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PO가 희망이다] “아동의 생명, 국가가 책임질 수 있도록 법적 기반 마련돼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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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우산어린이재단은 15세 이하 아동 입원진료비를 국가가 보장하는 법안 통과를 위해 어린이병원비국가보장추진연대와 대국민서명운동을 진행한다. [사진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아이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한 번도 걸어보지 못했다. 아홉 살이 됐지만 온종일 앉아 있거나 누워서 생활해야 한다. 태중에서 산소 공급이 원활하지 않아 뇌에 손상을 입은 채 26주 만에 태어났다. 병명은 뇌병변 1급. 혁준(가명)이는 하반신 신경이 마비돼 하체가 자라지 않는다. 대학병원에서 두 차례 고관절 수술을 받고 나서 물건을 잡고 걸을 수 있게 됐지만 치료를 계속 받아야 한다. 하지만 비용을 구할 길이 막막하다. 부모의 이혼으로 아버지가 계시지 않고 할머니와 어머니는 근로능력을 상실했다. 수입이라곤 한 달 기초생활수급비 80만원이 전부다.

법안 통과 서명 운동 펼쳐
환아 지원 캠페인도 실시

새별(5세, 가명)이는 선천성 단장증후군을 앓고 있다. 소장의 길이가 45cm로 보통 6~7m인 일반 아동의 10분의 1도 되지 않아 먹은 음식물이 제대로 흡수되지 않는다. 생존을 위해 회당 6만원에 달하는 영양제 주사를 맞아야 하고 성장 호르몬 치료도 받아야 한다. 영양제 주사비만 월 100만원 이상 든다. 한 달 수급비 80만원은 턱없이 부족하다. 아이가 주사기를 떼는 시간이 하루 4시간뿐이어서 어머니 이명진(가명) 씨는 하루 종일 새별이를 떠날 수 없다.

이처럼 아이의 치료와 생계를 위한 비용이 부족해 지원이 절실한 중증 환아 가정이 적지 않지만 실제 지원책은 부족한 실정이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 관계자는 “국민건강보험 보장률은 62%에 불과하고 비급여 비중도 18%로 높아서 환자와 가족의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을 포함해 50여 개 NPO가 소속된 어린이병원비국가보장추진연대에 따르면 15세 이하 아동의 병원비 총액은 2014년 기준 6조3937억원이다. 이중 법정 본인부담 및 비급여 본인부담금 총액은 2조5114억원으로 알려졌다. 연간 1000만원 이상 진료비가 발생한 아동이 1만7424명이고 1억원 이상도 1008명에 달한다”고 전했다.

어린이병원비국가보장추진연대는 “2014년에 만 15세 이하 아동의 병원비로 지출된 약 6조4000억원 중 입원진료비는 5000억원이었다”면서 “국민건강보험 누적 흑자 총액(2015년 8월 기준 16조 6000억원)의 3%로 780만 명의 아동이 입원진료비를 보장받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 복지사업본부 여승수 본부장은 “아동은 아플 때 치료받으며 건강하게 자랄 권리가 있고, 국가는 이를 책임져야 할 의무가 있다. 아동의 생명을 국가가 책임지고 지켜 낼 수 있도록 법적 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서명운동을 펼칠 것”이라고 밝혔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은 사회 제도적으로 소외된 환아와 가정이 법적 토대 위에서 치료받을 수 있도록 만 15세 이하 아동 입원진료비를 국가가 보장하는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한 대국민 서명운동을 어린이병원비국가보장추진연대와 진행한다.

또 저소득, 차상위 가정의 의료비와 생계비를 지원하고자 환아 지원 캠페인 ‘하루(淚, 눈물 루)’를 내년 4월까지 전개한다. 이 캠페인은 초록우산어린이재단 홈페이지 및 전국 사업기관을 통해 1년간 온·오프라인으로 실시된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 나눔마케팅본부 이종화 본부장은 “중증 환아 가정의 경우 생계비가 거의 다 아이 치료비로 사용돼 가계의 부담이 상당하다”면서 “초록우산어린이재단 같은 아동복지전문기관이 지원의 길을 모색하고 있으나 보다 많은 분들의 후원과 관심이 절실하다. 환아 가정을 위해 적극적인 참여를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은 17년간 KBS ‘사랑의 리퀘스트’ 프로그램을 통해 소외된 이웃들을 도왔다. 국민들이 ARS를 통해 보내온 성금으로 868억원을 9만1113명에게 지원했다. 이중 중증 환아를 비롯해 가족의 질병 때문에 의료 지원이 시급한 5278명에게 431억원의 후원금을 전달했다. 또 매년 어린이날에는 MBC와 ‘어린이에게 새생명을’ 캠페인을 열어 국내 중증 난치성 환아의 사연을 소개하고 정기후원 신청을 받아 도움이 필요한 가정과 연결해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후원으로 치료비가 필요한 모든 아동의 병원비를 마련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은 어린이 병원비를 국가가 보장할 수 있도록 촉구하는 활동을 전개하는 한편 제도 개선 시까지 모금 활동을 병행할 예정이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이제훈 회장은 “아픈 아이가 경제적 어려움으로 더 고통 받지 않도록 어린이 병원비를 국가에서 의무 지원해 줄 수 있도록 민간단체로서 노력을 기울이고 소외 아동을 위한 목소리를 높여나갈 것”이라며 많은 국민들의 관심을 요청했다.

김승수 객원기자 kim.seungs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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