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권독립 주어지는 것 아니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명쾌한 이론구성과 명판결로 「사법부의 얼굴」 「정신적기둥」으로 불려온 이일규수석대법원판사(65)가 14일 12년8개월간의 대법원판사등 34년간의 법관생활을 마치고 정년퇴임한다.
모든 법조인들의 아쉬움속에 법복을 벗게된 이대법원판사가 외길로 걸어온 34년은 우리나라 사법사상 법관최장수기록이다.
대쪽같은 선비기질로 후배법관들은 그의 고향사투리대로 별명을 「통영 대꼬챙이」라고 불였다.
성격대로 그의 판결문은「통탄해 마지않는다」는등 시원시원하고 독특하다. 또 법이론으로는 절대로 소신을 굽히지 않아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누구보다도 소수의견을 많이냈고 혼자서 소수의견을 낸 것도 여러번이었다.
이때문에 대법원판사중 원심을 파기하는 일이 가장 많았고 후배법관들은 자신이 판결한 이론이 대법원에서 이대법원판사에 의해 받아들여지면 가장 흐뭇해하고 자부심을 가질 정도였다. 또 법원일반직원들도 그를 「살아있는 판례집」이라며 존경했고, 변호사들도 이대법원판사의 판결이론에는 불만을 나타낸 적이 없었다.
-그동안 법관으로서의 신념은.
▲매화의 「편의설이 부쟁춘」(혼자 눈속을 좋아해 다른 꽃과 봄을 다투지 않는다)이란 글귀를 새겨두고 살았읍니다. 공정한 재판을 위해 좋은 말이지요.
-고통스러웠던 때는.
▲유신시절 주요한 법들이 자주 바뀌어 법률 배운 사람들이 권력의 시녀노릇하는게 아닌가하는 느낌이 들때였어요. 그때는 법률공부 한 것을 후회했었어요. 젊은시절 고법판사때 한달 봉급이 쌀 2말이어서 곤궁때문에 사표를 생각한 적도 있었지만 .
-최근의 법관인사파동에 대해서는.
▲법관의 공정한 인사를 보장하기 위해 법관인사위원회같은 제도적 장치가 필요합니다.
-상고허가제도가 말썽이 되고 있는데.
▲좋은 제도는 아닙니다. 허가를 거치는 것은 2중재판인 셈이지요. 요건만 제한하고 허가절차없이 바로 심리하도록 해야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가 침해받지 않습니다.
-최근 사법부가 많이 위축되어 있고 사법권독립이 거론되고 있는데.
▲사법권독립은 외부기관이나 인사가 갖다주거나 보장하는게 아니지요. 법원·법관스스로가 확보하고 고수해야합니다. 헌법위원회가 갖고있는 위헌심사권도 대법원이 찾아와야 하고…(노법관은 사법권독립에 관해서는 특히 단호한 어조였다).
-판결하신 사건중 특히 공안사건등에 대해 「금기」를 깨고 원심을 파기한 사건이 많아 관계당국에서 골머리를 앓아왔지 않습니까.
▲너무 고지식하고 세상물정 모른다는 말을 가끔 들었지요. 다 지나간 일인데 .판결내용에 대해서는 추호의 후회가 없읍니다. 고목사 사건도 그렇게 세상이 시끄러울 줄은 몰랐어요. (76년3월 고영근목사의 긴급조치 위반사건때 고목사는 『일반인은 묘지를 4평만 쓰라고 해놓고 육영수여사 묘지는 왜2천평을 했느냐. 양주 30억원어치를 수입했는데 유신주역들이 먹지 누가 먹느냐』 고 설교한 것이 말썽이 돼 구속기소 됐으나 이대법원판사가 『사실을 왜곡했다고 인정할 증거가 없고 대부분 보도된 내용』 이란 이유로 상고심에서 무죄취지의 판결을 내리자 관계당국에서 크게 당황했었다).
-소수의견도 가장 많으셨는데.
▲법이론에 관한한 소신을 못굽히는 고집쟁이가 돼서 .(그는 민청학련사건 김철기씨 국가모독죄사건 박세경변호사 계엄포고령위반사건등 큼직한 공안사건에 서슴없이 소수의견을 냈었다) .
-후배법관들에게 들려줄 말씀은.
▲저는 국민학교 5학년때 연극을 보던증 무고한 피고인을 위해 열변을 토하던 변호사에게 감동돼 법관이 되었어요. 명리를 생각지 말고 부귀를 염두에 두지 않으면 좋은 법관이 됩니다. 저는 다시 태어나도 법관을 하겠읍니다. (그의 결벽증이 가까울 정도의 청렴은 이미 법조계에 잘 알려진 사실이다).
-앞으로의 계획은.
▲3개월쯤 쉰 뒤 변호사개업을 하렵니다. (노법관은 기록과 씨름하느라 특히 시력이 나빠졌다며 돋보기를 애정어린 눈으로 자꾸만 만졌다. 서울고법의 이창구판사가2남). <김일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