. 이 대담 프로그램은 구랍 26일 동경 파레스 호텔에서 현지 녹화되었으며 이계익 KBS 해설 위원장이 진행을 맡았다. 한일 경제계 양 원로의 대담을 요약 소개한다.

<편집자 주>
-먼저 이 회장의 동경 구상에 대해.
▲이병철 회장=연말 연초에 모든 경영자는 정치·경제·사회 각 분야에서 새해의 미지수를 파악하려고 애쓰게 된다. 동경은 국제도시로서 세계 최신 정보와 각 분야의 권위자들이 모이는 곳이다.
특히 TV가 발전되어 TV만 보고 있어도 그들 전문가들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으며, 새해를 어떻게 전망하는지 알 수 가 있다.
본인이 연말 연시를 동경에서 보내는 이유는 이 때문이며 세계적인 석학·정치인·경제인들과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누고 미래에 대한 공부를 할 수 있는 것도 뜻 있고 즐거운 일이다.
-미일 무역마찰에 대해서는
▲도산 회장=현재 일본은 유럽에 1백억 달러, 미국에 3백 33억 달러의 무역흑자를 보고 있다. 자유 무역주의 아래에서 내가 희생하겠다고 나서는 기업은 없다. 따라서 자유무역주의도 고수하고 기업 희생도 감수하는 방안은 모든 나라가 머리를 맞대고 생각해야만 할 것이다. 정부가 미국 제품을사라고 권유해도 국민이 일본 것이 좋다고 하는 데야 정부도 어쩔 도리가 없다. 여기에 바로 어려운 점이 있고 이것을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회장=국가간의 이해에 따라 어느 정도의 무역마찰은 일어날 수 있다. 문제는 양보해야할 것도 양보 안하고 자기 이익만 내세우게 되면 무역 마찰은 해결 방안이 나오지 않는데 있다.
지난해 8월 도산 회장이 미국을 다녀와서 미일간의 전쟁 전야 같은 분위기를 전하며 일본 지도자들에게 문제의 해결을 건의했으나 일본의 대 메이커들이 전혀 양보를 하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오히려 도산 회장더러 일본 경제를 걱정하지 않고 미국 경제를 걱정하는 사람이라고 공격했다고 들었다.
그때 만일 일본 경제 전체가 공존 공영의 원칙에서 조금씩만 양보했더라면 오늘의 급격한 엔고와 같은 혼란은 안 당했으리라고 본다.
본인은 또 미국이 매년 1천 5백억∼2천억달러의 무역적자를 내고 있는데 이런 상태가 계속되면 일본은 어떻게 해야되겠느냐고 물은 적이 있는데 일본 사람들은 「할 수 없는 것 아니냐」고 방관하는 태도였다. 그래서 미국 경제가 곤경에 빠지면 일본 경제는 괜찮겠느냐고 다시 물었더니 「그건 안되지요」라는 대답이었다. 결국 엔고로써 해결할 수밖에 없게 되었고, 이런 결과가 없었다 하더라도 혼자서만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한일간의 무역·기술이전 등에 관해.
▲도산 회장=한국과의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가 문제이지 반드시 해결해야만 한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공업 국가로의 전환이 어느 정도 끝나 제품이 나오는 단계가 되면 기술·장비를 사들였던 나라들이 제품을 역수출해야 하는 입장이 되고, 이미 시장은 선진국이 선점하고 있으므로 자연히 개도국은 수출부진에 누적적자라는 문제를 안게 된다.
때문에 이제는 무역의 형태가 바뀌어 호혜적인 부분이 매우 적으므로 새로운 관점에서 경제협력을 생각해야 하는데 이는 국민의 교육으로부터 변화를 모색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국내에서 기업간의 경쟁만을 시킬 것이 아니라 기업들끼리 세계를 향해 상호 협력하는 것이 경제인의 역할이라는데 까지 이야기되어야 할 것이다.
-한일 경제는 보완적인가, 경쟁적인가.
▲이 회장=현재 무역마찰이 가장 심한 데가 미일간이고 다음이 한일간이라고 봐야겠다.
한일 경제는 짧게 개별적으로 보면 경쟁적일 수 있으나, 길게 종합적으로 보면 보완적 관계다. 일본은 한반도의 정치적·경제적 안정 없이는 경제 번영을 계속할 수 없고 따라서 두 나라의 호혜적 관계의 확대 발전은 두 나라뿐만 아니라 자유진영을 위해서도 절대 필요하다.
