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평양다녀온 「고향방문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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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남북이산40년의 벽을 깨고 끊을수 없는 핏줄의 정을 확인하며 몸부림쳤던 고향 방문단.
짧았던 만남의 기쁨이 다시 헤어지는 아픔으로 응어리진지 3개윌째.
평양고향방문단은 각종 실향민들의 모임에 나가 보고회롤 통해 상봉경험을 알리고 북에서 가져온 대동강물을 고향사람들에게 나눠주거나 평양흙에 화초를 심어 기르면서 한때의 감격과 다시 헤어짐이 가져다준 쓰라림을 이겨내고 있다.
평양방문단은 상봉 2개월만인 지난달 25일 이북5도청에서 모임을 갖고 서로 친목을 도모하고 앞으로 있을 재2,제3의 고향방문단을 선험자로서 돕자는 뜻에서 「일평회」라는 모임을 만들었다. 정식명칭은「제1차 평양고향방문단친목회」.
회장에는 고향방문단 단장이었던 홍성철씨 (59·전내무부장관), 부회장에는 우대규씨 (70·평남도민회장), 김동수씨 (60·삼금사사장), 총무에는 이재운씨 (47·변호사)가 각각 뽑혔다.
회원은 고향방문단 50명, 예술공연단중 이북이 고향인, 김희갑씨 (배우), 김정구씨 (가수) 등 모두 5명.
회장 홍씨는 우선 내년 1월 정기총회에 가족들을 동반, 친목을 도모키로 했다고 밝혔다.
북의 큰누나 경애씨(67)와 「보름달 약속」을 한 홍씨는 매달 보름날이면 서울세곡동집에서 가족들과 보름달을 마주 대한다.
『기대를 안고 갔다가 슬픔과 괴로움만 안고 왔다』는 지학순주교 (64) 는 귀환직후 지병인 당뇨 때문에 고생했으나 건강을 되찾아 지난달11일 로마에서 열리는 주교회의에 참석했다가지난 4일 귀국했다.
『우리는 살아서 천당가는데 오빠는 죽어서 천당가겠다니 돌았구만요』라고 말한 용화씨 (61)의 말을 떠올리며 지주교는 한동안 주위사람들에게 『아이구, 이북엔 괜히 다녀 왔나봐. 자꾸 슬프기만 하고. 충격이 하도 커서 일어날 수가 없어』라고 ,말했다는 주위의전언.
33년만에 아버지 이병각씨 (72) 를 만난 이재운변호사는 각종 사회단체의 회합에 나가 상봉경험을 알리느라 여념이 없다. 지금까지 가진 상봉보고회만도 30여차례. 각종 신문·잡지에서도 원고청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번 아버지와의 상봉에서 어머니가 「아들 (이변호사) 이 인천부두가에서 죽어 가마니에 덮여있는 것을 보았다」는 헛소문을 듣고 실성, 27년전 돌아가신사실을 확인한 이변호사는지난번 추석때부터 비로소 정식으로 추모예배를 가질수 있었다.
어머니 조희영씨(80)와35년만에 극적으로 상봉한 황준근씨 (57·부천엘림장로교회목사) 는 어머니의 평안을 기도하는 것이 일과.
평양에 다녀온후 교회의교인이 1백명에서 1백30여멱으로 늘었다. 모두가 이산가족들이라는것.
6촌형을 만나러 갔다가 외조카인 한정조씨(44)만 만나고 돌아온 우형주씨(71·전서울대교수·평양명예시장)는 북에서 가져온 수도물과 고려호텔앞 꽃밭에서 퍼담아온 흙을 보며 망향의한을 달래고 있다.
흙과 물 일부는 지난 추석때 경기도고양군 부모님묘소에 뿌려 드렸다.
고향인 평양에 갔으나 노모 (92) 의 생사조차 확인하지 못하고 대동강 물과 평양 땅의 흙 한줌을 가져오는것으로 만족해야했던 박재창씨 (71· 조만식선생 기념사업회 상임위원장) 는 흙을 화분에 담고 난을 심어 방안 가까이에 두고 바라보며 실향의 아픔을 달래고 있다.
방문단은 그래도 나은편. 직접 가족들을 상봉하고 고향땅을 밟았기 때문이다.
나머지 1천만이산가족들은 오늘도 이북 5도청·1천만이산가족재회추진위원회등 요로에 『언제 또 고향방문단이 구성되느냐』며 조바심을 달래지 못하고 있다.<도성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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