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개공」100여명 모집에 5천여명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취직의 문」이 얼마나 작은지 실감할 수 있는 현장이었다.
일요일인 22일 대설주의보가 내려진 대전시 한남대 교정에는 상오 8시쯤부터 5천여명의「대졸취업 희망자」들이 눈길을 헤치고 줄을 지어 물려들었다.
사무직 1백45대1, 기술직 28대1의 경쟁을 뚫고 산기지개발공사가 뽑게될 86년도 신입사원 1백여명중의 한사람이 되고자 전국 각지의1백46개 대학 (전문대 이상)에서 몰려든 이들은 대부분시험 하루전날 대전에 도착, 여관이나 여인숙에서 하룻밤을 잤거나 시험 당일날 아침첫차를 타고 대전에 온「객지수험생」들 이었다.
이 시험 때문에 대전시내숙박업소들은 간밤「반짝경기」를 누릴수 있었지만 그나마 이만한 손님을 치러내는데도 숙박시설이 모자라 혼잡을 빚을 정도였다.
대전시내 숙박시설은 정상적으로는 한꺼번에 3천∼4천명의 손님을 치를수 있다.『고등학교 입시도 겪었고 대입예비고사도 치렸었지만 요즘 쫓아다니고 있는 취직시험에 대면 아무것도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고사장에서 만난 양해종씨(28.단국대기계과 졸업예정)의 말이었다.
『오늘 아침 서울역에서 6시10분발 통일호 첫차를 타고 내려왔는데 책 한두권씩을 든 같은 나이또래의 승객이 한 칸에 서른명씩은 돼요. 결국 앞서거니 뒤서거니 여기 한남대까지 같이 왔지요 그전에는 취직시험 보러간다면 으레 서울행이었으나 요즈음은 서울에서 지방행도 예사로운 일인 것이다. 요즈음의 취업난이 만들어낸 새로운 풍속도랄수 밖에 없다.
양씨의 경우처럼 서울의 대학 졸업자중 이번 산기공 입사시험에 응시한 사람은 줄잡아 8백명이 넘는다. 서울대에서 10명, 연세대에서 25명, 고대에서 40명, 건국대에서 1백2명, 성대에서1백42명, 한양대에서 1백32명, 동국대에서 1백13명, 중앙대에서 1백11명, 단국대에서 1백66명씩이 산기공에 원서를 냈고 이들중 대부분이 결시하지 않고 시험을 치렀다.
지방대 출신의 취직난이 더 심하다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서울·지방 가릴 것 없이 취직하기가 힘들어진 마당에 이같은「원정취업」이 갈수록 늘어나 지방대출신의 취업난은 더욱 어려워지고 있는 것이다.
부산 동아대법학과를 올2월에 졸업한 박성윤씨 (29)도 역시 원정케이스.
지난 1년 동안 사시준비를 하다가 일단 신분의 안정을 위해 산기공에 응시했다는 박씨는 왜 대전까지 와서 직장을 구하느냐는 질문에『원래 지방에는 사람을 많이 뽑은 대기업이 드문데 직장이대전인들 무슨 상관이냐』고 되물었다.
그는 또 시험 하루전날 대전에 도착해「아무것도 안했는데」차비·숙박비를 합쳐 3만원이상을 쓰게 된것도 큰 부담이었으며 그나마 여관구하기도 무척 힘들었다고 푸념했다.
고학력 실업의 현상은 이번 산기공 인사시험에서도 그대로 드러나 대학원 졸업학력의 응시자가 32명이나 됐으며 이밖에도 고사장에서 만난 수험생들은 저마다 요즈음 취업난현상의 대표적인 단면들을 이야기 하고있었다.
『입사원서를 구하는 것부터가 전쟁이예요. 서울의 대기업들은 아예 여학생에게는 응시자격을 주지도 않지요. 이번 산기공의 경우처럼 어느 어느 학과에 몇부씩만 원서가 오면 누가 먼저 수단껏 정보를 입수하느냐 부터가 치열한 경쟁이예요.』
과거 경쟁률이 그리 높지 않았던 산기공의 입사시험이 지난해부터 갑자기「대규모행사」로 바뀌었다는 것은 갈수록 어려워지는 취업난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김수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