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과 꿈의 세계가 한화폭에|3백90년만에 돌아오는 안견의『몽유도원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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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몽유도도』는 l447년(세종29년)안견이 세종대왕의 셋째아들 안평대군(이용·1418∼1453)의 꿈이야기를 듣고 비단에 담채로 그린 회심의 걸작이다.
송설체(조맹퇴 서체)의 대가인 명필 안평대군은 『몽유도원도』에 자필로『세종 29년 4월20일 한밤중에 홀연히 전개되는 도원경에서 박팽년과 더불어 청유한 꿈속의 시경을 소상하게 적고, 그꿈이야기를 줄거리로 하여 안견으로 하여금 이그림을 제작케 했다』는 사유를 써 놓았다.
이그림은 그리 크다할수 없는 횡축(38.7×106.5cm)이었으나 안평대군의 제발(38.7×44.6cm)을 비롯, 박팽년·성삼문·김종서·신숙주·이적·이개·최항·하연·송처관·윤자운·김염·이예·고득종·이현노·강석덕·서거정·정인지·박연·김수온·최상등 당대에 제일가는 문인·묵객·학자·명신등 20여명이 시문과서의 역량을 다룬 자필발기가 붙어 있어 큰 그림책을 이루고있다.
『몽유도원도』는 조선시대초기의 회화사료로나 서예사상 제1급에 속하는 명품으로 꼽힌다. 뿐만아니라 조선시대 새문화건설에 대들보 구실을 한학자·명신·문사들이 한 도권 위에서 그재능을 겨루었다는 점이 무엇보다 값진것으로 평가된다.
다만 이렇듯 훌륭한 그림이 국내에 보관되어있지 못한점은 못내 아쉬운일이다.
국내학계는 이그림이 임신왜란때 일본에 유출된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런점에서 볼때 일본천리대 도서관에 소장된 『몽유도원도』를 내년 국립중앙박물관 이전 개관전에 가져오는것은 매우 뜻있는 일이 아닐수없다.
이그림을 그린 작가 안견(생몰년대 미상)은 세종·문종때의 화가. 본관은 지곡, 자는 가도, 호는 현동자다.
도화저 화원으로 안평대군과 가까이 지내면서 그의 중국화 수집영향을 받아 사계의 경관 변화, 구름출몰에 의한 산수의 변화를 잘 묘사한 곽희화풍의 그림을 잘 그렸다.
안견은 조선초기의 대표적산수화가.
중국의 이곽파와 곽희화풍을 수용하여 독자적인 세계를 형성했다.
사흘만에 완성한 그의 대표작 『몽유도원도』는 왼쪽에 자연스런 현실세계와 오른쪽에 환상적인 도원의 세계가 뚜렷한 대조를 보이고있다.
왼쪽에 치우친 현실세계의 산들이 나지막하고 부드러운데 비하여 도원을 둘러싼 암산들은 끝없이 다양하고 환상적이다.
이같은 대조적인 두요소의 결합이 극도의 환상적 느낌을 자아내고있다.
안휘회박사(서울대교수)는 「몽유도원도」의 특색은 서로다른 시각의 적용과 넓은 공간에 대한 관심으로 왼쪽 반은 정면에서 본것으로 ,오른쪽반은 높은곳에서 내려다본 조철도법으로 그렸다』고 높이 평가한다. <이규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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