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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오염, 왜 해결되지 않을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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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6호 30면

1988년의 어느 날, 농악대의 선두에서나 볼 수 있던 긴 장대에 ‘농자천하지대본’ 대신에 ‘무석무탄(無石無彈)’ 이라는 말이 등장했다. 그 다음날 학생들이 장대를 들고 나타났다. 이번엔 ‘무탄무석(無彈無石)’ 이다. 돌을 던지지 않으면 쏘지 않겠다는 것이 경찰의 입장이었고, 쏘지 않으면 돌을 던지지 않겠는 게 학생들의 이야기였다. 올림픽을 유치했지만 서울의 대기오염을 두고 국제적인 우려가 제기됐었다. 특단의 대책이 필요했다. 최루탄 발사와 시위를 자제하자는 장대의 등장뿐만 아니라 고강도의 대기오염 방지조치들이 취해진다.


1985년 온산병이라고 부르는 공해병이 발생했다. 온산 지역은 비철금속 산업단지가 조성된 지역이다. 그런데 대기·수질·토양오염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환경오염이 위험수위를 넘어선 것이다. 피해자는 인근에 사는 근로자와 그 가족들이었다. 온산병은 환경오염 문제를 넘어 노동운동의 중요 이슈가 되었다. 정부는 온산병 발병 이듬해 당시 환경보전법에 대폭 강화된 환경규제를 포함시켰다.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다양한 이해관계가 충돌하기 때문이다. 과거의 경험에서 볼 수 있듯이 올림픽 또는 심각한 공해병처럼 중요한 계기가 있는 경우에는 짧은 시간 내에 새로운 제도가 큰 반대 없이 정착된다. 시민의 열망과 분노가 모든 것을 압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사정이 달라진다. 각자의 이익들 사이에서 지루한 공방이 이루어지고 똑 부러지는 대책이 나오기 힘들다.


미세먼지가 위험수위에 이르렀다. 미국 예일대와 컬럼비아대 공동연구팀이 발표한 ‘환경성과지수 2016’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초미세먼지 오염도는 조사대상 180개국 중 174위에 그치고 있다. 이 같은 결과는 위성자료를 통한 추정치라는 점에서 반드시 옳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 상공에서 진행 중인 NASA의 연구는 먼지를 직접 포집한다. 진행 중인 연구의 대체적 결과에 따르면 미세먼지 문제가 실제로 심각하고, 그 요인도 상당 부분 국내에서 발견되고 있다고 한다. 미세먼지의 주요한 원인이 중국발 황사인 것은 맞다. 세계의 공장이라 불리는 중국의 대기오염은 인도와 함께 세계 최고 수준이다. 동북아 환경 협력기구들이 있지만 중국발 미세먼지는 중국의 적극적 협조 없이는 해결이 어려운 과제다. 국내 미세먼지의 주요 원인은 발전소와 공장 그리고 경유차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반적 견해다.


최근 정부가 대책을 발표했다. 친환경차의 보급, 기존 노후 발전소의 폐쇄, 가동 중인 발전소의 성능 개선, 산업부문 배출규제 강화, 클린 신산업 육성 등이 나열되었다. 경유가격의 세금이나 부담금을 부가하는 것은 서민부담을 이유로 채택되지 않았다. 그런데 대책에 들어있는 제도들도 구체적 실현과정에서는 어려움이 많아 보인다. 발전부문에서는 전력 공급단가와 전력 수급 계획을 고려해야 한다. 제조업 가격경쟁력 약화와 물가상승의 원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원자력의 확대는 위험성이 크다는 이유로 반대가 많다. LNG의 활용 정도가 비교적 가능한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으나 원가가 비싸다. 신재생에너지 개발도 경제성 때문에 주춤하고 있다. 미래 전략으로서 에너지 로드맵이 만들어져야 하는 상황이다.


디젤에 언제부터인가 클린이라는 말이 붙었다. 그리고 정책적으로 보급이 확대되었다. 그러나 클린 디젤은 실험실에서만 존재했다는 것이 밝혀지고 있다. 클린 디젤이 조문화되어 있는 친환경자동차의 개발 및 보급촉진에 관한 법률이 만들어질 당시 업계의 입법 로비가 있었다는 의혹이 보도되고 있다. 정부의 미세먼지 정책도 실패에 가깝다. 환경부만의 문제는 아니다. 기획재정부·산업통상자원부·국토교통부 등 각 부처의 셈법도 각기 달라, 통합적 정책 추진 역시 어렵다. 통합이 어려운 이유는 각 부처가 가지는 목표가 다르기 때문이다. 각자 열심히 하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이들 정책을 조화시키는 컨트롤 타워가 잘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환경기술이 발전되면 오염을 크게 줄여줄 것으로 안이하게 생각했던 면도 일조했다.


외국 자동차 회사의 배기가스 장치 조작 의혹이 터졌을 때 우리의 대응은 미국의 경우와 대비되었다. 미국은 조사 단계부터 판매금지 조치를 취했다. 우리나라에서는 해당 자동차 회사의 할인 판매 행사가 있었다. 미국은 엄청난 금액의 징벌적 과징금을 무기로 소비자에 대한 보상을 이끌어냈다. 한국의 자동차관리법상 과징금 상한은 당시 10억원에 불과했다. 최근 법 개정으로 겨우 100억원으로 늘어났을 뿐이다. 규제가 강하면 사적 책임이 약해진다. 사전 통제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반대로 규제가 약하면 사적 책임이 무거운 것이 일반적이다. 그것이 규제와 사적 책임 간 균형 원리다. 그러나 우리는 규제도 못하고 책임도 제대로 묻지 못했다.


시민들도 이제 개인의 이익을 조금 접어야 한다. 배기가스 조작 의혹을 일으킨 자동차 회사에서 할인 마케팅을 하자 매출이 크게 늘었다. 건강한 사회라면 불매운동이 벌어졌을 것이다. 경유차가 원인 중 하나라는 것을 안 이상 경유차에 가해지는 불이익을 피할 수는 없다. 공회전 자제 등 시민 스스로가 일상에서 행할 수 있는 노력도 기울여야 한다.


보다 풍족한 사회에서 살기를 원하면서 환경오염은 무조건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은 성립할 수 없는 조합과 같다. 어느 정도의 환경오염은 불가피하다. 중요한 것은 인간의 생명과 건강, 생태계에 주는 영향을 최소화하고 관리 가능한 적정한 오염수준을 유지하는 것이다. 녹색 국내총생산(GDP)이라는 개념도 이러한 사고에 기반을 두고 있다. 미세먼지가 문제되는 것은 ‘적정한 오염수준’과 ‘지속가능한 정도’를 넘어섰기 때문이다. 국제협력기구(OECD)도 2060년 대기오염으로 인한 우리나라의 조기사망률이 10만 명당 1109명이라고 한다. OECD 국가 최고수준이다. 이 정도라면 비록 올림픽이나 극심한 고통을 주는 공해병과 같은 강력한 동기가 없다 하더라도 우리의 관심과 의지를 행동으로 옮기는데 충분한 이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최승필한국외국어대 법학전문 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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