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한쪽이 확실한 우위 차지해야 ‘MSM 동맹’ 성사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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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6호 6 면

유승민 의원의 복당에 따라 김무성·최경환 등 새누리당 내 거물들의 거취도 주목받고 있다. 지난달 20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만난 김·유 의원(왼쪽 사진)과 22일 본회의장에 들어서는 최 의원. 조문규 기자, [뉴시스]

꼭 1년 만이다. 돌고 돌아 그가 또 중심에 섰다. 지난달 16일 복당 이후 새누리당 ‘태풍의 눈’이 된 유승민 의원 이야기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배신의 아이콘’으로 낙인찍힌 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며 원내대표직에서 물러난 게 지난해 7월 8일. 그는 4·13 총선에서 무소속으로 살아남았고 공언한 대로 기어이 복당에 성공했다.


친정으로 돌아온 그에게 당내 비박계는 구심점 역할을 기대한다. 그가 맡을 구체적인 역할을 두고는 “8월 9일 전당대회에서 비박계 대표선수로 당권에 도전해야 한다” “대표가 아니라 대권을 노려야 한다”로 의견이 갈린다. 그의 선택은 어느 쪽일까. 한때 순망치한(脣亡齒寒·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 서로 떨어질 수 없는 밀접한 관계)으로 불렸던 김무성 전 대표와의 관계도 그의 선택에 따라 달라진다. 유 의원과 대구·경북(TK) 지역 맹주 자리를 다투는 친박계 핵심 최경환 의원이 전당대회에 출마하고 유 의원이 비박계 대표로 맞대결을 벌이는 최고의 흥행카드를 기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유승민 “모든 가능성 열려 있다”유 의원과 가까운 이혜훈 의원은 “당권·대권 분리 규정(대선 전 1년6개월 안에 선출되는 대표는 대선에 출마할 수 없다는 내용)이 아직도 유효한 만큼 대권주자(유 의원)는 대선으로 가는 게 맞다”고 말했다. 이미 당권 도전을 선언한 비박계 김용태 의원은 “유 의원을 만났더니 본인은 당권 도전을 고사하며 (나에게) 열심히 해보라는 덕담을 해줬다”고 말했다. 비박계 내에선 이처럼 그가 당권이 아닌 대권 도전을 이미 결심했다는 얘기가 흘러나온다. 하지만 정작 유 의원 본인은 아무 말이 없다. 그는 복당 후 언론 인터뷰를 고사하며 ‘무위(無爲)’ 기조를 이어가고 있다. “식사 약속도 잘 잡지 않는다. 어떤 식으로든 의미가 부여되고 해석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지 않고 있다”는 게 유 의원 주변의 전언이다. 최근엔 집안 사정으로 계획됐던 일정마저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고 있다는 그를 지난달 22일과 30일 국회에서 따로 만났다.


-전대에 출마하나.“아직 거기까지 생각을 안 해봤고 직접적으로 저한테 그런(출마하라는) 얘기를 한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다.”


-내년 대선을 위해 대표 선거엔 출마하지 않는다는 얘기도 나온다.“다른 의원들(이혜훈과 김용태 등)의 얘기일 뿐이다.”


-아직은 어떤 가능성도 열려 있다는 것인가.“… 그렇다.”


-친박계 인사들은 의원총회에서 과거 국회법 논란이나 정체성 논란에 대해 사과하거나 입장을 밝히라고 요구한다.“복당을 했으니 의총에서 인사를 하는 건 당연하다. 자연스럽게 소회나 각오를 밝히는 인사를 하겠다. 그런(입장 표명) 요구에 대해선 직접적으로 전달받은 바도 없고 그럴 필요도 못 느낀다.”


-전당대회를 계기로 당이 어떻게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하나.“그런 얘기는 (요즘) 하지 않는다.”


