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익<한림대교수·한국사>금욕을 몸에 익혀야 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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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세모를 맞아 백화점이나 호텔에 들어가 보면 지난 20년간 우리나라 경제는 산술급수적으로 성장한 반면 우리국민의 소비성향은 기하급수적으로 는 것이 아닌가 의아하게 된다. 우리는 분명히 단군이래 처음으로 호사스런 의식주생활을 만끽 (?) 하고 있다. 호텔식당에서는 다른나라에서 맛볼 수 없는 온갖 산해진미가 차려져 나오는가 하면 도시의 일상생활권 깊숙이 파고든 수많은 술집·사우나탕·이용원 등에서는 경쟁적으로 관능적 서비스를 판매하고 있다.
가끔 신문에 비치는 통계숫자로 미루어 볼때 우리나라 사람의 개인당 술·담배소비량은 세계최고의 수준에 도달해 있다. 이런 사실들을 종합해 보면 우리나라는 지금 세계굴지의 환락중심지가 되고 있는것 같다.
이러한 사치·낭비및 퇴폐풍조가 하필 오늘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구태여 여기서 문제삼는 것은 이런 풍조가 점차 줄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심해지고 있지 않나 느껴지기 때문이다.
특히 불황이 심한 이때 경향의 호텔방이 모두 다 예약이 되어있다는 보도는 우리에게 심각한 불안감을 자아낸다.
외국은 제쳐놓고 우리나라의 경우 사치와 낭비는 우선 계층간의 위화감을 일으키는 사회문제로 심각히 다투어져야 한다.
또 그것은 외채로 허덕이는 우리경제를 좀먹는 요소이기 때문에 경제적 이슈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가 사치·낭비·퇴폐를 우려하게 되는 보다 더 근본적인 이유는 그것이 문화창조에 원동력인 국민의 도덕적 소질 (Moral fiber) 을 잠식하기 때문이다.「막스·베버」는 서구의 합리적문명을 특징짖는 자본주의 정신이 칼빈교도의「세속적 금욕주의」(inner―worldly asceticism)에서 비롯한 것이라 갈파하였다.
1960년대 이래 우리가 이룩한「경이적인」경제성장도 따지고 보면 우리민족이 오랜 고난을 통해 축적한 근검·절약의 습관과 자기희생 및 감내의 정신등 우리 나름의 금욕주의에 힘입은 것이었다. 바로 이 소중한 도덕적 자산을 술·담배·섹스로 상징되는 오늘날의 퇴폐적 향락풍조가 파괴하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이러한 풍조가 계속 번져 나간다면 극일이나 승공은 고사하고 국가적 존립마저 어렵지않을까 우려된다. 인류역사를 뒤돌아 볼때 한 민족의 극심한 도덕적부패는 전쟁·혁명·질병등 극단적인 방법으로 치유되곤 하였다. 우리의 경우에도 이러한 극한상황까지 일을 방치해야한단 말인가.
오늘날의 도덕적 상황이 이렇게된데 대해서는 1960년대 이래로 경제성장을 배타적으로 강조해온 정부가 그 l차적 책임을 져야 한다. 인체에 해롭다는 것이 판명된 담배를 정부가 계속 전매하면서 이의 보급을 장려 (?) 하는 예에서 단적으로 나타나듯이 우리나라 정부는 오랫동안 몰윤리적인 경제 우선정책을 추구해 왔다. 바로 이러한 정책발상의 연장으로 관광객유치라는 명목하에 대규모 유흥산업을 육성했으며, 이 유흥산업이 오늘날의 퇴폐풍조를 직접 자극한 것이다.
어쩌면 정부가 유흥시설에 대해 관용적 (permissive) 태도를 보인 것은 관능적 쾌락추구를 국민의 생산의욕 촉진유인, 혹은 정치적 관심 해소제로 간주하였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여하튼 근래우리정부가 국민의 도덕교육에 대해 이상할이 만큼 무관심했던 것은 사실이다. 정부가 내년의 5대 시정목표중의 하나로「근검·절약실천」을 포함시켰다고 한다.
이러한 모처럼의 정책지표도 그 것이 종래의 경제우선주의의 테두리 안에서 추구되는 것이라면 별로 큰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
크리스머스를 맞아 국민의 도덕수준문제를 논하게 되었으니 정부 외에 기독교교회에 대해서도 그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해방후 40년간 우리나라의 개신교와 천주교는 크게 그 교세를 확장해 이제 우리국민의 4분의 1이상이 기독교교인으로 등록되어 있다.
그중 개신교의 경우 광복당시(1945년) 2천8백개에 불과했던 교회당수가 현재 (1985년) 2만6천여개로 10배나 불었고, 신자수도 46만에서 7백만명으로 15배가량 늘었다고 한다. 기독교의 교세가 이렇게 비약적으로 신장하는 시기에 앞에서 살핀 도덕적 타락현상이 병행해 진전되었다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것은「빛과 소금」을 자처하는 교회가 그 사회적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않고 있었다는 명백한 증거가 아닌가.
우리나라 개신교는 일제시대까지만 해도 그 교세가 미미했다(3.1운동당시 우리나라의 개신교 신자수는 국민전체의 1%미만인 19만명 정도였다). 그러나 한국개신교는 세계에서 가장 열심히 성경을 공부하는 교회, 기도를 많이 하는 교회, 집회와 전도를 많이 하는 교회로 소문이 나있었다. 뿐만 아니라 독립협회의 민권운동, 신민회의 국권회복운동 그리고 3·1운동등 일련의 민족주의 운동에 선도적 역할을 자담함으로써 역사를 이끄는「창조적 소수」의 면모를 드러내기도 하였다.
해방후에 기독교가 비약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도 교회가 민족공동체 안에서 이렇게 긴요한 공헌을 해 왔기 때문이었다고 본다. 광복전에 한국 개신교가 시도했던 대중운동 중에 절제운동이 있다. 1932년에 평양에서 발족한「조선기독교 절제운동회」(임원 채필근·조만직, 총무 송상석) 로 대표되는 기독교의 절제운동에서는 금주·금연·공창폐지에 주력하였다.
사실상 한국개신교는 이미 초창기부터 교인간에 금주와 금연을 의무화하고 1910년대 이래 교회학교에서 절제교육을 행함으로써 국민들간에 경건한 기독교인상을 구축해 왔다. 그러나 해방후 교회가 점차 세속화하면서 개신교회는 이 귀중한 전통을 등한히 하고 그대신 물량적 성장주의, 혹은 구복신앙으로 그 발전의 방향을 바꾸고만 감이 있다.
앞으로 한국교회가 효과적인 절제·금욕운동을 벌이지 않는다면 우리나라는 필시 필리핀이나 멕시코갈이 하나의「부패한 기독교국가」로 전락할지 모른다. 그렇지 않으면 기독교는 고려말의 불교처럼 국민들로부터 배척당할 것이다.
새해를 내다 볼때 우리가 해결해야할 문제가 너무나 많다. 갈수록 힘들어지는 국제경쟁에서 한국민이 살아남는 길은 금욕을 몸에 익히는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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