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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양극화…강경론만 무성|90일회기마친 "조용하지 못했던 국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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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18일로 파란많던 90일간의 회기를 끝낸 이번 정기국회는 11대 국회가 4년동안 자찬해 마지않았던 조용한 국회, 이른바 새국회상을 일거에 허물어뜨리고 말았다.
제5공화국 출범과 함께「구태」로 배적되던 공전·단상점거·농성·단독처리란 현상이 모조리 재등장했으며 다당제란 이름아래 운위되던 지당론은 자취를 감추고 대신 극대한대립과 혹백논리가 두드러진 양당제하의 국회운영이 되살아났다.
이때문에 여야는 이슈마다 강경대립을 하면서 정국에는 항상 난기류가 감돌았고 전도를 예측할수 없는 불길감이 드리운 가운데 정기국회가 폐회됐다.
이처럼 새 국회상이 허무하게 무너시고 대결과 파행의 정치가 부활한것은 인위적3당체제가 2·12총선에의해 무참히 깨지고 어느날 갑자기 거대야당이 등장할때부터 예견되어 온것으로 이번 정기국회를 통해 현실화했을 뿐이다.
11대때와는 달리 제3당의 완충적 기능은 퇴화하고 민정당·신민당간의 양극화와 예각적 대립이 이번 정기국회를 일관했다.
이같은 현상은 우려했던 대로 국회운영을 가파르게하고 대화의 패턴과 타협의 수순에 큰 변화를 초래했다.
이는 첫째 서로가 극단적으로 대립되는 목표와 과정, 이를테면 절대적 개헌론과 절대적 호헌론에서 출발하고 있기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서로 상대의 정통성을 원색적으로 시비하기가 일쑤였고 조그만 문제가 곧 큰 사건으로 비화되는 극한대결을 서슴지않았다.
지난번 발언파동이 그런 예다.
신민당총재가 대표연설에서 현 정권의 탄생자체를 시비한것을 도화선으로 야당의원들간에는 강경발언의 이상경쟁풍조가 생겼고 여당이 본회의나 상임위에서 야유와 고함을 선도하는 기현상을 빚었다.
여야간의 과민한 대치는 야당의원의 발언원고를 여당이 사전에 문제삼아 질문을 두차례나 연기하는 신종파행을 불러일으켰고 박찬종·조순형의원의 고대앞사건, 의원보좌관 소환사건등 사법적 시비가 회기중에 국희주변을 맴 돈것도 특이했다.
박·조의원사건으로 인한 개회지연, 국회부의장파동, 층리출석문제로 인한 상임위.예결위 공전은 민정·신민당간의 양극구조가 안고있는 가연성의 잠재력을 입증한것이었다.
정기국회를 악화시킨 것은 특히 양당이 모두 정치력이 부족했는데다 정치력발휘에 관심조차 적었다는 점이다.
단독운영과 농성을 미리부터 공공연하게 방언했고 그런사태를 막으려는 사전노력보다 무턱대고 떠내려가다 부딪치면 그만이라는식의 운영을 해왔다는 지적을 받지 않을수 없다.
이런현상의 배경에는 이른바 장외의 존재와 영향도 크게 작용했다.
여권내에는 야당과의 파트너십을 인정하는 원내에서의 양보나 타협을 패배나 굴욕으로 보는 시각이 있으며 특히 장외쪽이 힘의 논리에 쉽게 기우는 경향이 있다.
여권내의 강온을 인맥을 증심으로 분류하는 것은 온당치못하나 몇건의 쟁점을 겪으면서 강온의 흐름이 차차 윤곽화한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으며 강경론자들의 목소리가 커가는 인상을 주고있다.
신민당역시 다수 소속의원들의 본심과는 다른 대결위주의 전략에 집착하는 것은 장외 두 김씨의 영향이 큰 작용을 하기때문이다.
두 김씨는 이따금 정부-여당을 상대로한 공동보조 보다는 그들 양자간의 세력다툼 차원에서 강경책을 교대로 고집했다.
예컨대 부의장선출파동땐 김대중씨가 조연하의원의 단호한 척결을 주장한데 비해 김영삼씨는 정치적 해결을 모색했고, 민정당이 제안한 헌연특에 대해서는 김영삼씨가 수락을 원했지만 김대중씨가 거부를 고집했다.
문제가 많고 난해한데 비해서는 대화주역들의 정치력빈곤과 채널의 효율성이 부족했던 것도 정기국회파란의한 원인이 됐다는 지적도 많다.
이세기민정당총무와 김동영신민당총무는 처음에는 심한개인적 불신감으로 대화를 그르친적이 여러번 있었다.
심지어 박·조의원사건후 국회정상화를 위한 노태우대표·이민우총재간의 원칙합의를 구체화하면서 여러번 지리멸렬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다가 국회운영위의 개헌특위 찬반토론을 성사시킨후 어느정도 신뢰를 회복, 헌법관계특위의 재협상때는 상당한 수준의 협상능력을 보이는듯 했으나 특히 여당의 경우 그것이 당내지지의 발판이 없는것이었음이 드러나고 말았다.
이총무는 핵심이 따로 있는 여권의 권력구조속에서 협상전권을 쥐는데 실패했고, 김총무는 복잡한 계파정치속에서 담결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했다.
총무회담이 부실할수록 대표회담의 필요성과 기대가 높아졌으나 이것마저 회기막판에 와서는 헌법연구특위협상의 무산으로 노골적인 비난을 교환하는 사이로 관계가 악화되고 말았다.
이처렴 양당간의 채널이 정상가동하지 못한데 비해 이재형국회의장과 최영철부의장의 중재력은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이의장은 본인의 강한 개성과 야당출신의 장노라는 전력을 바탕으로 국회운영이 교착될때마다 수습의 실마리를 찾아주었으며 최부의장은「3당총무」라는 별명을 얻을정도로 동분서주했다.
정기국회가 끝내 마무리도 제대로 못한채 민정당·국민당만으로 허겁지겁 필요한 안건이나 처리하고 폐회함으로써 정국은 암울한 상태를 지속할 전망이다.
결국 민정당이나 신민당은『저쪽의 손해가 곧 나에게 득』이라는 당리당략적 집착으로 제로 섬(영화)게임을 벌인 나머지 국가적 차원의 다양한 갈등해소라는 정치본연의 기능을 소홀히 함으로써 정치 전체가 평가절하되는 결과를 가져온것으로 보지않을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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