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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텍스 2016 참관기] 제조업 강자 대만 스타트업 육성으로 방향 전환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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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대만을 대표하는 국제적인 행사 ‘컴퓨텍스 2016’이 큰 변화를 겪었다. 스타트업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대만의 전통적인 산업 구조를 바꾸기 위한 시동을 걸었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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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칭 대회와 다양한 컨퍼런스가 열린 이노벡스관의 센터 스테이지. 36회를 맞이한 컴퓨텍스는 올해 처음으로 이노벡스 전시관과 스마텍스 전시관을 마련했다.

“루시드캠은 세계 최초로 일반인을 위해 준비한 가상체험(VR) 3D 카메라다. 오큘러스, 기어 VR 등 어떤 헤드셋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 루시드캠의 장점이다.”

스타트업 ‘루시드’ 창업 멤버인 조나단 힐 등이 지난 5월 31일, ‘컴퓨텍스 2016’에 참가하기 위해 대만 타이베이를 찾았다. 미국 UC버클리와 스탠퍼드 대학교 출신의 엔지니어들이 모여 창업한 루시드는 지난 1월 미국 크라우드펀딩 플랫폼 인디고고에 시제품을 출시했다.

펀딩 목표액은 10만 달러(약 1억1900만원). 300여 명의 후원자들이 목표액을 상회하는 11만4000 달러를 투자함에 따라 루시드는 제품 양산 기회를 얻었다. 워싱턴포스트, 테크크런치, abc 같은 유력 언론사가 6월 말 제품 양산을 앞둔 루시드캠에 대한 소식을 내보내면서 실리콘밸리 투자자들도 루시드를 주목하던 참이었다.

스타트업을 대상으로 하는 피치 콘테스트에 참석한 조나단 힐이 주어진 6분 동안 루시드캠의 기술력, 파트너사, 비즈니스 모델 등에 대해 설명하자 무대 아래에 있던 스타트업 전문가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경쟁제품과 어떤 차별화가 있느냐?’, ‘매출을 올릴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이 뚜렷한 것 같지 않다’는 등의 날카로운 질문에 발표자인 조나단 힐이 당황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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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의 첫 여성 총통 차이잉원(사진 가운데)은 개막식 연설을 끝낸 후 전시장으로 내려가 일본의 소프트뱅크가 내놓은 감정인식 로봇 ‘페퍼’를 시연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 36년 만에 처음으로 스타트업 전용 전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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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단 루시드 뿐만이 아니다. 가스 누출 탐지기기를 만드는 미국의 바이오인스피라, 동영상 분석 솔루션을 만드는 네덜란드의 비노션 등 해외 17개 스타트업이 이번 대만 컴퓨텍스에 참가해 집중 조명을 받았다.

이들을 초청한 곳은 대만의 대기업 30곳이 후원을 하고 있는 인큐베이터 개리지플러스(Garage+)다. 개리지플러스 관계자는 “대만의 제조업과의 협업을 통해 더 좋은 제품을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고 판단해 초청했다”며 “대만에서 다양한 제조업체와 투자자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도체와 PC 같은 제조업 분야의 강자로 꼽히는 대만이 스타트업 집중 육성을 위해 팔을 걷어 붙였다.

올해 36회를 맞이한 ‘아시안판 CES’로 불리는 대만의 대표적인 국제 행사 컴퓨텍스가 그 시작이었다. 지난해까지는 컴퓨터 박람회 형식으로 진행됐지만, 올해는 스타트업 생태계 확대에 집중했다는 것이 확연하게 보였다.

컴퓨텍스가 열리는 타이베이 국제무역센터에 올해 처음 마련된 스마텍스(SmarTEX) 전시관과 이노벡스(InnoVEX) 전시관이 첨병 노릇을 했다.

스마텍스 전시관에는 IoT와 스마트홈 등에 사용되는 솔루션과 제품이 선보였고, 이노벡스 전시관은 22개국에서 온 210여 개의 스타트업이 부스를 마련했다. 전통적인 제조업 강국 대만의 변화가 느껴졌다. 대만이 스타트업 육성에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는 컴퓨텍스 개막식에 참가한 차이잉원(Tsai Ing-wen) 대만 총통의 발언에서도 느낄 수 있다.

“대만(산업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융합에 집중해야 한다. 이 도전을 위해 (대만의) 새로운 정부는 인간 중심의 스마트 도시인 ‘아시안 실리콘 밸리 건설’의 약속을 진행할 것이다.”

지난 1월 대만의 첫 여성 총통으로 선출된 차이 잉원은 선거기간 동안 ‘타이베이에 아시안 실리콘밸리 건설’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제조업 기반의 산업구조와 ICT를 융합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이다.