그와 가까운 한 인사는 “유 의원은 당권·대권 분리 규정이 해소되지 않으면 대표에 출마할 생각이 없는 것으로 안다. 다만 아직은 본인의 의중을 드러낼 때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유 의원과 김무성 전 대표의 관계는 비박계뿐만 아니라 새누리당의 전체 지형을 좌우할 변수다. 당 대표와 원내대표를 함께 맡았던 두 사람은 지난해 전반기까지 ‘K-Y라인’으로 불렸다. 비박계의 두 기둥이었다. 하지만 김 전 대표는 지난해 여름 국회법 파동 때 청와대와 친박계로부터 유 의원을 지켜내지 못했다. 공천 과정에서도 “친박계에 끌려다니며 유승민계에 대한 공천학살을 모른 체 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막판 ‘옥새 파동’으로 겨우 유 의원에게 성의 표시를 했지만 순망치한의 관계엔 분명 금이 갔다. 그리고 총선 뒤 두 사람의 우열은 역전됐다. 상당수 대선 후보 지지율 순위에서 유 의원이 김 전 대표를 앞서고 있다.


유승민처럼 중도론 펴기 시작하는 김무성유 의원과 달리 김 전 대표는 이미 대선을 향한 적극적 행보에 돌입했다. 공교롭게도 유 의원의 복당 다음날인 지난달 17일 지역구(부산 영도) 내 한진중공업을 방문해 공개 활동을 재개했다. 여성 의원들의 오찬 모임에 깜짝 등장했고 가까운 의원들과 서울 시내 맛집도 돌고 있다.


그가 꺼낸 키워드는 ‘중도론’이다. 지난달 19일 경남 함양의 부친 묘소 앞에선 “새누리당은 선거 때마다 ‘집토끼’(고정 지지층) 생각만 하고 과거에 함몰되는 등 너무 극우적인 이념을 갖고 있다”고 비판했고 28일 여야 의원모임인 ‘한국적 제3의 길’ 창립 기념 정운찬 전 총리 초청강연에 참석해 “‘제3의 길’과 동반성장에 대해 관심을 갖고 공부를 하고 있다”고 했다.


한때 보수의 아이콘을 자임하기도 했던 김 전 대표가 유 의원이 그간 주장해 온 중도로 전략적 방향 전환을 꾀하는 데 대해 유 의원은 중앙SUNDAY에 “보수를 버리는 게 아니라 지키면서 중도 쪽으로 외연을 확대하자는 말씀에 적극 찬성하고 같이 가야 한다고 본다”고 했다.


두 사람이 한 배를 타는 ‘MSM(무성+승민) 동맹’ 가능성에 대해 비박계 이혜훈 의원은 “둘은 대체재라기보다 보완재적인 성격이 강해 힘을 합하면 드림팀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동관 전 청와대 홍보수석도 “당내 다수를 차지한 친박계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란 강력한 카드를 꺼내려 하는 상황에서 분열하면 둘 다 죽는다는 게 명확한 만큼 두 사람은 결합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걸림돌도 분명히 있다. 먼저 두 사람의 역할 분담 문제다. 어차피 내년이 처음이자 마지막 대권 도전이 될 김 전 대표 측에선 ‘김무성 대권, 유승민 당권’의 그림을 그린다. 김 전 대표계 의원들은 “유 의원은 어차피 이번이 아니라 차차기 아니냐”는 말을 공공연하게 한다. 반면 유 의원을 지지하는 이들은 “김 전 대표는 총선에서 너무 큰 상처를 입어 대권주자로서 경쟁력이 없다”고 말한다. 반 총장이든 누구든 친박계 지지 후보와 맞설 비박계 후보 한 자리를 놓고 두 사람 간 경쟁이 불가피하다는 분석이 많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동맹은 역할이 분담돼야 하고 이긴다는 확신이 있어야 성립한다. 그런데 둘 다 대선에 출마하려 하면 역할 분담이 안 되는 것이고 지지율이 추락한 김 전 대표와 경쟁력이 입증 안 된 유 의원 모두 경선에서 승리를 보증할 수 없기 때문에 동맹의 조건을 충족하지 못한다”고 했다. 민간 정치 싱크탱크 ‘더모아’의 윤태곤 정치분석실장은 “현재 유 의원은 당권이든 대권이든 어떤 선택을 해도 손해 볼 게 없는 상황이지만 김 전 대표는 대권밖에 생각할 수 없는 처지다. 운신의 폭이 좁은 김 전 대표가 아쉬울 수밖에 없는 입장의 차이가 존재한다”고 했다.