도산 회장 말씀대로 한일 문제에 대해서도 일본 정부나 각 단체에서는 해결하려고 노력을 하지만 일본의 각 메이커가 협력을 안하고 있는 실정이다.
교육 이야기가 나왔지만 교육을 통해 이해를 증진시킨다면 어느 시기에 가면 해결이 될 것이고 지금의 무역 불균형이 계속될 수는 없다고 본다.
세계 역사엔 흐름이 있어 물이 높은데서 낮은 곳으로 흐르듯 경제나 산업도 선진국에서 개도국으로 자연스럽게 이전된다는 것을 깨닫는다면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한국경제에 대한 평가는.
▲도산 회장=평가를 할만큼 한국경제를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아니다.
세계평화를 위해선 미소 화해가 필요하고 이를 위해선 서방의 결속이 긴요한데 아시아의 주요세력은 한국과 중공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관점에서 한국을 성장시키고 한국에 협력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IMF(국제통화기금)·IBRD(세계은행)의 한국 경제력 평가에 대해
▲이 회장=우리 경제의 실정은 우리가 잘 알고 있다. 본인이 보고, 듣기에도 정말 과대 평가한 것 같은 느낌이다.
실력 이상의 과대 평가가 미국으로 하여금 무역 규제와 같은 불리한 결과를 가져오게 한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을 하고 있다.
다만 우리 경제에 도움이 됐다는 것은 IMF·IBRD가 한국을 높이 평가함으로써 개인기업의 차관이 쉬워졌다는 점이다.
IMF·IBRD의 평가는 우리 국민들의 강인한 노력과 잠재적 가능성에 대한 것으로 생각하고 싶다.
-대만 경제에 대해.
▲이 회장=한동안 한국은 대만 경제를 배워야 되겠다 해서 상당히 그쪽을 연구했다. 그런데 지금은 오히려 대만이 한국 경제를 배우려 하고 있다. 대만의 경제성장은 중소기업·잡화산업 주도로 이루어졌다. 오늘과 같은 보호 무역주의 시대에는 첨단 기술산업으로 변신해야 되는데 대만의 산업 구조로는 그것이 쉽지 않다.
심지어 대만 정부에서 반도체 산업을 일으키기로 하고 민간에 참여를 권유했으나 선뜻 나서는 기업이 없었다. 중소 기업형 구조로는 큰 발전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본인은 한국의 경제 정책이 제일 잘 된 것으로 믿고 있다.
-한국의 외채와 실업문제에 대해.
▲도산 회장=「외채를 줄이는 길이 이것이다」라는 답은 없겠으나 어쨌든 질서 있게 기업 활동이 이루어지는데도 외채가 많다는데 놀랐다.
본인이 제일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임금이며, 일본에서도 임금이 큰 문제다.
이는 기업의 코스트를 높이기 때문에 외국에 비해 경쟁력이 약화되고 국민은 급료가 오르기 때문에 좋겠지만 결국 물가가 오르게 된다.
이 회장=외채를 갚겠다고 온 국민이 분발하는 것이 외채 해결의 첫째 조건이다. 그 다음 실천 방안으로서 간단한 논리지만 외채를 갚는 방법은 외화를 많이 벌어들이는 것이다. 어떻게 외화를 들여오느냐. 원료 적게 들고, 이익 많이 나고, 질 좋은 상품을 수출하는 것이다. 요즈음 유행어로 경·박·단·소로 표현되듯이 자원이 적게 들면서 부가가치가 높은 반도체·유전공학·신소재 같은 것이 대표적 수출 상품이 될 것이다.
또 중요한 것은 실속 있는 무역정책이다. 지금까지 우리의 수출은 대부분 이익이 적었다고 본다.
실업 해결은 단발성 토목·항만 공사보다 시설투자 확대에서 찾아야 한다.
외화 가득을 많이 내는 생산시설을 확대하게 되면 외채도 줄이고, 실업 문제도 해소하고, GNP도 올릴 수가 있다. 문제는 실천하느냐, 안하느냐다.
지금부터 10년·20년을 내다보는 근본적 대책을 세워야 한다.