차이잉원 총통은 “대만의 ICT 산업의 발전상을 컴퓨텍스가 보여줄 것”이라며 자신감도 내비쳤다. 개막식 연설을 끝낸 후 1층 전시장으로 내려가 일본의 소프트뱅크와 대만의 폭스콘이 합작으로 내놓은 감정인식 로봇 ‘페퍼’를 작동하는 모습도 보여줬다.

개막식이 열린 타이베이 난강전시센터는 대만의 강점인 제조업의 현재를 볼 수 있다. 에이서, 에이수스 같은 전통의 PC 강자들이 다양한 제품을 선보였다. 데이터 저장장치 및 PC 부품 제조업체들도 마우스부터 케이블, 그리고 다양한 액세서리로 관람객의 눈길을 끌었다. PC 본체는 마치 미술작품처럼 갖가지 모양으로 디자인된 제품들이 전시됐다.

타이베이 난강전시센터에서 택시로 10여 분 거리에 있는 타이베이 국제무역센터 3홀에 마련된 이노벡스 전시관은 대만 스타트업의 현재를 보여준다. 개막 당일부터 이노벡스 전시관은 다양한 행사와 수많은 관람객들로 열기가 뜨거웠다.

센터 스테이지에서 열린 행사는 트위치(twitch) 앱을 통해 생중계 됐다. 개막 당일 첫 번째 행사는 ‘타이완의 제조업과 스타트업이 어떻게 협업을 할까?’라는 주제의 패널 토의였다. 이노벡스 전시관의 운영 목표를 그대로 드러내는 주제였다.

이노벡스 전시관에서 가장 눈길을 끈 것은 개막식부터 폐막식까지 이어진 스타트업 관계자들의 피칭 대회였다.

3만 달러(한화로 3526만원)의 상금이 걸려 있는 피칭 대회에는 17개국 102개 스타트업이 참석, 전문 심사단이 3번의 심사를 거쳐 최종 후보 8개사를 선정했다. 1위는 대만의 스타트업 MoBagel이 차지했다. IoT 디바이스를 위한 실시간 예측 분석 서비스를 론칭한 스타트업이었다.

한국에서 유일하게 피칭 대회에 참여한 ‘코노랩스’ 민윤정 대표는 준결승까지 진출했고, ‘라인 프로토스타 특별상’을 수상했다. 민 대표는 “피칭 대회에 참여하면 VC들의 관심을 끌 수 있고,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라며 “대회에서 1위를 하는 것보다 우리를 알릴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 대만 총통 ‘아시안 실리콘 밸리 건설’ 공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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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텍스 관람객이 가장 좋아했던 코너는 VR 체험관이다. 타이베이 난강전시센터에 부스를 마련한 쿨러 마스터는 낙하산 체험을 할 수 있는 시설을 마련해 인기를 끌었다. / 최영진 기자

7월 말 타이베이에서 열리는 스타트업 행사인 ‘아이디어 쇼’ 부스도 이노벡스 전시관에 설치됐다. 이 부스에는 해외 스타트업이 자리를 잡고 자신들의 아이디어와 제품을 관람객들에게 소개했다. 210여 개의 부스가 이노벡스 전시관에 설치됐지만, 아쉽게도 IoT와 앱 서비스가 대다수였다. 제조업과 스타트업의 협업이 가능한 분야에만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FLUX Delta 3D 프린터로 컴퓨텍스에서 ‘d&i 어워드’ 금상을 받은 대만의 스타트업 FLUX 공동 창업자 짐 유(Jim Yu)는 “아직까지 대만 스타트업은 제조업이 대부분”이라며 “대만의 다양한 제조업체와 협업을 하면 스타트업들이 시너지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한국에서 열풍이 불고 있는 O2O나 핀테크 같은 분야의 스타트업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컴퓨텍스의 또 다른 볼거리는 CPX 컨퍼런스였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ICT 리더들이 참가해 ICT의 흐름과 변화를 놓고 치열한 토론을 벌였다. 사이먼 시거스 ARM CEO, 밀라노 캔디데이트 시티 엑스포 2015의 혁신 디자이너인 비토 디바리, 퀄컴의 라훌 파텔 수석부사장, 지멘스 타이완의 에르달 엘버 같은 테크 기업 임원들이 무대에 올랐다.

사이먼시거스는 기조연설에서 “IoT는 더 이상 상상 속의 컨셉트가 아니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통합은 다양한 방면에서 종합적인 솔루션 개발을 촉진시킬 것이다”고 강조했다.

