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효과적인 대처방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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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한미간의 통상마찰은 양국간, 그리고 국내 개방론자와 보호론자간의 시각에서 큰 차이를 보여 문제가 증폭된 감을 주고있다.
우선 국내적으로 개방론자들을 마치 외국, 이번 경우는 미국을 위한 로비이스트, 심지어는 매국노처럼 여기는 분위기가 있는가하면 개방론자들은 보호주의를 주장하는 사람을 국내기업에 깊숙히 유착되어 현실과 장래를 제대로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하고 있는 것으로 여기고 있다.
무역마찰의 원인과 현상에 대한 한미간 견해차이도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것이 드러났다.
한국측은 전통적인 우방관계. 대공최일선으로서의 특수성과 그로 인한 과중한 국방비 등을 이유로 특별대우를 기대해 왔었다. 말하자면 짝사랑을 해온 셈이다.
그러나 미국측은 우방은 우방이고 장사는 어디까지나 장사라는 입장이다.
정치와 경제는 구분되어야하며 호혜적이며 공정한 입장에서 교역을 하자는 논리를 펴고 있다.
미국측은 공정한 거래만 이루어지면 한국이 그들에게 있어 황금시장이라도 될 것으로 여기고 있는 것이다.
예컨대 담배시장을 개방하면 미국담배가 석권할 것이고 지적소유권을 보호해주면 한국에서 연간 약 2억달러의 추가이익을 볼 것으로 계산하고 있는 판이다(USTR의 보고서).
일반상품에서도 한국에서 수입제한을 풀기만하면 5∼6억달러의 추가수출은 가능하다고 보고 있는 것같다.
보험 및 지적소유권에 대한 미국통상법 301조의 발동과 앨범류에 대한 64.8%의 고율덤핑마진율 판정문제에 대해서도 우리는 『왜 한국만을 골라서, 그것도 해도 너무하지 않느냐』는 불만인데 비해 미국측은 『그럴만 하니까 그렇게 되었다』는 고자세적인 대응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시각의 차이는 자칫 감정적인 차원으로까지 발전, 문제를 확대시킬 소지마저 있다.
감정적인 대응이나 특수관계의 기대감만을 갖고는 문제를 해결할수 없다.
해결방도는 통상마찰이 대두된 배경과 원인을 알아내고 냉정하게 「줄 것은 주고 받을 것은 받는 식」에서 찾아져야 한다.
미국의 대한통상마찰은 미국자체내의 경제적 어려움과 한미간 통상외교의 미숙함에 그 원인이 있다.
연간 1천5백억달러(금년)의 무역적자를 보고있는 미국으로서는 그것을 줄이기 위해 안간힘을 쓸수 밖에 없는 입장이다. 일본이나 캐나다·대만·중남미 여러나라는 우리보다 대미무역흑자가 훨씬 많은데도 미국은 별로 압력을 안넣고 있다.
그런데 미국무역적자의 3%안팎에 불과한 한국에 유독 강력한 압력을 넣고 있다.
이같은 사실은 우리의 통상외교에도 문제가 있다는 반증이 되기에 충분하다. 허술한 대미로비, 우리경제의 과장PR, 무질서한 수출, 효과적인 대응외교의 미흡 등이 얽히고 섥혀 이런 지경에 이르렀다고 보아야 할 것같다.
작년 12월 미국측의 컬러TV 덤핑판정때 한바탕 난리를 피웠던 경험도 헛되게 금년초 캐나다로부터 덤핑판정을 받은 앨범업계가 다시 미국으로부터 재기불능의 고율덤핑판정을 맞았다. 정부당국의 책임도 변명만으로는 통할수 없게 됐다.
미국과의 통상외교를 위해서는 그들의 실정과 정책변화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선결요인이다.
미국은 종래 자유무역(free trade)을 주장했지만 지금은 그 소리는 쑥 들어가고 공정무역(fair trade)의 깃발을 내걸고 있다.
어떤 분야이건 공정하지 않으면 통상법 301조를 걸어 다른 상품수입 제한 등으로 보복을 하겠다는 것이다.
미국의 무역적자는 가까운 장래에는 대폭 개선되기 어려운 상황이고 적자가 계속되는 한 대외 통상압력은 계속될 것이 확실하다.
특히 미국산업의 전반적인 대외경쟁력이 달러강세 등으로 더욱 약화된데다가 내년엔 의회의 중간선거를 끼고있어 보호주의 바람은 당분간 거세게 불 전망이다.
현재 미국이 우리나라에 대해 넣고있는 통상압력은 ▲담배·퍼스널컴퓨터와 오린지주스·쇠고기 등 일반상품시장의 개방 ▲보험 등 서비스분야의 개방 ▲지적소유권의 보호 등 전분야에 걸쳐있다.
미국측의 요구중에는 우리측에서 보면 협상으로 해결할수 있는 것도 있고 당장은 곤란하고 시간을 두고 풀어나갈수 밖에 없는 것도 있다.
이제부터 미국의 시장개방 및 지적소유권보호 등 요구에 대해 하나하나 득실을 따져 줄 것은 주고 받을 것은 받아내는 비즈니스를 해야되는 상황에 이르렀다.
성급하게 대처해서도 안되지만 무조건 담을 치겠다는 자세도 피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국제화·개방화시대에 살고 있으며 그 추세를 거역할수 없는 입장에 서 있다.
이제는 무역도 단순한 경제거래가 아니라 무역전쟁이라고 표현될만큼 서로간에 공방전이 치열해지게 되어있다.
전쟁은 전략과 전술을 함께 쓰는 승부게임이다. 전술적 차원에서 양보하더라도 전략적 차원에서 이기는 자가 전쟁을 잘하는 자다. <이제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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