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한 발짝 뒤로…노란 발자국 그린 횡단보도 ‘사고 0’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1면

기사 이미지

경기도 용인 상현초등학교 학생들이 하굣길에 횡단보도 앞에 섰다. 학생들은 인도 위에 그려진 ‘노란 발자국’에 발을 맞추고 보행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고 있다. 부드러운 개입으로 특정 행동선택을 이끄는 ‘넛지(Nudge) 효과’를 활용한 노란 발자국은 현재 경기남부지역 1933개 횡단보도에서 운영 중이다. [사진 김춘식 기자]

지난 29일 오후 2시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상현초등학교 인근 왕복 4차선 도로. 하굣길에 나선 상현초 학생 6명이 횡단보도 앞에 그려진 ‘노란 발자국’ 위에 발을 맞춰 선 후 신호등 속 녹색불(보행신호)을 기다렸다.

경기 696개 초교 앞 횡단보도에 도입
차도 쪽에 바짝 붙어서는 습관 고쳐

노란 발자국의 길이는 국가기술표준원이 조사한 국내 초등학교 6학년 표준 발사이즈(2010년 기준) 보다 여유를 둔 26㎝로 발 크기가 여기에 못 미치는 저학년 여학생들은 “왕발” “왕발”이라며 서로 웃었다.

노란 발자국은 횡단보도로부터 1m 가량 떨어져 학생들은 신호가 녹색불로 바뀌어도 곧 바로 횡단보도에 발을 딛지 못했다. 자연스레 횡단보도 쪽으로 진입하는 차량을 살핀 후 건너는 게 가능해졌다.

상현초 3학년 김정원 양은 “노란발자국이 있어 그 위에 서는데 친구들도 옆에 서고, 아무튼 재밌다”고 말했다. 상현초 녹색어머니회 조민정 회장은 “(노란 발자국 도입 이후)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차도에서 떨어져 신호를 기다리게 된다”며 “스쿨존에서 발생하는 교통사고의 예방에 효과적인 정책이라고 생각한다. 전국의 모든 초등학교 앞에 설치하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기사 이미지

경기도 시흥 대야초교 학생들이 경찰관과 함께 노란 발자국을 그리고 있다. [사진 경기남부지방경찰청]

노란 발자국은 ‘넛지(Nudge) 효과’를 활용한 아이디어다. 넛지의 사전적 의미는 ‘팔꿈치로 슬쩍 찌르다’인데 명령 등 직접적인 개입 대신 놀이방식의 간접적 개입으로 자연스런 선택을 유도한다.

경기남부경찰청(정용선 청장)은 초등학생들이 인도 끝쪽에 바짝 붙어서거나 도로로 나와 보행신호를 기다리는 아찔한 행동들을 변화시키기 위해 올해 초 인도 위 정지선을 착안했다. 정지선을 노란 발자국 형태로 그리면 어린 학생들이 놀이하듯 노란 발자국 위에 올라설 것으로 판단했다.

상현초 앞에서 지난 3월 16일부터 시작된 실험은 성공적이었다. 아이들의 행동에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이후 광운대 공공소통연구소의 자문을 거쳐 설치방법·색상(컨피던트 옐로우)·문구(양옆을 살펴요) 등을 구체화해 가이드라인에 담았다. 현재 경기남부지역내 696개 초교 인근 1933개 횡단보도에 노란 발자국이 그려졌다.

지난 4~5월 두 달간 경기 남부지역 스쿨존에서 발생한 어린이 교통사고는 지난해 17건에서 올해 8건으로 절반 가량 줄었는데 특히 노란 발자국이 그려진 횡단보도에서는 지난 23일 기준 단 한 건의 교통사고도 일어나지 않은 것으로 집계됐다.

일반적으로 스쿨존 설치비용은 한 곳당 2000만원 정도인데 노란 발자국은 10만원 이하면 가능하다. 0.5%의 저비용으로 운전자 중심의 기존 스쿨존 정책을 보행자 중심까지 보완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효과가 알려지면서 지난달부터 부산 중구지역 초등학교들도 도입하기 시작했다.

넛지효과는 다양한 분야에서 안전사고를 예방하는데 톡톡한 몫을 하고 있다는 게 안전보건공단의 설명이다. 택시 안에서 안전벨트를 매면 연결되는 와이파이, 부산 광안대교 급회전 구간에 칠해진 빨간 도료의 굵은 선, 잠그면 발광다이오드(LED) 불빛이 켜져 웃는 얼굴이 나오는 유독물질 배관 밸브 등이 대표적이다. 광운대 공공소통연구소 이종혁(미디어영상학부) 소장은 “노란 발자국은 넛지를 활용한 한 예로, 작은 캠페인으로 출발해 교통안전 문화를 변화시키고 있다”며 “확산 속도가 상당히 빠르다” 고 말했다.

경기남부청 김경운 홍보기획계장은 “생활 속 넛지인 노란 발자국이 어린이 사고예방에 좋은 효과를 보이고 있다”며 “노란발자국이 전국으로 확대될 수 있게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민욱 기자 kim.minwook@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