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열한 작은 전쟁 ‘땅값 흥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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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렛츠고시골기자]

성공적인 땅 구매의 핵심은 좋은 땅을 싸게 사는 것이다. 이때 저평가돼 있는 매물을 골라내는 선구안도 중요하지만 시세보다 얼마나 싸게 사느냐에 따라 수익률이 크게 달라지기도 한다.

잘 알다시피 땅값에는 정가가 없다. 아파트와는 달리 대개 부르는 게 값이 된다. 경우에 따라서는 매도 호가(부르는 값)와 매수 호가 사이에 2배 이상 차이가 나기도 한다.

따라서 흥정 자체를 얼마나 기술적으로 잘 하느냐에 따라 땅 구매의 성패가 좌우되는 경우가 많다. 거래당사자의 노력 여하에 따라 땅값이 싸게도, 비싸게도 매겨질 수 있는 때문이다. 때로는 치열한 심리전도 불사해야 한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최근 급매물로 나온 땅값은 대개 고정가격이 아닌 흥정가격”이라며 “흥정 여하에 따라 땅값이 1000만∼2000만원 정도 빠지는 것은 예사”라고 말했다.

물론 땅값 흥정에서 부동산중개업자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어떤 때는 땅값이 매도인이나 매수인이 아니라 현지 부동산중개업소에 의해 결정되기도 한다. 유능한 중개인은 매도자와 매수자의 입장에서 서로 손해 봤다는 생각이 들지 않도록 거간을 선다. 때문에 흥정에 자신이 없을 때는 믿을 만한 중개업에 의지하는 것도 괜찮다.

하지만 거래 당사자가 아닌 중개업자의 역할에는 어느 정도 한계가 있다. 어차피 땅을 팔 사람은 매도자이고, 돈을 지불할 사람은 매수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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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OK시골 www.oksigol.com

땅값 흥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누가 흥정의 주도권을 쥐느냐에 있다. 대개 팔 사람의 상황이 급하게 되면 가격이 내려가고, 반대로 살 사람 사정이 급하게 되면 올라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매수자 입장에서는 이와 같은 상황을 십분 활용해 흥정에 임하는 게 좋다. 매도자를 대리하는 중개업자에게 은근히 지금이라도 당장 땅을 계약할 수 있는 자금을 호주머니에 보유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는 것도 괜찮다.

급매물일 경우 대개 매수자가 흥정의 주도권을 쥐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 시세보다 20∼30% 정도 깎는 것을 목표로 흥정에 임한다. 매도자의 호가에는 원래 흥정을 염두에 두고 얹어둔 금액이 있는데 그것이 대략 전체 매매가의 5∼10% 정도다. 이것을 걷어낸 금액이 진짜로 매도자가 받고 싶은 금액이다. 이점을 감안하면 주변 시세와 비교해서 최소한 20% 이상 호가가 떨어졌다면 손해 볼 일은 없다.

땅값을 깎는데 중도금과 잔금의 지급 시점도 적극 활용한다. 대개 급매물로 나온 땅의 매입조건은 계약서 작성 후 한달 이내 잔금 지급방식이 보통이다. 때문에 이보다 잔금 지급시점을 단축하거나 일시불로 지급하면 그만큼 더 땅값을 깍을 수 있다.

가격을 대폭 낮추고 싶다면 일시불 거래를 시도해볼 만하다. 일시불 거래란 계약할 때 중도금과 잔금을 한꺼번에 지급하는 것으로 리스크가 높은 급매물을 대상으로 많이 이루어진다. 가격 흥정의 폭이 워낙 넓어 ‘실탄’이 넉넉한 고수들이 가끔 활용한다. 한동안 제한적으로 이뤄졌으나 최근 땅값 하락과 매매중단 여파로 급매물이 쏟아지면서 확산되는 추세다. 가격을 30% 이하로 낮출 수 있는 반면 매물에 근저당, 가압류 등이 설정돼 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주의를 요한다.

