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식의 야구노트] ‘발야구’ 고집하다 발목 잡힌 양상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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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김용희 SK 감독은 “최승준이 6월 MVP가 됐으면 좋겠다. 반전 스토리가 있는 선수”라고 말했다. 이재원·윤희상 등 다른 SK 선수들도 후보에 올랐지만 김 감독은 최승준을 공개적으로 밀었다. 결국 최승준은 6월 MVP를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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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는 지난해부터 LG와의 거래에서 큰 이득을 봤다. 지난해 LG에서 SK로 트레이드된 정의윤은 올해 타율 0.335, 17홈런을 기록 중이다. LG가 SK 포수 정상호를 4년간 32억원에 사들이며 보상선수로 내준 최승준은 타율 0.291, 19홈런을 기록 중이다. 이들이 여전히 LG에 있었다면 어땠을까. 지금처럼 맹활약을 펼칠 수 있었을까.

올해 “뛰는 야구, 세대 교체” 선언
최승준 등 거포 유망주 내보내
베테랑 빠지자 득점권 타율 꼴찌
도루 효과 못보며 7위까지 밀려

LG 팬들은 속이 쓰리다. LG만 떠나면 성공하는 선수들을 보고 배 아파하는 건 둘째 문제다. 팬들은 LG의 사장·단장과 코칭스태프가 적절한 방향을 설정했는지 의문을 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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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양상문 감독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세대 교체’와 함께 ‘뛰는 야구’를 선언했다. 베테랑 이병규(42·등번호 9)를 2군으로 보내고, 2차 드래프트에서 이진영을 kt에 내준 건 상징적인 조치였다. 올해 5월까지 그런대로 버티던 LG는 지난달 10승15패에 이어 이달엔 1승6패에 그치며 7위(승률 0.434)로 처졌다. 최하위 삼성과는 불과 1.5경기 차다.

현재 LG는 두 가지 목표를 모두 달성하지 못했다. 올해 LG의 1군 선수 평균 나이는 타자 29.9세, 투수 29.7세다. 지난해(타자 29.4세, 투수 29.3세)보다 평균 연령이 더 높아졌다. 외국인 히메네스와 베테랑 박용택·정성훈이 힘겹게 공격을 이끌고 있다. 새로 떠오르는 타자는 채은성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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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LG는 10개 팀 중 9번째로 많은 야수를 기용(경기당 13.22명)했고, 대타(134차례)도 가장 많이 냈다. 베테랑과 예비 거포들이 떠난 자리에 엇비슷한 선수들이 경쟁하면서 LG의 타선은 확연히 약해졌다. 팀 홈런 최하위(67개)는 각오했다고 해도 득점권 타율 최하위(0.271), 장타율 9위(0.415)는 설명할 길이 없다. 타고투저 시대에 도루의 실효성이 떨어지는데도 LG는 열심히 뛰고 있다. 그 결과 팀 도루는 2위(72개)지만 도루 실패는 공동 1위(39개)다.

백순길 LG 단장은 “서울 잠실 홈구장에서 장타를 때리긴 어렵다. LG도 두산처럼 빠른 야구를 해야 한다”고 말한다.

잠실구장은 1982년부터 35년 동안 그 자리에 있었다. 2010년 말부터 팀 운영을 책임지고 있는 백 단장은 지난해 말 급격한 변화를 시도했다. 이 와중에 LG의 팀 평균자책점은 2013년 1위(3.72)에서 올해 6위(5.37)로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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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는 2013년 정규시즌 2위에 올랐다. 2014년엔 4위를 차지했다. 당연히 우승을 목표로 삼아야 할 구단인데도 백 단장과 양 감독은 베테랑을 인위적으로 정리한 뒤 유망주들에게 출전 기회를 주고 있다. LG 팬들은 잠실 라이벌 두산이 ‘화수분 야구’로 성공하는 걸 보며 한숨을 쉰다. LG는 자연스런 세대 순환이 아닌 ‘교체를 위한 교체’를 선택한 것이 아닌가 의구심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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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감독은 지난달 21일 “여섯 살 어린이 팬들이 성인이 되기 전까지는 우승을 해야 하지 않겠나. 그게 감독의 책임”이라고 말했다. LG 팬들은 이 말에 더욱 큰 혼란과 실망을 느낀다. 1994년 마지막 우승 이후 LG 팬들은 22년을 기다렸다. 앞으로 14년을 더 기다리라는 말인가.

김식 야구팀장 see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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