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통폐합 내년에 본격화한다|위탁경영 기업을 우선 합병·청산|부실 해외건설·해운부터 정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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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조세감면규제법의 개정으로 내년부터는 그동안 미루어져온 부실기업의 정리가 본격적으로 단행될 전망이다.
부실기업의 인수나 흡수합병이 확정됐으면서도 세금문제때문에 가계약·위탁경영등의 편법으로 시일을 끌어온 사례가 많다.
1차대상으로는 이미 위탁경영을 받고 있는 공영토건(동아건설), 경남기업 (대우), (주)삼호 (대림산업) ,남광토건 (쌍룡 종합건설) 과 인수방침이 확정됐으면서 가계약상태로 시일을 끌어온 국제그룹의 국제상사 (신발및 무역부문은 한일합섬,건설부문은 극동건설) 와 연합철강 (동국제강),한국화약이 맡기로된 명성그룹과 한양유통등이 대상이 된다.
산업합리화대상지정을 받은 기업등의 경우 앞으로는 소유부동산이나 계열기업을 평가, 기존 대출금을 갚을 경우 특별부가세나 양도소득세가 면제된다.
지금까지는 양도차익의 50%를 세금으로 떼어왔으므로 팔아봤자 빚탕감에 별도움이 못돼 망설이던 기업들이 본격적으로 정리에 나설수 있게된 셈이다.
해외건설과 해운이 1차적으로 합리화대상지정을 받게될것이 확실한데 이렇게되면 예컨대 한양그룹의 경우 한양유통을팔아 생긴 돈을 세금공제없이 전액 빚갚기에 쓸수있게된다.
현재 위탁경영을 하고있는 건실업체들은 위탁대상기업의 빚보증을 서고있는 상태.
앞으로는 이같은경우 건실한업체가 부실업체의 빚을 대신 갚거나 또는 빚을 자기앞으로 바꿔 달아놓게되면 이부분을 손비로 인정,3년동안 경상이익에서 공제할수 있게 된다.
결국 웬만한 이익이 나도 손비로 떨수있는 부분이 워낙 커 법인세를 한푼도 안 낼수 있다는 잇점이 있다.
물론 한그룹내의 건설회사가 계열부실업체의 빚을 떠 안는 경우도 마찬가지.
결국 없앨기업은 빨리없애자는 촉진책인데 현재 위탁경영상태인 기업은 내년에는 합법이건 기업청산이건 어떤 형태로든 매듭이 지어질것으로 보인다.
또 하나의 부실기업정리는 아직 위탁경영이나 가계약상태로 넘어간 것은 아니지만 극도의 경영난을 겪고있는 기업 쪽에서 일어날 전망.
해외건설쪽의 L사·H사·J사·S사등이나 해운의 D사·B사등대형사를 포함한 대부분의 업체,섬유쪽에 N사· D사등이 주로 거론된다.
부실기업 정리대상은 주무당국·주거래은행이 합의하여 결정하는것이 통례로 되어있다.
정부는 당초 올해 부실기업 정리스케줄을 제법 강도있게 밀어붙일 계획이었다.
국제그룹에 이어 몇몇 기업까지 요리할 생각이었다. 감쪽같이 「국제」 를 해체키로 결정한 사항을 기자회견을 통해 발표하면서 김만제 재무부장관은 사양산업 업종과 함께 몇몇 부실기업을 일일이 손으로 꼽으며 「문제의 기업」 이라고까지 밝힌바 있었다. 그러나 막상 국제의 해체작업이 시작되어 업계에 주는 충격이 대단하자 정부도 움찔하게 되었고 올해 경제사정도 그렇고해서 한발 물러서게 되었다.
관주도의 부실정리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는 해운사들의 통폐합작업 추진현황을 보면 단적으로 알수있다.
지난 84년5월 통폐합작업이 시작된이래 벌써 1년7개월이 지났고 당국이 통폐합작업의 마무리 기한으로 정한것이 올연말이지만 합리화 대상인 5개 그룹선사에 현재 통합이 완료된 것은 5개그룹선사에 지나지 않아 연내 통합완료는 불가능한 일이 돼버렸다.
통합대상 해운사끼리의 이해가 워낙 복잡하게 얽혀있기 때문인데 업계 대표들은 최근 해운항만청에 대해 통폐합조치를 일정기간 보류하거나 아예 통폐합조치를 수정, 더 많은 그룹선사로 분할해줄 것을 요청하기까지 했다.
한편 지난해 경남기업·남광토건·봉삼호등의 해외건설 3사를타기업에 위탁경영이라는 형태로 인수시키면서 해준 파격적인 금융지원은 당시 걱정한대로 몹시 나쁜 선례로 남아 올해 추진되어왔던 부실정리에도 좋지않은 영향을 미쳤다.
한국화약의 경우 (주)한양으로부터 노른자위라 할수있는 한양유통을 인수해가면서도 매입대금을 치르는 조건을 놓고 상당한 금융상의 혜택을 요구, 주거래은행측과 협상을 벌이고 있으며 이밖에 대성목재의 인수를 종용받고 있는 유원건설, 한일상공의 인수를 추진하고 있는 진로등도 하나같이 인수부채의상환기간·금리조건등에서 상당한 혜택을 요구하고 있다.
워낙 누적적자가 많기 때문에 금융혜택으로 보상해달라는 것이다. 또 남선물산의 경영을 맡게될 코오롱의 경우는 아예 법정관리대리인의 형식을 취해 부채상환을 상당기간 동결시키는 쪽으로 부실의 뒤처리가 추진되고 있다.「선인수· 후보사」 라는 괴상한 원칙이 동원돼 거의 강제로 떠맡기다시피 부실기업의 인수대상자를 물색했던 것이 인수하는측의「기대치 를 한껏 높여놓았고 결국「특혜」에 가까운 금융·세제상의 인수조건들이 따라붙게 만든 것이다.
정리대상기업 선정, 세감면폭등 결정에는 엄격한 원칙을 정해놓고해야할 것이다.
따지고보면 이제서야 가까스로 특융·조감법등의 제도적인 장치가 마련된것도 부실정리의 절차상 앞뒤가 바뀐것이며 또 특융이나 조감법이란것도 결국 금융·세제상의 혜택을 <합법적으로 뒷받침해주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부실기업정리를 원칙적으로 반대하는 사람은 없다. 털어버릴것은 털어버리고 우리경제가 홀가분하게 다시 출발하려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형평의 문제까지 지나쳐 버려서는 안된다. 건실한 기업은 세금을 내고 부실기업은 세감면을 해주는 부실기업 정리방식은 어떤식으로 설명이 안된다. 기왕 하기로 한것이니 어쩔수 없다고해도 부실기업 정리대상기업 선정, 세감면폭등 결정에 엄격한 원칙을 정해놓고 해야할 것이다.<김수길·박태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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