-일본이 한국에 추격 받고 있다는 느낌은 지나친 걱정이 아닌가.
▲도산 회장=부머랭 효과를 의미하는 것인가.
궁극적으로 서로가 정리해서 그것은 네가 하고, 이것은 내가 하고 하는 식으로 하면 될 것으로 생각되지만 자유주의 경제체제에서 자신의 사업은 망해도 좋으니 다른 나라에 이것을 넘겨주자고 생각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때문에 부머랭 효과는 있다. 그리고 있다고 해서 크게 나쁜 것은 아니지 않는가 할 정도로 대범해지지 않으면 지금부터의 진정한 경제 협력은 불가능하다는 생각이다.
그런데 일본 사람들 얘기를 들어보면 댓가가 안정적으로 보장되지 않으면 기술 협력에 응할 수 없다고들 한다. 불행하게도 비즈니스 하는 사람들은 기술 협력을 해봤자 아무런 이익을 얻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삼성 반도체 사업의 어려움을 어떻게 타개하고 있는가. 일본과의 기술격차는?
▲이 회장=일본의 양산·덤핑으로 다소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반도체란 1천여종의 제품이 나와 그 가운데 이익이 제일 많이 나는 품종을 미리 선택해 그에 대한 기획과 예측을 하여 삼성의 반도체 사업은 전체로 보면 승산이 있다.
일본을 따라잡는데 무리는 안 했으나 다만 세계경기가 나빠서 그걸 따라가느라 고생했다.
반도체 기술을 일본에선 처음으로 샤프사가 내놓아 삼성이 최초로 받아들였고, 64KD 램 기술은 미국에서 들여왔으나 2백 56KD램은 삼성이 자력으로 개발했다.
금년엔 1메거D램을 개발할 예정으로 있어 2∼3년 전만 해도 일본과는 10년 정도 기술격차가 있었으나 이제는 부분적으로 2∼3년 정도로 접근한 것도 있다.
-한국의 자동차 산업에 대한 전망은.
▲도산 회장=제철 기술과 자동차 산업은 연관 관계가 높다. 포철에서 점점 좋은 철판이 나오고 있으니 서로 연계된다면 양적인 면은 몰라도 일본의 자동차에 버금가는 좋은 차가 나올 것으로 믿는다.
-삼성과 크라이슬러의 제휴 전망은.
▲이 회장=크라이슬러 측에서 15명 가량의 전문가가 한국에 와 1년 반정도 조사를 했다.
지난해 4월 「아이아코카」 회장이 내한하여 삼성과 자동차 사업을 추진키로 합의했는데 오히려 우리는 준비가 덜 되어서 천천히 하려고 했으나 모든 뒷받침을 자기들이 할 테니 될수록 빨리 할 것을 요청해왔다.
우선 부속품을 시작해서 2∼3년 안에 완성 차로 갈 것이며 미국시장을 주축으로 유럽·아시아 시장에 진출할 것이다.
-21세기 산업 양상에 대하여
▲도산 회장=의식주가 양적으로 만족한 상태에서 인간은 편안한 것·재미있는 것을 추구하게 될 것이다. 그 속에서도 인간의 건강을 유지하는데 미스 리드를 범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이 회장=기술발전의 스피드가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전에는 사업을 하려면 자금이 가장 큰 문제였는데 지금은 고도 기술개발이 필지의 과제이며 모든 국가적인 중점이 여기에 놓일 것으로 본다.
-새해 개인적인 소망은
▲도산 회장=항상 변화하지 않는 것이 나 자신의 이상이기 때문에 변하지 않으려고 노력할 것이다.
▲이 회장 = 새해에는 내 나이 일흔 여섯이다.
지난날을 되돌아보면 아무 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공연히 마음 졸이고 번민했던 일들이 특히 후회스럽게 느껴진다.
요즘 세태는 국내적으로나, 국제적으로나 점점 메마르고 각박해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 새해에는 세상 사람들이 반목보다는 이해를, 가시 돋친 언쟁보다는 훈훈한 대화를 나누는 좀더 너그러운 마음을 가져주었으면 한다.
서로가 동시대인이라는 자각을 가지고 「대립의 시대」에서 「평화의 시대」로 전환하는 새로운 행진을 시작했으면 한다. 이것이 새해를 맞이하는 나의 소박한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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