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생 12% 일부러 눈병 걸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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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해마다 여름.가을철 초.중.고교에서 유행성 각.결막염 등 눈병이 확산되는 데는 눈병 걸리기를 원하는 학생들의 '눈물겨운' 노력이 한몫 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눈병에 걸린 학생에게는 등교 정지 조치가 내려져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전교조 서울지부 보건위원회는 지난해 눈병환자가 가장 많이 발생했던 서울시내 중학교 6개교와 고등학교 7개교의 총 1천15명 학생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해 분석한 '눈병을 환영하는 아이들'이란 보고서를 18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눈병에 걸리기 위해 노력해 감염된 학생은 1백26명(12.2%)이나 됐다. 고의 감염자가 실제 감염 학생(3백51명)의 36%에 달한다는 것이다. 눈병에 걸린 친구가 학교에 안 오니 부럽다는 반응을 보인 학생도 전체 응답자의 21.2%나 됐다.

고의 감염은 학교 수업을 빠질 수 있는 수단으로 인식되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됐다. 고의 감염 학생들은 대부분 성적이 뒤처지는 등 학교 생활에 대한 스트레스가 심한 것으로 나타났다.

학생들이 생각해낸 '감염 비법'은 다양하다. 가장 많이 동원된 방법은 눈병 환자를 만진 손으로 자신의 눈을 비비거나 눈병에 걸린 친구와 함께 노는 것이었다.

심지어 담뱃재를 눈에 넣은 학생이 있는가 하면 ▶안대 같이 쓰기▶친구 눈꼽을 자기 눈에 넣기▶눈에 먼지 넣기 등의 방법도 있었다.

고의 감염 학생 가운데 눈병에 걸린 뒤 집에서 쉬며 안정을 취한 학생은 35.4%에 불과했다. PC방.노래방에 가거나 길거리를 배회하며 시간을 보냈다는 학생이 59.5%로 가장 많았다. 이 때문에 감염 학생들은 학교에 오지 않더라도 외부에서 제2차 감염을 초래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지적됐다.

전교조 관계자는 "눈병이 발생했을 때 교육당국이 환자들에 대해 단순히 등교를 중지시키는 것은 효과가 없다는 게 증명됐다"며 "학생들이 오고 싶어 하는 학교를 만드는 게 눈병 확산을 막는 데 더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1994년에도 유행성 눈병으로 학교에 대해 등교 중지 조치가 내려지자 학생들 사이에서 돈을 주고 바이러스균을 사고 파는 일이 벌어지는 등 해마다 눈병을 이유로 학생들의 등교 거부 행태가 나타나고 있다. 올해 역시 대전.충남지역 중학교에 이어 서울지역 중학교에서도 유행성 각.결막염이 집단 발병해 3백여명이 치료를 받는 등 비상이 걸린 상태다.

강홍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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