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노조위원장 '예우' 과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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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조흥은행 등 공적자금을 받은 은행들이 노조 전임자에게 지나치게 후한 대접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은행은 실형을 선고받고 강제 퇴직당한 이용득 금융산업노조 위원장을 지난 5월 다시 채용한 것으로 최근 밝혀졌다.

은행 측은 李위원장의 노조원 자격을 유지하기 위해 4급(과장.차장급)으로 발령내고 급여는 입행 동기들과 같은 수준인 3급(부부장급)으로 지급하고 있다. 3급과 4급은 연봉에서 1천만원 정도 차이가 난다.

은행 측은 또 李씨가 1999년 금융노조 위원장에 취임했을 때부터 제공하던 중형 승용차와 기사를 퇴직 후에도 계속 제공해 왔다. 차종은 대우 브로엄이었으나 李씨가 차량이 낡았다며 교체를 요구하자 지난달 초 르노삼성의 SM525로 바꿔줬다.

李위원장은 2000년 12월 국민.주택은행 파업을 주도한 혐의로 구속돼 2001년 대법원에서 징역 1년, 자격정지 2년형을 받아 강제 퇴직당했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17일 "李위원장이 지난 4월 복권돼 5월 말 정규 직원으로 재채용했다"고 설명했다.

李위원장은 최근 복직 후 은행 업무는 보지 않고 상급단체 상근자로 금융노조에 파견되는 방식으로 금융노조 위원장직을 수행하고 있다. 이에 대해 그는 "거액의 예금을 유치하거나 다른 여러가지 방법으로 은행에 기여하고 있어 은행 업무를 전혀 하지 않는다고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우리은행 이덕훈 행장은 "법률 자문 결과 李위원장을 반드시 재채용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하려면 할 수 있다는 결론이 나왔다"며 "李위원장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그가 잠시 징역을 살면서 은행을 떠났을 때에도 직원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남순 한국노총 위원장도 조흥은행 직원 신분을 유지하면서 은행에서 월급과 함께 다이너스티 승용차와 기사를 제공받고 있다.

우리은행은 현 노조 위원장에게도 임원급에 준해 중형 승용차와 기사를 제공하고 있으며 국민.하나.신한.한미은행 등은 기사 없이 중형 승용차만 지원하고 있다.

금융계 관계자는 "공적자금을 받은 은행들이 직원들에게는 월급을 몇년씩 동결하는 등 뼈를 깎는 자구노력을 하도록 해놓고 대신 노조 전임자들에게는 후한 대접을 한 것은 도덕적으로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남성일(서강대 경제학)교수는 "회사가 노조 전임자에게 임금이나 승용차 등 각종 혜택을 주는 것은 시급히 없어져야 할 악습"이라며 "노조는 노조원들의 회비로 운영돼야 마땅하며 사용자에게 비용을 떠넘기는 것은 부당 노동행위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주정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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