그래선지 김 전 대표는 유독 유 의원과의 관계에 대해선 말을 아꼈다. 지난달 30일 오전 여의도 자택 앞에서 김 전 대표를 만났다.


-유 의원 복당 후 따로 만나거나 대화 했나.“전화 통화도 한 적 없다.”


-두 사람이 힘을 합쳐야 한다고 보나.“(유 의원이) 전대 출마는 안 한다고 하지 않았나. 연락도 안 했다.”


-전대와 내년 대선에 어떤 복안이 있나.“내가 생각이 있어도 지금 여기서 말을 할 수 있겠나.”


그의 한 측근 인사는 “유 의원이 대선 출마로 가닥을 잡으면 김 전 대표는 그를 경쟁자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 김 전 대표 입장에선 늘 자신의 아래로 생각하던 유 의원이 앞서가는 현 상황이 불편하다”고 전했다. 김 전 대표와 가까운 이원종 전 청와대 정무수석은 “두 사람 모두 대권 욕망이 강해 경쟁할 수밖에 없다. (김 전 대표 측 희망처럼) 유 의원이 ‘김무성 대통령’을 만들기 위해 당 대표를 하려 하겠나. 일단 경쟁하고 나서 우열이 확연해진 뒤에야 연대에 대한 의지가 강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와 관련해 유 의원과 가까운 한 중진 의원은 익명을 전제로 “김 전 대표가 전국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조직력과 산전수전을 다 겪은 정치적 경험을 바탕으로 유 의원이 내세우는 중도보수의 시대정신을 뒷받침하는 킹메이커로 나선다면 강력한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김무성에겐 최경환이 더 좋은 파트너”새누리당 내에선 “김무성과 유승민 두 사람이 손을 못 잡도록 친박계가 총력 견제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최근 당 안팎에서 떠돌았던 ‘김무성 대권, 최경환 당권 밀약설’도 같은 맥락이다. 친박계로선 ‘주적(主敵)’인 유 의원이 당권이나 대권 티켓을 잡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막아야 한다. 김 전 대표 입장에선 대권 욕심이 없고 친박계의 선택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미치는 최 의원 쪽이 유 의원보다 대권 가도에선 더 좋은 파트너가 될 수 있다. 두 사람이 어떤 식으로든 협력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얽히고설킨 세 사람의 실타래는 어떻게 풀릴 것인가. 첫 관건은 현재 최경환 의원이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있는 전당대회 대표 출마 여부다. 최 의원이 출마해 총선 패배 책임론을 정면 돌파해야 한다는 주장이 친박계 내부에 우세한 가운데 최 의원은 조만간 고민의 결론을 공개할 예정이다.


만약 최 의원이 출마를 결심한다면 유 의원이 그 대항마로 출격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비박계에서 최 의원에 대적할 인물은 유 의원밖에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면 유 의원에 대한 출마 압박이 거세지리란 예상이다. 최경환 대 유승민의 빅카드가 성사될 경우 ‘어차피 이겨야 본전’인 최 의원과 지더라도 대선 도전의 기회가 남아 있는 유 의원 간에 예측불허의 접전이 펼쳐지리라는 전망이 나온다.


한편 대표 출마 의사를 누차 밝혀온 현 정부 해수부 장관 출신 5선의 이주영 의원은 3일 오전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대표 출마를 공식 선언한다. 친박계인 그의 출마 선언이 최 의원의 선택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이충형·추인영 기자 adch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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