비토 디바리는 “대만의 탄탄한 제조 기술은 테크 이노베이터들을 위한 견고한 기반이 되어 왔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주관사인 대만무역센터(TAITRA) 월터 예 부사장은 컴퓨텍스 폐막식에서 “2017년에는 인공지능, 가상현실, 증강현실, 스마트 매뉴펙처링 같은 혁신적인 기술을 선보이는 데 초점을 맞출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36회째를 맞이한 컴퓨텍스 2016은 세계 30개국의 1602개 기업이 참가한 가운데 5월 31일부터 6월 4일까지 열렸다. 컴퓨텍스 주관사는 대만무역센터(TAITRA)다. 타이베이 난강전시센터, 타이베이 국제무역 센터 1홀과 3홀에서 행사가 진행됐다. 스타트업 전용관인 이노벡스 전시관과 사물인터넷(IoT)과 스마트홈을 중심 테마로 하는 스마텍스 전시관이 올해 처음으로 마련됐다.


[박스기사] 대만무역센터(TAITRA) 부사장 월터 예(Walter Yeh)
-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융합에 집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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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최대 글로벌 ICT 박람회로 꼽히는 컴퓨텍스 주관사인 대만무역센터(TAITRA)의 월터 예 부사장은 대만에서 마이스(MICE, 기업회의, 포상관광, 컨벤션, 전시) 산업 분야의 전문가로 꼽힌다. 2010년 중국 상하이 엑스포 대만관(Taiwan Pavilion) 회장직을 수행했다.

컴퓨텍스의 변화를 이끌어낸 월터 예 부사장은 포브스코리아와의 인터뷰에서 “대만의 변화를 컴퓨텍스가 보여주고 있다”고 강조했다.

TAITRA가 컴퓨텍스를 주최하고 있다. 올해 가장 달라진 점은 이노벡스 전시관 설치다.

올해 컴퓨텍스는 대만 산업의 변화를 가장 잘 보여준다. 대만은 그동안 하드웨어에 강점을 보여줬지만, 이젠 소프트웨어에 집중해야 할 때다. 컴퓨텍스에서 가장 큰 볼거리는 IoT(사물인터넷)이다. 올해 처음 마련한 이노벡스에 전 세계에서 217개 스타트업이 참여했다. 예상보다 성공했다.

대만의 제조업이 쇠퇴하고 있다. 이노벡스관을 마련한 것은 대만 산업의 탈출구를 마련하기 위한 것인가.

향후 20년을 대비하기 위한 것이다. 대만을 대표하는 Acer나 Asus 같은 글로벌 기업들도 변화를 하고 있다. 비즈니스 솔루션 사업에 집중하고 있다.


대만의 스타트업 생태계는 원활하게 작동하고 있나.

대만의 청년들은 창업에 대한 거부감이 없다. 대만 정부도 청년창업을 지원하기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헤드스타트 타이완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국가발전기금을 마련해 재정적인 지원도 하고 있다. 정부 차원에서 스타트업의 빠른 성장과 해외진출을 지원하려고 노력 중이다.


| 정부 차원에서 스타트업 적극 지원


타이베이에 아시안 실리콘 밸리를 건설한다는데.

총통의 공약이다. 타오위안 국제공항 근처에 건설을 할 계획이다. 타이베이나 신추과학단지처럼 하이테크 개발이 잘 이뤄지는 도시와 연결이 쉽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국제공항이 있어서 해외를 오가는 게 편리하다는 것도 장점도 가지고 있다. 정부가 이미 태스크포스도 만들었다. 타이베이는 바이오테크, 타이난은 녹색산업이 중심이 되는 도시가 될 것이다. 각 지역의 특색을 살릴 수 있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아시안 실리콘밸리 계획은 곧 나올 것으로 기대한다.

대만 정부가 집중 육성하려는 분야는 무엇인가.

대만은 전통적으로 반도체 분야가 강하다. 제조업과 ICT 분야가 융합할 수 있는 IoT가 관심을 받고 있다. 바이오 분야도 정부가 강조하고 있다. 미국이나 중국과 비교해도 절대 뒤지지 않을 경쟁력을 갖출 것이다.

대만 스타트업계에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이 있는가.

스타트업의 가치가 어느 정도인지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TAITRA는 스타트업이 성장할 수 있는 플랫폼 역할을 하고 있다. 미래에 투자를 하고 있다. Acer, 폭스콘 같은 글로벌 기업도 처음에는 6~7명이 시작해서 이렇게 성장했다. 우리는 미래의 기회에 투자를 할 것이다.

얼마 전 중국에서 CES 아시아가 열렸다. 컴퓨텍스가 이런 글로벌 박람회와 경쟁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면.

CES 아시아는 올해 처음 열렸다. 참여한 업체도 260여 개 뿐이다. 컴퓨텍스는 1600여 업체가 넘는다. CES 아시아는 중국 시장에 중점을 두고 있지만, 컴퓨텍스는 글로벌 시장을 목표로 하고 있다. CES 아시아와 컴퓨텍스는 경쟁이 아닌 협력관계라고 본다.

최영진 기자 cyj7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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