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직한 사제관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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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누군가에게 지식을 전수하고 올바른 삶을 살아나가는 지혜를 가르쳐 주는 것은 참으로 보람있는 일이다.
(가)우리는 이런 일을 하시는 분을 선생님이라 부른다.
그러므로 학생은 선생님을 존정하고, 또 선생님은 학생을 자애롭게 돌봐주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요즘의 사제관계는 꼭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선생님이란 기술적으로 지식을 전수해주는 직업인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우리의 의식을 알게 모르게 점령하고 있다.
이렇게 사제관계가 메말라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대체로 두 가지로 압축해 볼 수 있다.
첫째는 스승과 제자 사이의 대화 단절이다.
우리나라는 한 학급당 인원수가 너무 많다.
학생과 선생님이 깊이 대화하고, 인생을 얘기하기는 고사하고 수업조차도 모든 학생이 이해할 수있게 해나가기 힘들다는 것을 자주 체험한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어찌 진정한 대화가 오갈수 있으며, 대화없는 스승과 제자간에 어찌 따뜻한 정이 흐르겠는가!
둘째로 들 수 있는 것은 교권외 추락이다.
자기 자식만 잘 봐주기를 바라는 일부 부모님들의 동물적인 사랑은 특정 학생의 편애를 야기시키고 이를 체험하는 학생들은 교사룰 불신하게 되며 교사들은 신성한 교권에의 사명감마저 잃게 된다.
그렇잖아도 메말라가는 현대사회에서 스승을 찾는 고귀한 마음마저 상실할 수는 없다.
(나)난 오늘의 사제관계를 기름지게 만드는 방법을 우리의 전통적 사회에서 ㈐모색한다.
우리 조상들은 「군사부일체」란 말을 통해 부모와 스승을 한 몸으로 여기는 그들의 생각을 단적으로 표현했다.
우리에게 생명과 사랑을 주시는분이 부모님이라면 ㈑우릴 인간답게 깨우쳐 주시는 분은 스승님이다.
이것을 간파하고 생활의지표로 삼아온 선인들의 슬기를 오늘날에 되살려서 각자의 가슴깊이 스승의 중요성과 고마움을 새겨야 한다.
그리고 정부는 수업량만 늘리는 편파적인 교육 방침을 지양하고 학급당 인원수를 줄여 스승과제자가 많은 대화를 할 수 있게하며, 그렇게하는 중에 학생들이 자신의 인격을 연마할 수 있게해야 한다.
학생들이 선생님을 존경하고 고마와하는 마음을 가지며, 선생님은 이 나라의 주인공을 길러낸다는 사명감으로 열심히 학생들을 이끌고, 정부는 올바른 교육방침으로 이들을 밀어주고 도와준다면 스승은 제자의, 제자는스승의 인생의 소중한 동반자가 될것이라 확신한다.

<박영정|><서울영등포동>
우리는 거의 모든 지식을 학교에서 얻고 있다.
그러나 웃어른에 대한 예절이나 도덕등 여러가지 인격을 도야하는데 있어서 필요한 것들은 만족스러울만큼 얻지 못하는바 ㈎다대하다.
진정한 학교교육이라는 것은 지식의 전달보다는 ㈏인적과 정신교육의 전달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다)선생은 따뜻한 보살핌으로 제자들에게 올바른 사고방식을 가질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하며, 제자들은 ㈑선생의 좋은 점을 찾아내 그것을 본받으러 애써야 한다고 믿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잘 이루어지지 못하는 것은 자그마치 열일곱 과목이나 되는 방대한 교과서의 양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게다가 소위 「명문대학」이란 곳에 많은 제자들을 보내야 하는㈒선생의 고충과 좀더 많은 지식으로 좀더 좋은 대학에 진학하고자 하는 학생들의 갈등도 분명 그것을 저해하는 요소가되고 있다.
이런 상태에서는 절대로 사제간의 정 같은 것은 피어날 수 없고, 오히려 서로간의 믿지 못하는 마음만이 가중될 따름이다.
그러나 스승은 제자를, 제자는 스승을 하나의 (바)유기체로 보지않고 친자식이나 부모님과 같이 생각한다면 분명 좋은 관계를 가질 수 있으리라 본다.
예로부터 스승은 부모님과 같이 여겼었다.
물론 오늘날도 마찬가지여야 되겠지만….
그러기에 ㈔군사부일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러므로 제자는 스승을 내 아버님처럼, 어머님처럼 여기고 따르며, 스승은 제자를 선배의 입장에서, 때로는 부모님의입장에서 가르치고 보살핀다면 어찌 바람직한 스승과 제자의 관계가 성립되지 않을 수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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