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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활용 디지털 교과서 인기 장마철엔 서버 다운 걱정할 지경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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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8호 12면

전시 업계에서 큰 성공을 거둔 데 이어 디지털 교육시장 개척에 나선 박기석 회장. 신인섭 기자

#1. 서울 A초등학교 5학년 과학수업 시간. 교사가 태양계와 별을 설명하면서 PC에 연결한 대형TV를 통해 밤하늘의 별자리 영상을 틀어준다. 북극성을 중심으로 북두칠성과 카시오페이아 자리를 찾는 방법을 소개하는 3분짜리 동영상이다. 교사는 각국에서 촬영한 사진을 화면에 띄우고 학생들이 직접 북극성을 찾도록 했다.


#2. 전남 완도의 한 초등학교 교사는 서울시청을 소개하며 폐쇄회로TV(CCTV)를 통해 실시간으로 서울광장의 모습을 보여준다. 광장 중앙에서 유명 가수의 콘서트가 열리는 모습이 나오자 학생들의 환호성이 터진다. 교사는 “직접 방문하기 어려운 지역적 특성 때문에 명동성당·독도 등 전국 유명지를 소개할 땐 현장에 연결된 CCTV를 활용한다”고 말했다.


교육업체 시공미디어의 디지털 초등교육 온라인 플랫폼 ‘아이스크림S(i-Scream S)’를 이용하면서 바뀐 학교의 수업 장면이다. 아이스크림은 사진·동영상·애니메이션·컴퓨터그래픽(CG) 등 다양한 디지털 자료를 활용한 국내 최초의 디지털 교과서다. 공교육에 새 바람을 일으킨 이는 국내 전시업계 대부인 박기석(68) 시공테크 회장이다. 시공테크는 30년 가까이 ‘2015 밀라노엑스포 한국관’ 등 970여 곳 전시공간의 기획·설치를 맡았다. 시공테크에서 번 돈과 개인자금을 합쳐 약 1300억원을 자회사인 시공미디어에 아낌없이 투자했다. 박 회장은 ?교사가 보내준 동영상으로 학생들이 미리 학습한 후 수업시간에는 토론으로 거꾸로 수업(플립러닝)이 가능한 시스템을 갖췄다”고 말했다.


그가 교육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2000년 초부터다. 정기구독하며 챙겨보는 ‘더 퓨처리스트’ ‘사이언스 티쳐’ 등 120여 종의 각국 미래산업 관련 전문 잡지를 읽다가 “미래엔 디지털 교육이 주목받는다”는 기사를 읽고 무릎을 쳤다. 2002년 교육사업을 전담할 시공미디어를 세운 뒤 사진·동영상 등 디지털 콘텐트를 모으기 시작했다. 박 회장은 “정보통신기술(ICT)이 발전하면 디지털 기기(하드웨어)보다 여기에 담을 콘텐트가 더 중요해질 것으로 내다봤다”고 설명했다. 모은 콘텐트는 다시 주제별로 나눠 자막과 음성·효과음을 더해 3분 이내 교육용 콘텐트로 제작했다. 일 속도도 더디고 비용이 많이 들었다. 박 회장은 매년 적자가 쌓이는데도 멈추지 않았다. 그 결과 지금은 사진 300여만 장, 동영상·CG·애니메이션 등 멀티미디어 데이터베이스(DB) 30여만 건에 이른다.


2008년 아이스크림이 첫선을 보이면서 박 회장의 투자가 빛을 보기 시작했다. 기존의 딱딱한 교과서 내용을 멀티미디어 콘텐트를 활용해 사진이나 영상으로 보여주자 학생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박 회장은 “온돌방이나 맷돌의 원리를 잘 모르는 요즘 학생들에게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 1분짜리 영상을 보여주는 게 훨씬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초등학교 교사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1년 뒤 유료결제로 바꿨는데 전국 초등학교 교사의 75%가 회원이 됐고 2~3년 뒤엔 99%로 늘어났다. 특히 요즘처럼 장마가 이어져 현장수업이 어려워질 땐 이용량이 폭주해 서버가 다운될까 걱정할 정도다.


아이스크림이 지속적으로 인기를 끌자 정부 일부에선 불편한 내색을 보였다. 지난해부터는 “한 기업의 교육 서비스만 쓰다 보면 수업이 획일화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몇몇 학교에선 학교 예산으로는 아이스크림 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하도록 했다. 박 회장은 올해 아이스크림 시스템을 바꾸면서 교사들이 직접 다양한 자료를 활용해 학습 과정을 구성하는 방식으로 개선했다. 그는 “공교육에 기여한다는 자부심으로 적자에도 꾸준히 투자해 왔는데 비판을 받으니 마음 한쪽으론 섭섭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결과는 예상과 달랐다. 정부의 일부 비판적인 시각 속에서도 올해 7월 초 전국 초등학교 교사의 91%가 이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 모두가 교사 개인 돈으로 결제한 것이다. 경기도 위례한빛초등학교의 김지원 교사는 “아이스크림을 이용해 수업을 하면 학생들이 지루해하지도 않고 수업 참여도가 높다”며 “이젠 교재만 갖고 하는 수업과는 비교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박 회장은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해외시장에 진출할 계획이다. 박 회장은 2010년 미국에서 열린 세계 e러닝 대회 ‘IMS 러닝 임팩트’에서 아이스크림이 최우수상인 플래티넘상을 받은 뒤로 디지털 교육업계의 유명 인사가 됐다. 이후 아랍에미리트(UAE)·영국·인도네시아 등 53개국 기업들이 시공미디어를 벤치마킹하기 위해 방문했다. 또 중국·콜롬비아 등지에 약 400만 달러어치의 교육 콘텐트를 수출했고 최근엔 카자흐스탄 교육부와 콘텐트 공급을 협의 중이다.


박 회장은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개척할 때 즐겁다”고 말한다. 유명한 일화도 있다. 그가 시공테크를 시작하면서 따낸 첫 사업이 1988년 서울 올림픽의 레이저 쇼다. 국내 최초로 63빌딩 벽면을 스크린 삼아 레이저 쇼를 연출하는 초대형 프로젝트였다. 우여곡절 끝에 성공적으로 마무리했지만 회사는 파산 직전이었다. 워낙 대규모 기획이라 박 회장이 투자한 돈이 더 많았던 것이다. 박 회장은 자신의 집은 물론 형과 처가의 집까지 저당 잡히며 사업을 이어갔다. 그는 “사업하면서 한번도 포기한 적이 없다”며 “특히 전시 사업은 경제가 발전하면 반드시 성장한다는 확신이 있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93년 대전엑스포 이후 전국에 박물관·전시관 등의 설립 붐이 일었고 시공테크의 실적도 반전했다. 박 회장은 “교육사업도 10년 이상 투자했으니 이제 거둬 들일 일만 남았다”며 웃었다.


박기석 1948년 전남 보성에서 태어난 박 회장은 집안이 어려워 고려대 독어독문학과를 11년 만에 졸업했다. 무역회사인 율산실업에 입사해 알루미늄을 사우디아라비아에 수출하는 일을 맡았던 그는 입사 2년 만에 회사가 부도나자 한국 건축 자재를 중동 지역에 판매하는 중개무역을 시작했다. 6~7년 만에 20억원을 번 그는 한국으로 돌아와 88년 국내 최초의 전시문화 전문업체인 시공테크를 설립했다.


염지현 기자 yj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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