잔금 지급시점을 단축하는 방법으로 땅값을 흥정할 때 이자비용을 적극 활용하기도 한다. 만약 은행금리가 6%라면 잔금 지급시기를 한달 단축할 경우 그만큼을 기회비용으로 계산해 땅값을 깎는다. 예컨대 한달 후 지급하기로 한 잔금 10억원을 열흘 앞당겨 지급한다면 그 기간에 해당하는 만큼의 이자 200여만원을 땅값에서 빼는 것이다.

땅값 흥정은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전술을 달리해 임하는 게 좋다. 만약 침체기라면 매수세가 급감한 시장상황을 적극 활용해 흥정에 임한다. 아울러 은근히 친지 등도 인근 땅을 사려한다는 말을 흘리기도 한다. 사정이 여의치 않을 경우 슬쩍 ‘차라리 다른 급매물을 기다리겠다’는 말도 해본다.

매입하려는 땅의 흠결도 가격을 깎는데 적극 활용한다. 예를 들어 부지의 일부가 경사도가 30%(17.5°)이상이라면 이 면적만큼 땅값을 깎는다. 대개 경사도가 30% 이상이면 개발행위허가를 내기가 쉽지 않아 활용가치가 크게 떨어지기 때문이다.

진입로 상황이 좋지 않거나, 경사도가 심하거나, 땅모양이 정방형이 아닌 경우에도 흠결 있는 땅으로 간주해 인근시세보다 낮은 가격에 흥정을 붙인다. 직접 흥정을 붙이기가 어려우면 현지 이장 등에게 중개를 부탁해 매매조건을 맞춰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가격은 인근지역 거래사례를 기준으로 한다.

은행금리 등 금융상품의 수익률 변동상황도 그때그때 적절히 활용한다. 수신금리가 낮으면 매도자 입장에서 급할 것이 없다. 땅 판 돈을 은행에 넣어둬도 이자소득이 신통치가 않은 때문이다. 반면 저금리를 활용한 적극적인 투자를 고려하는 매수자 입장에서는 조금 더 주고라도 땅을 매입하려 든다. 이러면 결국 땅값이 오를 수밖에 없다. 결국 저금리에는 부동 자금이 발생해 호가가 오르기 때문에 흥정이 여의치 않다.

결국 땅값 흥정의 주도권은 누가 정확히 상대의 허점을 더 알고 있는가, 미래가치 평가에 대한 안목이 있는가 없는가, 일시불인가 정상거래인가 등에 따라서 결정된다고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팔아도 그만, 안 팔아도 그만’인 땅 주인은 쉽게 가격을 낮추지 않는다. 또 해당 토지가 도시계획 등 변경으로 녹지지역에서 2종 주거지역으로 변할 것이라는 정보를 까맣게 모른 채 흥정에 나서는 쪽보다는 정확히 알고 공략하는 쪽이 거래에서 유리하다는 것은 불문가지다.

어쨌든 땅값에는 정해진 가격이 없다. 흥정하기 나름인 것이다. 이점을 염두에 두고 시장 상황이나 매입하려는 땅의 장단점을 정확히 파악한 다음 흥정에 나선다면 적어도 바가지를 쓰는 일은 없다. 다만 상대방과 게임을 하는 것처럼 즐기듯,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상대방이 왜 땅을 팔려고 하는지 이유를 정확히 파악해 본다. 땅값을 아무리 깎아도 화를 내지 않는 사람의 땅은 바로 사면 안 된다. 정상적인 매물이 아닐 가능성이 큰 때문이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땅 거래에서는 가격을 결정하는 여러 가지 변수를 치밀하게 고려한 후 흥정에 나서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거래시기에서부터 매도나 매수기간, 은행금리, 개발계획, 흥정주도권이 누구에게 있느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측면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김영태 기자 neodelhi@joonh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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